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대부 윤두서
관찰 기반 사실적 묘사 추구
시적인 분위기·서정성 물씬
조선 3대 화가 장승업
무리지은 사람과 말의 등장
움직임 살려 다채로움 선사
중국 <한서(漢書)>에 나오는 이 말은 ‘북방의 흉노족이 키운 말들이 잔뜩 살쪘으니, 이제 곧 그들이 쳐들어와 식량과 가축을 노략질해 갈 것’이라는, 경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종조부인 두심언(杜審言)이 북쪽 변방을 지키러 나간 친구 소미도(蘇味道)에게 보낸 편지에도 ‘추심새마비(秋深塞馬肥)’라는 구절이 있다. “가을이 깊으니 변방의 말이 살찌는 구나”라는 뜻으로, 이 또한 흉노족의 침입을 경계하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즉 ‘천고마비’는 ‘하늘이 맑고 모든 것이 풍성하다’라는 낭만적인 의미가 아니라 ‘전쟁이 일어날 위험한 계절’이라는 무서운 뜻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속뜻은 사라지고, 글자의 의미만 남아 가을의 풍요로움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어찌 됐건 가을이 깊어지면서 천고마비의 계절이 되었고 이러한 풍요로움에 딱 맞는 그림을 찾아냈다.

버드나무 가지가 초여름 미풍에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고, 그 나무 아래에는 흠결 없는 백마 한 마리가 뒷다리 하나를 슬쩍 든 자세로 여유롭게 쉬고 있다. 완만하게 솟은 언덕의 굴곡은 부드러운 선으로 묘사되었고, 군데군데 솟은 잡초와 돌들까지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말이 묶여 있는 버드나무 둥치는 사진처럼 치밀하게 그려져 표면 질감이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백마의 몸은 그냥 매끈하게 처리하지 않고 양감을 가진 근육질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입체감 있게 묘사되었다.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1668~1715) 는 조선 중후반기 당쟁이 치열한 시대에 남인 계열의 가문에 태어나 사대부로서 정치적 뜻을 펼칠 길이 막힌 채 태어났다. 할아버지 윤선도(尹善道)가 서인과의 당쟁에서 패하고 유배를 떠나는 바람에 패권이 서인 계열로 넘어간 것이다. 윤두서는 똑똑하고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회적 뜻을 펼칠 수 없던 그는 여생을 학문과 예술에 쏟으며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학식이 높아 세상의 이치에 깊은 깨달음을 가졌고 이에 못지않게 탐구심이 강해 다른 실용 잡학에 대한 연구와 저서도 많이 남겼다.
그의 관심은 대동여지도 같은 지도 제작에까지 나아갔으니 윤두서가 가지 않은 영역이 어디인지 꼽기가 힘들 정도이다. 그는 당시 조선에 불어온 실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무엇이든 현실에서 관찰하고, 그 이치를 깨닫고자 노력했다. 이런 그의 태도는 그림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공재는 말을 무척 좋아해 말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그가 말을 그리고자 할 때면 “마구간 앞에 서서 종일토록 주목하여 보기를 몇 년간이나 계속 한 다음 무릇 말의 모양과 의태를 마음의 눈으로 꿰뚫어 볼 수 있고 털끝만큼도 비슷함에 의심이 없는 다음에야 붓을 들었다”고 하니 윤두서의 실사적 태도가 얼마나 치열했던 것인지 알 수 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인 백마는 공재가 가장 아끼는 말로 자신의 아들조차 이 말에 올라타지 못하게 했을 정도라고 한다. 가지런하게 정리된 갈기와 탄탄한 둔부, 힘 있는 꼬리와 빗질이 잘되어 있는 꼬리털까지 공재의 백마는 어디 한 군데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유하백마도’는 어쩌면 윤두서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혼자 나무에 묶여 있는 모습은 정계 진출을 포기하고 홀로 귀향한 당시 공재의 상황과 겹치며, 흠 없고 깨끗한 흰 말은 그의 성품을 은연중에 나타낸 것 같다.
또 다른 그림 하나 말 그림을 찾다가 어쩌면 저 백말을 타고 있는 인물이 윤두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한다.

백마를 타고 있는 당당하게 앞으로 나가는 모습에서 중년 선비의 자신감과 자신의 처지를 꿋꿋하게 견뎌 나가는 그의 기백이 느껴지기도 한다. 슬프기도 하지만 다행이기도 한 것은 시대적 제약이 지금의 우리에게 정치가 윤두서 대신 화가 윤두서를 남겨주었다는 사실이다.
다음 말(馬에) 대해 진심이었던 화가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을 소개한다.
오원장승업은 한국회화사에 보기 드문 기인(奇人)으로 그의 천제적인 예술재능은 안견, 김홍도와 함께 조선 3대 화가에 꼽힌다고 한다.
조선 말기의 장승업은 말 그림에 있어서도 수작을 다수 남겼다. 장승업은 한, 두 마리 말만을 조촐하게 등장시켰던 면모를 일신시켜 인물과 말이 다수 등장하는 <군마도(軍馬圖)>와 같은 그림을 만들어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흑백사진으로만 남아있으며, 현재 개인 소장으로 그 그림의 전체를 알기가 쉽지 않다. 현재 자료로 남아있는 부분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각 인물, 말들의 화면에서의 연결이 자연스럽고, 동작도 어색하지 않게 잘 표현되었다. 그는 윤두서와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말 그림 화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림의 시적 분위기와 서정성은 윤두서에 비해 부족하지만 말 특유의 동적이며 활기찬 모습, 다채로운 형태를 구현하여 시각적 효과는 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말 그림은 그 역사가 선사시대로 올라갈 만큼 오래되어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 1호분의 천마도에 등장하기도 했다. 옛날에는 보기만 해도 활기가 넘치고 신비로운 말은 과거에 동서양을 넘어 신의 사자라고 불리던 신성한 동물이었다.
풍수적 측면에서 볼 때 말 그림은 보통 속도, 힘, 건강, 정열을 나타낸다. ‘말도성공(馬到成功 · 말이 찾아오면 성공한다)’이란 의미를 담고 있어 사무실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회사, 회관 등에 걸려있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말은 교통수단으로서의 인식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주로 ‘속도’에 초점이 맞춰진 그림으로 무언가 빠르게 진행하거나 탄력을 이끌어 내어 성취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민화에서도 이런 의미를 가진 말 그림이 있다. 다소 말의 해부학적 형태가 어눌해 보이지만 말의 뛰어나가는 모습이 활기차 보인다.
장승업 이후 말 그림에 대한 수요 현상은 집권층의 수구적 성향과 새로운 문화 세력으로 성장한 중서(中庶)층과 평민 부유층들이 상행하효(上行下效)적 보수 경향과 밀착하였다. 그 결과 고전적 양식이 주종을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생활구조의 변화로 인해 말이 과거에 누렸던 역할과 효용성이 사라지고 그로 인해 고전적 성향의 말 그림은 보기가 힘들어졌다.
말의 고사성어로 천고마비를 언급하며 윤두서의 말 그림을 소개하며 그의 기구한(?)운명으로 시대를 잘못 타고나 뜻밖의 재능으로 많은 유산을 남겼다고 썼는데, 그런 의미에서 고사성어 백락상마(伯樂相馬)를 떠올리게 되었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말(馬)을 보는 안목이 신(神)의 경지에 이른 백락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마음에 들어 하는 말은 모두 최상급 명마였다. 하루는 초나라 왕의 명으로 천리마를 구하기 위해 명마의 고장인 연나라와 조나라를 둘러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천리마를 찾을 수 없었다. 낙심하고 돌아오는 길에 백락은 소금 장수의 마차와 마주쳤다. 마차를 끌던 말은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었고 꼬리는 축 늘어진 채 어디에도 쓸모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백락은 그 말이 천리마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왕을 태우고 천하를 누벼야 할 천리마가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마른 채 소금 마차를 끌고 있는 모습이 측은하여 말을 쓰다듬자, 말은 자신을 알아봐 주는 백락에게 감격하여 앞발을 들어 보이며 크고 우렁차게 울었다. 백락은 소금 장수에게 말을 샀고 초나라로 돌아와 왕에게 말을 보여주었다. 볼품없이 늙은 말을 천리마라고 소개받은 왕은 자신을 농락하는 것 같아 화를 내었지만, 백락이 보름 동안 잘 보살펴 말이 회복하면 그때 다시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말에 믿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소금 마차를 끌던 비쩍 마른 말에게 좋은 먹이와 마구간을 내주어 정성껏 보살피니 몰라보게 건강해져 위풍당당한 천리마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를 본 초나라 왕이 매우 기뻐하며 말 위에 올라 채찍을 한 번 휘두르자 말은 순식간에 천 리를 달렸다. 훗날 초나라 왕은 그 천리마와 함께 전쟁에서 수많은 공적을 쌓았다고 한다.
오늘 아침 뉴스에 고3 학생들의 수능이 이제 딱 한 달 남았다고 한다.
한 사람의 인재를 얻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와 국가를 생각했을 때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고, 뛰어난 인재를 각 분야 적재적소에 자신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 교육하고 배치하는 것도 지금 우리들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중요한 인제를 기르는 일에 백락의 안목과 길러내는 정성,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그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것 같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