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장경판전
[데스크 칼럼] 장경판전
  • 승인 2022.11.0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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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사회부장
한국은 1988년 처음 유네스코에 가입했다. 지금까지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은 석굴암, 창덕궁, 경주 역사유적지구 등인데 우리는 팔만대장경이 유네스코에 먼저 등록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집인 장경판전이 가장 먼저 등록됐다. 1995년에 해인사 장경판전, 2007년 팔만대장경이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팔만대장경은 무려 5천 2백만 자로 추정되는 글자 하나하나가 오자·탈자 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한 그 방대함에도 놀라게 될 뿐만 아니라 한자 한자 글씨도 가치가 크다. 추사 김정희는 “사람이 쓴 것이 아니오 마치 신선이 내려와 쓴 것 같다”고 극찬할 정도이다. 팔만대장경판의 제조과정을 보면 바닷물에 3년 담구고 다시 소금물로 삶아낸 뒤 옻칠을 한다. 이런 대장경을 보관한 곳이 장경판전이다. 장경판전은 세조 3년(1457) 판전 40여 칸을 중창했고 성종 19년(1488) 30칸의 대장경 경각을 중건한 뒤 보안당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광해군 14년(1622)에 수다라장, 인조 2년(1624)에는 법보전을 중수했다. 1972년 해인사를 방문한 박 전 대통령은 대장경이 화재로 소실될 것을 우려해 경판을 보관할 새로운 건물을 짓도록 지시한 적이 있다. 당시 5억 원을 투입해 최첨단 콘크리트 건물을 지었지만 옮겨진 경판이 뒤틀리기 시작하고 결로 현상이 발생해 경판 이사는 취소됐다고 한다. 무려 600년에 이르도록 아무런 부패도 없이 이어져온 대장경의 비밀이 장경판전에 있다. 장경판전은 수다라장과 법보전이 남북으로 위치해 있다. 이들 건물은 서남향으로 설계해 낮동안 모든 경판에 한 번씩 햇빛이 비치게 된다. 조상들은 태양의 고도와 일조량을 모두 계산해 여름에는 직사광선을 피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볕이 들 수 있도록 과학적으로 설계했다.

뿐만아니라 아래위로 배치한 창문의 크기를 다르게 해 바람이 바로 빠져나가지 않고 한 바퀴 휘돌아 위쪽 창문으로 나가게 하는 통풍의 비법을 선보였다. 장경판전을 지을 때 흙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넣음으로써 습도를 조절하도록 했다. 자연의 조건을 이용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설계가 아닐 수 없다.

요즘은 각 지자체뿐만 아니라 커피매장 운영자도 잘 보존된 전통 기와집을 찾아내 훌륭한 관광 또는 상업상품으로 탈바꿈 시키고 있다. 그 많았던 한옥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이미 상당수가 사라진 탓에 외국인에게 보여줄 우리 문화가 그만큼 부족해 졌다.

최근 모든 시설이 개방된 청와대를 방문하고 왔다.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의 집이니 만큼 화려할 것이라는 추측과 달리 무척 소박한 내외부가 우선 눈에 띄었다. 칠이 벗겨지거나 오래된 벽이 드러나 있었고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방들이 많았다. 관저 역시 평범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머리를 했다는 미용실을 보며 관람객들은 한마디씩 했다. 세월호와 관련된 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추억하는 이들이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이곳에 이사오기 싫어한 이유도 청와대를 직접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갈 만 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곳에 귀신이 나온다고 했다는데 그럴듯 해 보인다. 블루 하우스의 블루 역시 우울함을 포함하고 있는데 푸른 기와가 주는 느낌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있을 터이다. 예산 편성을 했다 안했다로 말이 많았던 영빈관도 더 최신식으로 지으면 좋을 것 같고. 우리 국력에 비해 청와대가 왜소해 보이는 느낌은 들었다.

이미 여러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중언부언이 되겠지만 청와대가 별다른 준비없이 대통령실로 이름을 바꾸고 용산으로 옮겨진 것은 두고두고 지적을 받을 것 같다. 청와대가 우울해 보이기도 하고, 화려한 아파트 문화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살고 싶지 않은 곳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국격에 맞는 대통령실, 새로운 집무공간을 먼저 지은 다음 옮겼으면 어땠을까. 600년 전 조상들은 장경판전을 지을때 기초에 기초를 다지고 과학적 방법을 모두 동원해 대장경을 보관했다. 장경판전에 버금가는 수백년동안 변하지 않는 대통령실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 대통령 집무실을 두고 뭔가 허둥대고 있다는 걱정이 많다. ‘빨리 빨리’ 문화때문에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던 때가 어느순간부터 지나갔나 싶었는데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조상들에게 면목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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