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2022 다시 쓰는 홍길동전
[의료칼럼] 2022 다시 쓰는 홍길동전
  • 승인 2022.10.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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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한 수성아동병원
지난 5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이기일 차관(보건복지부 2차관)이 의료일원화(교육과정 통합 등으로 의과와 한의과를 합치는 것)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의료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의학은 과학이다. 과학이 발전하기 전부터 인류가 각자의 방식으로 질병과 상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결과, 세계 여러 지역에는 ‘전통의학(Traditional Medicine)’ 이라 불리는 치료법이 존재해 왔다. 특정 질환에 어떤 치료가 효과적인지,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를 인류는 경험적으로 터득했다. 그러나 최근 100여 년 간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의학은 과학적 연구 방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인류에게 좀 더 안전하고 유효한 치료방법들을 검증해 건강 유지와 수명 연장 등을 가능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의학은 의학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며 과학적 연구 방법을 멀리한 채 과거 지향적 학문으로 남으려 했고, 설상가상으로 위정자들은 의학의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채 의사와 한의사를 공존시켜 대한민국의료에 많은 문제를 안겨주고 있다.

한 때 ‘신토불이(身土不二; 자기가 사는 땅에서 나온 농산물이라야 체질에 잘 맞음)’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필자 또한 어린 시절 ‘병원 약보단 자연에서 구한 한약이 더 좋다’, ‘한국인에게는 한국인 체질에 맞는 한약이 더 우수하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며, 한 두 차례 보약이라 일컫는 첩약을 먹어본 경험도 있다. 하지만 한약 성분 및 유효성과 안정성이 과연 얼마나 확실한 지는 의문이다. 동네 가게에 파는 과자에도 재료의 원산지, 성분표시 및 유통기한이 적혀 있는데, 한약은 그런 것들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현실을 2022년에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혹자는 중국과 서양에는 다른 과학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틀린 말이다. 어떤 이론이 과학에 속하는지 여부는 간단히 알 수 있다. 바로 그 이론이 명백하고 믿을만한 원리관계나 인과관계를 갖추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한의학이 과학에 속하지 않은 까닭은 한의학의 경험판단과 이론진술 모두가 아직까지 이러한 경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데 있다. 당나라 때 장우석이 쓴 [본초습유]에는 다음과 같은 불임처방이 나온다. [입춘의 빗물을 부부에게 각각 한 잔씩 먹이면 바로 아이를 가질 수 있다](이것은 ‘본초강목’에도 인용됨). 또한 여러 물질을 약에 처방하여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실제로 한약 복용 후 생긴 간 중독 사례를 볼 수 있음).

지난 7월 보건복지부는 한의사의 영문 명칭을 ‘Oriental Medical Doctor’에서 ‘Doctor of Korean Medicine’으로 변경했다. 대한한의사협회의 영문 명칭을 ‘The Association of Korean Medicine’으로 변경한 후 일어난 일인데, 이들 모두 의사와 한의사를 동일하게 여길 수 있는 잘못된 영문표기이며, 이는 의학과 한의학이 동등하게 공존하는 부조리한 현실과 현 정부 관료의 의학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기인한 황당한 일이다.

주요 선진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전통의학을 국가의료정책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한의학을 과학의학 관점에서 검증해 취사선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없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이자 조선 사회의 모순을 비판한 소설인 《홍길동전》에 나오는 구절처럼 우리는 그동안 모순된 의료현실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다. 한의학이 의학을 대체하거나 대등할 수조차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을 의학에 통합하지 못한 모순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소설 속 인물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홍길동이 되어야 한다. 더 이상 한의학이 의학내의 한 학문으로 존재해야한다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기에 의료일원화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은 멈추고 의학교육일원화를 통한 의료일원화를 하루라도 빨리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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