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체내에 물건을 숨겨 운반하는 이른바 ‘보디패커(body packer)’ 수법으로 마약을 밀반입하려던 50대 남성 A씨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A씨의 위와 대장 등에서는 잘게 나눠 비닐로 포장된 마약 종류가 검출됐다. 경찰은 체내에 숨긴 마약 봉지가 터지면서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19년에는 한 일본 남성이 멕시코시티에서 일본 나리타공항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사망했는데, 이 남성의 위장과 장에는 무려 246개의 코카인 봉지가 들어있었다. 이 남성은 이륙 뒤 몸속에서 코카인 봉지가 터져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최근 포착되기 시작한 국내 현실과 달리 영화에서 보디패커는 생소한 소재가 아니다. 2004년 조슈아 마르턴 감독의 영화 ‘기품 있는 마리아’는 뜻하지 않게 마약 보디패커가 된 열일곱 살 소녀 마리아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의 배경은 ‘이 나라에서 부자가 되는 길이란, 축구를 하거나 신부가 되거나 마약에 손을 대는 일 뿐’ 이라는 세계 최대 마약생산국 콜롬비아다.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소녀가장 마리아에게 아이가 생긴다. 꽃다운 소녀 마리아는 이 험한 세상을 견딜 수 있을까, 그녀의 아기는 무사히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기품 있는 마리아’의 시작이다.
감독은 장미 화훼농장서 일하던 마리아가 마약운반이라는 엄청난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 상황을 전반부로 하고, 미국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후반부로 나누면서 그녀가 세상에 눈뜨는 과정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마리아가 마약운반에 가담한 건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족의 무능함과, 절대빈곤과 부패로 얼룩진 조국에서 태어날 뱃속의 아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뉴욕에 도착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예기치 못한 사고(함께 마약을 운반하던 루시의 복막파열로 인한 죽음)와 불확실한 미래지만, 낯선 이국땅에서도 전혀 위축됨 없이 당당한 표정인 마리아. 그녀를 지탱하는 힘은 뱃속에서 자라는 아이였다. 삶과 희망 모두를 놓지 않으려 안간힘 쓴 내면의 투쟁은 끝내 결실을 맺는다. 생명의 존엄을 깨달은 마리아는 철없는 소녀에서 여자로, 기품 있는 어머니로 바뀐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마약운반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 친구 블랑카를 보내고 출국수속대를 뒤로한 채 자신감으로 충만한 미소를 머금으며 걷던 마리아의 모습. 영화의 백미다.
마약운반은 중대한 범죄행위다. 하지만 영화 끝에 이르면 누구도 마리아를 비난할 수 없게 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중노동에 시달린 열일곱 살 임산부에게, 보디패커가 될 수밖에 없는 이 소녀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남편이 남긴 빚더미에 앉은 미망인 그레이스에게 대마재배를 권하고 동조하며 격려해주던 ‘오! 그레이스’의 이웃을 보면서 우리가 행복한 교훈을 얻었다면, 마리아의 발걸음에도 힘을 실어줘야 마땅하다. 마리아와 아기는 기회의 땅 미국에서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게 될 것이다. 엔딩 쇼트에서 보여준 마리아의 미소가 성모마리아의 기품 있는 미소와 다르지 않기에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백정우ㆍ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