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달구벌, 사방이 산지로 둘려 싸인 ‘천혜의 요새지’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달구벌, 사방이 산지로 둘려 싸인 ‘천혜의 요새지’
  • 김종현
  • 승인 2022.10.2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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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달구벌 선인들의 자랑거리를 모아 본다면
깃발 꽂아 자손만대 위한 삶의 터전
지정학적 위치·지리군사학적 위상
자원 활용 삶을 윤택하게 할 먹거리
사람들의 인심·자연환경 중요시 해
금호강과 낙동강 ‘자연해자’ 역할
통일신라 수도로 천도계획 세운 곳
일본제국, 군복 등 군수산업기지 설립
해방이후 섬유공업·경공업 터전으로
손자병법구지
손자병법 구지가운데 중지·구지에 속하는 달구벌. 그림 이대영

◇우리가 사랑하지 않아 알지 못하는가? 달구벌을!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은 조선 정조 때 문장가로서 “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한다면 참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게 볼 줄 알게 된다면 쌓아두게 되니, 쌓아둔다고 해서 그저 무지막지하게 저장만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던 말이 5살차 친구로 지내던 서화가 김광국(金光國, 1727~1797)의 화첩 ‘석농화원’ 발문에 나왔다.

이 말을 듣고 생각나는 게 동대구 기차역에 내려 대구 시내택시를 잡아타고 “뭔가 좀, 볼거리 혹은 먹거리가 많은 좋은 곳으로 갑시다.”라고 친구가 말했더니. “대구요? 볼 것도 먹을 것도 별로 없어요.” 다른 지역 택시운전사는 문화해설사가 아닌데도 관광명소는 물론이고 유명식당까지 쥐어 꿰고 있었다.

오늘 변명 아닌 해명을 하고자 한다. “동네 점바치(무당) 용한 줄 모른다.”는 할머니 말씀이 정곡을 찌르고 있다. “늘 같이 있으니 자기 마누라 소중한 줄 모르고…”라고 가슴을 찌르던 아내 말이 새삼 뇌리를 스친다. 대구시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다는 것 하나로 내가 대구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크게 착각을 해왔다. 사실 되돌아보면, 배울 의지도 없었고, 어떤 계획도 행동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빌리면, “할 마음조차 없었다(心不在焉).”고 할 수 있다. “마음에 없으면, 눈으로 본들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귀로 듣는다고 해도 흘려듣게 된다. 입으로 먹는다고 해도 그 맛을 모르게 된다(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고 대학(大學 : 儒敎四書中一) 구절을 몇 번이고 해석해 주시던 기억이 난다. 신라 의상의 자서전(唐新羅國義湘傳)에 있는 “뭔가를 알고자하는 마음이 생겨나야 각종 법문도 받아들여지는 법이다. 그런 마음조차 없다면 산 사람이나 무덤 속 해골이나 뭐가 다르겠는가?”하는 구절이 새삼 마음에 파고든다.

◇달구벌에 살았던 선인들이 속마음을 알아보자!

18세기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이 쓴 인문지리서 ‘택리지’에서 전체 분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복거총론(卜居總論)에서는 ‘깃발을 꽂아 자손만대를 위한 삶의 터전’으로 i) 정치, 군사 및 경제에서 지역적 위상(地理) ii) 살아갈 먹거리(生利) iii) 거주하는 사람들의 인심(人心) 그리고 iv) 자연환경으로 산수(山水)를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지리란 풍수지리를 언급하고 있다. 오늘날 용어로는 지정학적 위치(geo-politic position), 지경학적 위상(geo-economic phase), 혹은 지리군사학적 위상(geo-military status)이다. 생리(生利)란 천연자원(수자원, 삼림자원, 지하자원, 물길, 사통팔달의 도로 등), 특산물, 인력자원 등을 이용한 삶을 윤택하게 할 먹거리 재료들이다. 인심(人心)으로는 미풍양속은 물론이고, 사대부의 경우엔 당색(黨色)을 중요시했다. 달구벌은 사림파 영남유림의 본산지를 형성했다. 마지막 산수(山水)는 자연환경으로 인심을 순박하게 한다고 믿었다.

오늘날 문화도시는 한 마디로 문화의 도가니(crucibles of culture)다. 도가니에 들어가는 재료는 : i) 미술(art) ii) 음악(music) iii) 공연(performance) iv) 음식(food) v) 건축(architecture) vi) 정체성(identity) 그리고 vii) 풍속(customs)이다. 보다 단순하게 소급해 도시생성 혹은 발달의 3대 요소로 3W(water, way, will)를 제시할 수 있다.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생명체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물(water)이 필수요건이었다. 인간도 70%가량이 수분이다. 오늘날 첨단산업인 원자력, 반도체, 전자산업도 공업용수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 뉴욕, 런던, 도쿄,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등의 수제대도시(water-front mega city)가 형성되었다. 또한 물은 산업용수, 농업용수, 생활용수로 먹거리의 소재로도 사용되고 있다.

다음 길(way)은 땅 길(철로, 고속도로, 군사도로 등), 물 길(해상로), 하늘 길(항공로)에 의해 역세권(驛勢圈, Station Influence Area)이 형성되면서 도시의 성장점(growth point of city)이 되고 있다. 도시의 번창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의지(will)다.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라도, 지리적 이점만 못하고, 아무리 좋은 지리적 이점도 사람들의 의지 혹은 화목단결만 못하다(天時不如地理, 地理不如人和).”고 했다. 지구촌에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의지 때문이다. 최초로 인간의 의지를 한 곳에 모았던 제도가 바로 종교(宗敎)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시에는 먼저 교회, 사찰 혹은 사원(신전)을 지었다. 종교시설은 오늘날의 교육기관 역할을 했다. 그래서 교육의 조종(祖宗之敎育)이란 뜻으로 종교(宗敎, religion)라는 말이 생겨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나 교육의 최종목적은 ‘스스로를 깨우치고(學己), 참된 의지를 갖게 하는 것(良志).’이다.

의지가 세계역사를 바꾼 단적인 사례가 불법을 찾아 천축국으로 떠났던 실크로드다. 신라인 혜초(慧超)는 719년 15세 어린 나이로 왕성서라벌을 떠나 중국 광주에서 인도 승 금강지(金剛智)를 만나 불법을 긁어모았다. 732년경 28세로 인도- 중앙아시아- 동아시아를 거쳐 중국 장안으로 돌아왔다. 당시는 그렇게 험악했던 4,693m/SL 고도인 중국 신장 웨이우얼(新疆維吾爾)과 파키스탄 아보타바드(Abbottabad, Pakistan) 구간 1,200km가 카라코람 하이웨이(Karakoram Highway)로 변해 1978년 완공됐다. 1966년 착공이후 12년간 암석추락 등 사고로 수천 명의 건설인부들이 세상을 떠났다. 공사 희생자들을 기념하는 파키스탄의 기념탑에는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산도 가루를 낼 수 있다(If you have the will, you can make mountains powder).’라는 숭고한 정신을 새겨놓았다.

◇천혜의 요충지 달구벌

이중환이 쓴 택리지 복거총론에 의하면 달구벌은 지리적으로 사방이 산지로 둘려 싸여 있어 적침으로부터 나성(羅城)과 내성(內城)을 겹겹이 쌓은 천혜요새지였다. 금호강과 낙동강은 자연해자(自然垓字)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통일신라 수도로 천도계획까지 했던 곳이다. 또한 군사적으로 손자병법 구지편(九地編)에서는 전쟁승리를 위한 병참기지로 필요한 중지(重地)이며, 사통팔달의 육운과 해운을 장악하기 위해 차지해야할 구지(衢地)에 해당하는 천혜요충지였다.

조선을 병합한 일본제국은 1917년 미쓰비시그룹(三菱みつびし)의 조선방직공장을 칠성공단에, 침산공단에 군복 등의 군수산업기지를 설립했다. 이런 병참기지의 군수산업이 해방이후 섬유공업과 경공업의 터전이 되었고, 우리나라 근대화의 산실이 되었다.

달구벌은 의지(will)에 있어 고대와 중세기까지는 신라 화랑정신의 화랑5계,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호국불교,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선비정신 가운데 ‘나라의 위험을 보고선 목숨까지 내놓겠다(見危授命).’의 올곧음(民忠大節)이 의병과 학도병으로 이어졌고, 일제강점기엔 국채보상운동으로, 한때는 ‘한반도의 모스크바(Moscow of Korean Peninsula)’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가진 자의 폭거에 항거(protest against the have)하는 노동운동을 전개했다. 독재정치 때엔 2·28학생운동을 전개해 민주화의 기치(flag of Democracy)를 들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지나친 배타적 보수성(exclusive conservatism)과 권위적 지역주의(authoritarian regionalism)에 매몰된 나머지 다른도시로부터 고담대구(Gotham Daegu)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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