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범인은 멀리 있지 않다
[달구벌아침] 범인은 멀리 있지 않다
  • 승인 2022.10.2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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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 심리연구소 소장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자신이 스스로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한 말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말은 단순한 지껄임, 내뱉음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에는 말을 하는 사람의 영혼이 담겨있고, 듣는 사람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기 때문이다. 말은 책임을 수반한다. 책임을 지지 않는 말은 문제가 많다. 말을 통해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서 함부로 다룰 문제가 아니다. 무사가 칼을 잘 다뤄야 하듯이 우리는 자신의 말을 잘 다룰 필요가 있다.

사람 사이에 출처 없는 말(언어)이 이곳, 저곳을 떠다닌다. 마치 바다 위 유령선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을 떠다닌다. 누가 시작했는지, 누가 전달했는지 알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런 유령선 때문에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있다. 얼마 전 나를 찾아온 그 사람도 누군가가 뱉어놓은 책임 없는 말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는 평상시와 다르게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그렇게 억울해하는 이유는 누군가 자신에 대해서 이상한 말을 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할 만큼 이상한 행동을 한 적도 없고, 그렇게 말한 적도 없는데 사람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돈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 때문에 그는 억울함과 답답함이 가득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그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들어도 이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상하게 인식되고 있다는 것에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실제로 하지도 않은 사실을 사람들이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참으려고도 해 봤고, 잊으려고도 해봤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 이야기는 사라지기는커녕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더 커져만 가고 있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 나서기로 했단다.

먼저 자신에게 와서 그런 말이 들려온다는 사실을 맨 처음 알려준 사람에게 물었다. '도대체 누가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느냐고?' 하지만 말을 전달한 사람은 그저 자신은 이야기를 A라는 사람한테서 들었을 뿐이고, 본인은 들은 이야기를 그냥 전했을 뿐이라고 얘기했다. 들어서 전했을 뿐이라고 하니 더 이상 그에게 따져 물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제는 말을 했다고 하는 A에게 찾아가서 왜 그런 말을 했냐고 따져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A 역시 책임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자신도 역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고 그냥 들은 이야기를 전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그 이야기를 누구한테 들었냐고 물으니, 그건 말해줄 수 없다고 한다. 정말로 기가 찬다. 말을 들었다는 사람은 있는데, 말을 했다고 하는 사람은 찾을 길이 없다. 사실관계가 어떤지,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할 길이 아예 차단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이제 하나의 사실이 밝혀진다. 어떻게 책임 없는 말이 마음대로 사람 사이를 휘 집고 다녀도 되는지, 그리고 말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지를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가 말했는지를 말할 수 없다는 것으로 블라인드 처리되기 때문이다. 즉, 처음 정보를 생산한 사람이 익명 처리되어 철저히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는 소문 같은 이야기를 처음 생산한 사람이 보호를 받기 때문에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떠돌고 떠돌며 사람을 힘들게 할 뿐이다.

위와 같은 상황은 말을 전하는 사람은 있지만, 말을 한 사람은 확인이 안 되는 아주 황당한 상황이다. 그래서 사실은 있고, 진실은 확인이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사실이란 것은 '네가 이런 사람이라고 하더라'라는 소문이다. 사람들에게 진실이 아닌 확인되지 않은, 확인할 수도 없는 사실이 되어 입으로, 입으로 전달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사실을 진실로 믿어 버린다. 이것이 정말 무서운 것이다. 최초 말한 사람이 누군지 말할 수 없다면 그 말을 애초에 전하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누가 말했는지를 끝까지 말할 수 없다면 그 말을 전하는 본인이 책임지는 것이 맞다.

범인은 멀리 있지 않다. "그 이야기는 누구한테 들은 이야기다. 그런데 누가 말했는지는 말해 줄 수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본인의 경험상 대부분 소문의 시작은 '누가 말했는지 말해줄 수 없다'라고 하는 그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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