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독서와 종이 매체의 종말
[박명호 경영칼럼] 독서와 종이 매체의 종말
  • 승인 2022.10.2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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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10월은 기념일의 달이다. 정부가 제정한 국경일과 각종 기념일의 1/4가량이 이달에 몰려있다. 1일 국군의 날을 시작으로 그 다음날은 노인의 날, 계속해서 숱한 기념일들이 이어지다가 29일의 지방자치의 날로 10월을 마감한다. 하루건너 한 개꼴이다. 여기다가 민간이 정한 기념일을 더하면 매일이 기념일이다. 이달 11일은 제36회 ‘책의 날’이었다. 책의 소중함과 책 읽는 즐거움을 널리 일깨우고자 제정되었다. 지난 4월 23일이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이었는데 비슷한 내용의 기념일을 굳이 또 정한 까닭이 궁금하다. 책 읽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서일까. 책 읽는 사람들이 크게 줄어들어서일까.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종합독서율은 47.5%였다. 우리 국민 가운데 성인 2명 중 1명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특히 성인의 종이책 독서율은 40.7%로 2019년에 비해 무려 11.4%p나 줄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성인이 읽은 종이책은 평균 2.7권으로 3년 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도서관에서의 책 대출도 해를 거듭할수록 급감하고 있다. 어디서든 종이책을 읽는 모습은 보기가 어렵다.

대신에 유튜브, SNS 등 전자미디어가 우리네 일상을 깊이 파고들었다. 우리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자기기에서 메시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무언가를 쉼 없이 검색하고, 또 누군가와 더 많이 연결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정보가 제공될수록 정보에 허기를 더 느낀다. 많은 정보에서 핵심만 재빨리 훑어본다. 그래서 장문의 기사를 읽거나 서너 단락이 넘는 글조차 집중하기 어렵다고 한다. 더구나 소설과 같이 긴 내용을 끝까지 읽는 능력은 상실되었다. 전자미디어가 종종 의식적·무의식적 사고에 합선을 일으켜 우리의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자미디어는 이미 가장 효과적인 소통 도구로 각광받고 있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우리의 뇌와 사고방식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이제 일과 학교, 경제·사회생활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필수 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잠시라도 전자미디어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엄청난 혼란과 상실감을 겪게 된다. 최근 카카오 먹통 사태로 우리는 이러한 디지털 암흑(digital darkness) 상태의 충격을 여과 없이 생생하게 경험했다.

‘국민메신저’로 불리는 카톡의 블랙아웃 사태는 모든 국민에게 심각한 불편과 막대한 손실을 안겨주었다. 특히 깨어있는 동안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청소년들은 그야말로 혼돈과 극도의 상실감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렇듯 전자미디어는 유용한 삶의 도구이지만 한번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의 생각과 일상까지도 멈추게 하여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사람은 생각을 집중할 때 비로소 놀랄만한 변화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생각하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의 집중에서 통찰력이 나오고 창조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니콜라스 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현대인들에게 경고한 것처럼, 전자미디어를 사용할수록 훑어보고, 건너뛰고, 멀티태스킹하는 신경회로는 강해지는 반면 집중력은 사라진다.

이러한 전자미디어 만능 시대에 우리는 집중력을 잃고 뇌의 혼돈마저 경험한다. 이미 종이 매체를 통한 아날로그적 뇌를 완전히 잃어버린 걸까. 그리고 종이 매체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과연 책과 신문, 잡지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명저 ‘미디어의 이해’에서 마셜 매클루언이 주장했듯이 새로운 미디어는 오래된 것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종이 매체의 종말을 서슴없이 예단한다.

하지만 인쇄된 종이 매체는 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책을 사고, 잡지를 구독한다. 극장에도 가고, 라디오도 듣는다. 종이신문을 읽고, 바이닐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듣는다. 데이비드 색스가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말한 대로 아날로그 경험은 디지털 경험이 주지 못하는 실제 세계의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좀 더 촉각적이고 인간중심적인 경험을 갈망한다. 종이 신문과 종이 책이 여전히 가치를 지니는 이유다.

흔히들 부자들은 꾸준히 독서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역사적 위인이나 성공한 리더들도 독서가 생활습관이 된 사람들이다. 세종대왕, 이순신, 나폴레옹, 처칠, 루스벨트에서 오늘날 빌 게이츠나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CEO들은 모두 책을 가까이 했다. 이들은 남이 보지 못하는 변화를 책을 통해 확인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길렀다.

인류의 문화 진보와 사회 발전은 여전히 종이 매체가 주도한다고 믿는다. 이 좋은 계절에 좋은 책을 읽자. 책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 그리고 지혜와 편안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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