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이만우 ‘자작’展…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사진작가 이만우 ‘자작’展…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 황인옥
  • 승인 2022.10.2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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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입다
촬영 위해 러시아·중국·몽골行
영하 50도 혹한·척박한 환경…
“생존 위한 모습, 처연하고 숙연”
다중 촬영 통해 자연의 색 구현
작품 20여점·비하인드 영상 선봬
이만우작-자작
이만우 작 ‘자작’

나무는 뿌리를 내린 자리에서 평생을 살다,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신은 나무에게 이동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고, 온갖 풍파를 오롯이 한 자리에서 감당하고 순응하며 살아갈 운명을 부여했다. 희노애락(喜怒哀樂)으로 점철된 인간의 삶보다 나무의 삶이 덜 애잔하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사진작가 이만우는 인간의 발길에 차이고 짐승들의 이빨에 패여도 묵묵히 살아가는 나무의 모습에서 인간의 삶을 떠올렸다. 특히 흰 껍질에 지나온 삶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는 자작나무에 마음을 빼앗겼다. 지난 10여년간 자작나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 않고 달려갔다. 그가 “자작나무도 인간과 대등한 생명체”라며 “모든 생명은 자연의 일부로 평등하다”는 세계관을 피력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자작나무의 삶에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숙연함마저 느꼈어요. 그곳에 우리의 삶이 있었던 것이죠.”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사진작가 이만우 개인전인 ‘자작’전이 한창이다. 자작나무 작품 20여점과 작업과정을 담은 비하인드 영상이 소개되고 있다. 사진 작품 활동 40여년, 몽환적인 소나무 사진 작업에 매진하던 그가 자작나무에 마음을 빼앗긴 건 10여년 전이다. 소나무를 촬영하기 위해 강원도 응봉산을 배회하던 중 우연히 자작나무를 발견하게 됐다.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 속 자작나무 군락을 보는 듯 했다”는 것이 당시의 마음이었다. 몇 시간을 홀린듯 자작나무에 발걸음이 멈췄고, 그때부터 변심이 시작됐다. 소나무에서 자작나무로 피사체의 변화가 시작됐다.

막상 자작나무에 홀렸지만 2~3년간은 촬영은 뒷전이었다. 오직 자작나무 숲만 찾아 다녔다. 자작나무와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보이지 않던 새로운 시각이 생성됐고, 자작나무와 감정을 공유하는 관계로까지 발전됐다. 특히 영하 35도의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설원에서 칼날 같은 바람을 온몸으로 막고 있는 애절한 자작나무의 모습과 맞닥뜨리면서, 자작나무는 그의 전부가 됐다. 자작나무들 사이에서 마치 가족을 보호하려는 듯 홀로 바람과 맞서고 있는 강인한 자작나무가 가장의 무게에 짓눌려있는 인간의 모습과 겹쳐졌다. 그 순간, 셔터 누르는 소리가 눈보라를 밀어내고 있었다. 촬영이 시작된 것이다.

“폭풍을 피하지 못하는 운명의 자작나무 가족이 처연해 보였어요. 고통스럽게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자작나무가 있는 곳이면 여지없이 그의 발길이 닿았다. 국내는 물론이고, 러시아의 시베리아, 중국의 난징, 중국의 북쪽과 외몽고의 남쪽 접경지역인 내몽고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어디에 있든 자작나무 숲은 이제 그의 앞마당처럼 훤할 정도로 친숙해졌다. 국내의 경우 펄프 회사에서 종이 생산을 위해 조성한 인공적인 숲이 대부분 이어서 날것의 맛이 부족했고, 자연 그대로의 자작나무를 찾기 위해 시베리아나 내몽고로 떠났다.

“시베리아나 내몽고의 자작나무 숲은 영하 30~50도 오르내리는 혹한의 추위와 광활하면서 척박한 자연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어 날것의 처연함이 있어요. 자작나무의 삶의 흔적이 더 드라마틱하죠.”

척박한 환경에서 자생하는 자작나무는 다른 나무와 경쟁해서 살아남기 위해 햇빛 쟁탈전을 치열하게 벌인다. 그 흔적들이 굵은 가지에서 실핏줄처럼 뻗어나간 잔가지의 다양한 모습들에 오롯이 드러나는데, 그는 그 치열한 삶의 현장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긴다. 낮의 강렬한 햇살이 잦아들고 어린아이 피부 같은 연한 햇살이 비치는 해지기 직전에 카메라 셔터를 눌러 위풍당당한 자작나무의 피부 한 올 한 올까지 담아낸다.

“어떤 사진을 찍겠다고 계획하고 떠나지는 않아요. 다니다 그날의 자연환경과 저의 감성이 일치하는 나무를 만나면 그때 촬영이 시작되죠. 자작나무의 모습에 담긴 흔적이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그곳에서 빛을 기다립니다. 다니는 양에 비해 마음에 드는 사진의 양이 적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죠.”

이번 전시에 걸린 아사 직전의 자작나무에서 그의 연민이 묻어난다.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난 나무였다. 바다 같은 드넓은 시베리아의 텔레츠코 호숫가에서 뿌리의 일부만 겨우 땅에 닿고 몸통은 땅에 쓰러져 있는 자작나무였다. “죽은 것 같았지만 분명 8년을 살아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발견 당시에는 안개가 끼여 촬영을 할 수 없어 일주일을 기다렸죠. 마침내 안개가 걷히는 순간 강한 일출빛을 배경으로 촬영할 수 있었어요.” 그는 폭풍에 쓰러진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자작나무에서 자신의 힘든 시절을 떠올렸다. 쓰러진 자작나무와 그 사이에 묘한 공감대가 형성됐고, 둘 사이에서 영적 공명을 경험했다.

그의 자작나무는 한 편의 시처럼 서정(抒情)이 넘친다. 사진이라기보다 그림에 가까울 정도로 몽환적이고 회화적이다. 자연의 색을 최대한 수용한 덕분이다. 다중 촬영이나 색조절, 포토샵의 절제 등의 방식을 통해 그는 자연색에 다가가려 최선을 다한다. 자연적인 색을 찾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몫이라는 철학에 따른 것이다. “이미 사진을 촬영할 당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기 때문에 촬영 후의 그 어떤 부가적인 행위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사진은 빛의 예술이다. 빛이 사진의 질을 좌우하지만, 그의 빛 사랑은 유난스럽다. 빛에 관한한 ‘박사’라고 할만큼 빛을 훤히 꿰뚫고 있다. 아기 피부같은 빛에서 청년, 중년, 노년의 빛 등 다양한 결의 빛들과 자작나무 특유의 기세를 연결 지으며 그림 같은 사진을 얻는다. 높은 서정성에는 그의 내면이 반영되어 있다. 그는 사진을 인문학의 도구로 생각한다. 자작나무에 생명 경외와 인간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이입한다.

“새하얀 아기 피부 같은 빛에서부터 검고 거친 할머니 피부 같은 빛까지 모든 빛은 사진작가에게 중요합니다. 저의 감정 상태에 따라, 피사체인 자작나무가 처한 환경에 따라 원하는 빛을 포착하게 됩니다.” 전시는 11월 6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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