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화랑 유주희 작가 개인전...스퀴지에 몸 맡기면 내면 감각이 캔버스로~
동원화랑 유주희 작가 개인전...스퀴지에 몸 맡기면 내면 감각이 캔버스로~
  • 황인옥
  • 승인 2022.10.1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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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등 추상적 풍경 30여점
색 다변화 시도 위해 화면 비워
의심·부정 통해 새로운 것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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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희 작 ‘Repetition-Trace of med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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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희 작 ‘Repetition-Trace of meditation’

캔버스에서 위에서 작가와 물감이 하나 되어 휘몰아치면 작가는 흡사 굿판의 무당처럼 무아지경(無我之境)이 된다.

‘청색(Anthraquinne blue)’ 물감을 캔버스 위에 올리고 나무 판에 고무가 붙어 있는 날로 만든 스퀴지(squeegee)에 몸을 내맡기면 상하좌우 자유자재로 화면이 밀리면서 패턴들이 잉태된다. 캔버스 위에 그가 불러들이는 신은 내재된 고향 섬진강의 풍경이다. 한바탕 거나하게 필연과 우연이 협공을 펼치면 화면에는 푸른 꽃잎의 유영과 검푸른 파도의 일렁임으로 넘실댄다.

유주희 작가 개인전이 동원화랑에서 개막했다. 일명 스퀴지 회화로 불리는 그의 작품 30여점을 모았다.

어린시절 감각하고 호흡했던 고향 섬진강의 짙푸른 강물과 모래사장, 검푸른 소나무 숲을 물감과 스퀴지, 그리고 작가의 행위로 추상적으로 풀어낸 풍경이다.

스퀴지 회화는 그가 2000년부터 고안해 20여년간 지속하고 있는 작업 방식이다.

“제 기억 속 강물의 색과 속도, 유유히 흐르는 도도한 기운을 물감과 스퀴지를 통한 행위로 재구성했어요.”

이번 전시에 소개된 신작은 ‘반복-사유의 흔적들(Repetition-Trace of meditation)’ 연작. 기존에 선보였던 청색 일변도에서 벗어나 색상의 다변화를 모색하고, 가득 찼던 화면을 비워내는 등 변화를 시도한 작품들이다. 변신을 이끈 일등공신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19 팬데믹이다.

“코로나 19의 세계적인 대유행으로 제가 사용하는 물감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색의 다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고, 바쁘게만 살아온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면서 화면도 비워낸 것 같아요.”

이야기는 물감의 농도와 호흡의 강약을 응집하거나 확산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행위를 중첩하며 기운과 패턴을 확산하면 화면은 정적인 깊이감으로 짙어지고, 행위의 중첩을 줄여 한 곳으로 기운을 응집하면 햇살처럼 화사한 이야기들로 넘실댄다.

하지만 최근까지 그가 화면을 통해 추구한 것은 중첩과 확산을 통한 강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붓 대신 스퀴지라는 도구를 채택한 배경에도 강한 화면에 대한 열망이 자리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부드러움의 미학에도 마음을 열었다.

그가 “주부의 역할을 하면서 작가 활동을 고집했다. 순전히 나의 의지였다. 그래서 더 ‘좋은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했던 것 같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작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저 스스로 최면을 걸어야 했고, 그런 감정들이 물감과 스퀴지를 통해 발현되었어요.”

스퀴지 회화로 작업 방식을 전환하고 발표한 첫 작업은 ‘형-태’ 연작이었다. 흑과 백의 대비와 스퀴지 그리고 몸의 행위만으로 내적 상태를 드러냈다. “흑과 백이 이끈 어두운 화면에 제가 그토록 갈망하던 굳은 의지가 마침내 자리를 잡아갔어요.”

2006년부터 화면을 수평적으로 분할했다. 스퀴지 회화가 70% 정도 배치하고, 어두운 블루나 옅은 노랑, 빨강 등의 단색을 30%의 지분으로 쌓았다. 이른바 ‘병치혼합 기법’이었는데, ‘Landscape over Being’(존재 너머의 풍경) 연작으로 드러났다.

‘존재 너머의 풍경’ 연작이 수평적인 분할 화면의 단조로움을 조형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의지의 표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의도한 바를 넘어섰다. 조형상의 균형뿐만 아니라 화가의 시선까지 확장했기 때문. “패턴과 색면의 대비로 인한 효과는 의외로 컸어요. 음과 양, 차가움과 따뜻함, 이성과 감성 등의 상반된 개념들을 아우르며 상상의 폭을 넓혔죠.” 이 시기 작품들에 콜렉터의 반응도 유난히 좋았다.

작업은 계속해서 진화했다. 화면 전체를 유채색으로 도포한 후 푸른 아크릴 물감을 얹어 스퀴지로 밀어내는 ‘Untitled’(무제) 연작에 이어 2011년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블루’ 연작이 탄생했다.

화면 속 면을 보다 잘게 쪼갠 작업이다. 그의 작업에서 ‘응집’이 정점을 달리는 작품이다. “팬턴을 잘게 쪼개려면 행위의 중첩이 많아지게 되고, 그것은 곧 노동의 중첩에 해당됩니다.”

캔버스 화면 위의 형식적인 패턴에서 작가의 내면을 백퍼센트 걷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린다’는 몸의 행위, 재료의 선택, 작업 과정 등에서 작가의 내면이 흡수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유 작가는 언어나 말로 설명되지 않는 내면의 생동하는 감각과 이미지들을 물감이라는 재료와 스퀴지라는 붓 대용품으로 신체 행위를 통해 캔버스 위에 자유롭게 드러내왔다. 이는 “기존의 것을 의심하고 부정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한 미술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내면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의외로 행위의 시간성과 연속성에서 찾고 있다. 형상에 의미와 개념을 찾으려 하기보다 행위의 반복 속에서 만나는 필연과 우연의 겹침에서 드러나는 흔적들을 수용하려는 입장을 고수한다. 신체 행위를 통해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 자유롭게 물성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의도치 않은 우연의 효과를 수렴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방식은 마음을 비워내고 탐구하는 주제에 집중하는 구도자의 만행(萬行)을 떠올리게 한다. 끊임없이 비워내고 순수해진 영혼으로 경계 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엿보는 것이다. 순수로의 회귀이자 본질로의 탐구였다.

“생각을 비워내고 몸의 행위에 자신을 맡기면 어느새 상념을 사라지고 우연적인 패턴들이 화면에 자리를 잡습니다. 끊임없이 저 자신을 비워내는 것이 제게는 인생 공부이자 그림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전시는 28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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