[의료칼럼] 천재 예술가들의 신경질환
[의료칼럼] 천재 예술가들의 신경질환
  • 승인 2022.10.1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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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마음과마음정신건강 의학과의원 원장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분석하여 예술과 정신의학을 접목시키는 학문을 ‘병적학(Pathography)’라고 합니다. 스위스의 Bogousslavsky 박사가 주도하여 엮은 논문집 형태의 책인 <천재 예술가의 신경질환> 이란 책에서는 화가, 음악가, 작가, 시인들의 신경질환과 그들의 작품을 연결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한편의 시 같은 아름다운 문체로 순수한 사랑을 묘사한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을 국어 교과서에서 읽고 설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는 편안하고 단정한 소설과는 달리 아주 불우한 삶을 살았습니다.

도데는 17세에 궁중낭독자로부터 매독에 감염됩니다. 그 후 발작, 불면증, 감정 기복 등의 매독 초기 증상을 보이다가 39세 이후부터 사망하기까지 신경매독의 특징적인 통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내 경험의 전반부에서는 삶의 불행(misery)을 알았고, 후반부에서는 통증(pain)을 알았다”고 했을 만큼 그의 생애는 통증으로 얼룩졌습니다. 극심한 통증 때문에 자살 기도를 했던 그는 통증이 자신을 엄습할 때마다 글을 썼으며, 글쓰기를 통해 통증을 승화시킨 시인이었습니다.

“life consists of antagonism: 삶은 대립으로 이루어진다”고 씌여진 그의 비문처럼 그는 수많은 양가감정과 모순 사이에서 혼란스런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천재 예술가들에게는 ‘창조성 뇌중추’가 따로 있는 것일까요? 예술작품은 뇌 전체의 하모니가 필요한 작업으로, 창조 중추가 있는지는 여전히 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형편입니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신경계의 국소적인 손상이 유명한 예술가들의 창조성과 예술작품에 어떻게 변화를 주었는지 관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유명 추리작가이자 시인인 에드가 엘런 포우(1809~1849)는 미국의 천재 작가로, <모르그가의 살인> <도둑맞은 편지><어셔가의 몰락><검은고양이>등의 너무나 유명한 작품을 남겼지요. 그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사설탐정 뒤팽은 후일 아서 코난 도일의 명탐정 셜록 홈즈의 탄생에 전적인 영향을 주었지요.

‘세상에는 밝혀지기를 거부하는 비밀들이 있다.’는 포우의 표현처럼 그의 작품과 삶은 미스테리로 가득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허기진 사랑을 도박, 알콜, 약물로 채우며 살다가, 40세에 객사하기 까지 포우는 수많은 작품을 썼고, 수많은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부분 복합 발작(Complex partial Seizure)를 앓고 있었습니다. 약물남용과 결핵으로 인한 뇌막염 등이 원인으로 여겨지며, 복합부분발작 중첩증 상태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자신의 병적인 경험을 통해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 삶과 죽음에 관한 모호함에 대해서 날카롭게 파고들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간질 발작에 대한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지요.

도스토예프스키가 간질이 없었다면 <죄와 벌>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칸트가 강박장애가 없었다면 저 유명한 <순수이성비판>이 세상에 선을 보였을까요? 한 인간의 불행이 인류에게는 정서적, 지적 충족감을 안겨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국 수상 처칠은 샴페인 폴 로져 매니아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냉장고를 열고 샴페인부터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평생 매일 마신 샴페인 탓에 말년에는 파산할 정도로 술을 가까이 했습니다. 처칠을 추억하며 폴 로져는 써 윈스턴 처칠이란 이름으로 샴페인이 출시하고 있습니다.

처칠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혼자 있을 때면 눈물을 자주 흘렸고 자살 충동에 늘 시달렸습니다. 우울할수록 술과 시거를 약 삼아 이용했습니다. 비서는 그의 시거가 불이 꺼지지 않도록 라이터를 켜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을 써서 195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합니다. 그의 나이 79세. 글을 쓰는 것은 우울의 심연을 빠져나오기 위한 목숨을 건 행위였던 것입니다.

천재 예술가들의 재능이 꽃 피게 한 원동력은 우울증 강박증 등의 정신질환과 신경질환이었고, 지독한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예술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얼마 전 세계 최고 부자에 꼽히던 네이버 창업주의 자살은 우리에게 또 어떤 과제를 던졌나요. 삶의 행복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매일 내게 닥쳐오는 검은 개(black dog)와 같은 우울과 불운은 언제 멈출지 알 수가 없지만, 그런 불운이 없는 것은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그 또한 내 삶의 일부임을, 내가 안고 가야할 것들임을, 나에겐 그것을 수용할 힘이 있음을 깨닫게 해준 이 소중한 책을 많은 분들께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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