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년입니다] 손정인 SJI 로컬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 평범한 지역 자원 재조명에 답이 있었다
[나는 청년입니다] 손정인 SJI 로컬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 평범한 지역 자원 재조명에 답이 있었다
  • 윤덕우
  • 승인 2022.11.01 21: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향 울진으로 돌아온 디자이너
고포 미역 활용 프로젝트 돌입
LP 형태로 소분된 미역 판매
바다 봤던 추억 떠올리게 유도
“자원의 가치 올바르게 알고
트렌드 맞는 리디자인 중요”
◇근무 트렌드의 변화! 긱 워커(Gig Worker)가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은 흔히 돈으로 대변된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생산수단 보유 여부에 따라 직업이 구분되고, 돈을 버는 방법과 형태도 달라진다. 생산수단을 가진 자(자본가)는 사업가나 투자자로서 돈을 벌게 된다. 그리고 그렇지 못 한 자들은 노동자로서 돈을 벌게 된다. 노동자가 돈을 버는 방법은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방법과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소득을 창출하는 방법이 있다. 쉽게 말해 전자는 근로자, 회사원, 아르바이트생 등으로 불리는 ‘임금노동자’를 의미하고, 후자는 자유업 혹은 프리랜서 등으로 불리는 ‘비임금노동자’를 의미한다. 소상공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 범주안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물가,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본인의 본업 이외에 부가적 수입을 찾아 나서는 일명 N잡러들이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자기 계발이나 자아실현을 위해 퇴근 후나 주말을 이용해 자신의 취미와 특기를 살려 부업에 뛰어드는 N잡러들도 늘고 있다. 다시 말해 임금노동자와 비임금노동자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다. 임금노동자이면서 비임금노동자일 수 있고, 비임금노동자이지만 상황에 따라 때로는 임금노동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빠르게 바뀌고 있는 노동시장은 긱 경제(gig economy)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또한 변화시켰다. 노동 수요자 측면에서는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임시직을 섭외해 일을 맡기는 형태가 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 초단기 근로자 ‘긱 워커(gig worker)’를 반기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노동 공급자 또한 이러한 근로 형태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커리어 플랫폼 알바몬과 긱몬에서는 MZ세대 1,188명을 대상으로 프리랜서 의향 선호도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무려 65.4%의 청년이 ‘직장보다는 프리랜서’를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가 도출되었다. 즉, ‘긱 경제’라는 경제 현상 속에서 ‘긱 워커’는 새로운 노동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당신의 시간은 얼마입니까?

긱 경제의 확산은 사회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당신의 시간은 얼마입니까?’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고 있다. 일 자체를 조각조각으로 나누어 바라보게 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는 저마다의 관점에서 그 값을 책정하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자본가는 저렴한 값에 퀄리티 높은 시간을 갖고 싶어 하고, 노동자는 자신의 시간을 비싼 값에 팔고 싶어 한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치와 능력치가 더욱 가치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한편, 긱 경제의 확산은 개인의 시간과 역량을 거래한다는 관점에서 인프라 중심의 일자리를 고수해 온 지역사회에도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필자는 그동안 대구경북 지역에서 청년들의 창업과 지역정착을 도와 왔다. 이 과정에서 지역살이를 꿈꾸는 청년들과 수많은 면담을 이어왔는데, 안타깝게도 지역을 잘 모르는 청년들의 경우 지역의 시간은 느리게 흐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 청년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역의 시간은 결코 느리지 않다. 오히려 더 감각적이어야 하고 트렌드에 민감해져야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쟁취할 수 있기 때문에 느리다는 표현은 적합지 않다. 또한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져서는 그 어떤 일도 해낼 수 없다. 지역 안팎으로 자신과 함께 새로운 일을 도모할 파트너를 찾아 합을 맞추는 시도를 게을리해서도 안 되고, 자신의 시간을 적절한 값에 팔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과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은 개인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즉, 로컬에서의 시간은 개인의 성장을 빠르게 도울 뿐만 아니라 그 시간을 경제적으로도 가치 있게 평가받을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자신의 시간을 로컬에 투자하며 그 가치를 바탕으로 전문가적 성장을 꿈꾸는 청년이 있다. 로컬디자이너 손정인 대표(sji 로컬 디자인 스튜디오)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는 신조로 클라이언트의 사업성과 지역성을 같이 고민하는 경북 울진의 로컬혁신가이다.

“저는 제 시간이 클라이언트에게 더욱 가치롭게 평가되는 날을 꿈 꿉니다. 그 가치는 울진(로컬)이 극대화시켜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디자인한고포미역
손정인 대표가 재해석하여 디자인한 고포 미역.

◇로컬에서 시간을 다루는 비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서는 디자인을 공부했고, 대학 졸업 후에는 수도권에서 직장생활을 이어온 손 대표는 서른을 목전에 앞두고 울진을 자신의 꿈의 무대로 삼고 싶다는 마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모두 울진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지역에서 시도할 수 있을지와 그것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이었기 때문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었다고 했다. 로컬에서의 시간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잠시 잠깐 인정받는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지속해야 할지 고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답은 ‘지역과 자신이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하는데서 찾아보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지역은 디자인 감각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지역과 함께 알려야 승산이 있었습니다. 그냥 손정인이 아니라 울진의 손정인이라는 각기 다른 고유성을 강조해야만 했죠. 그래서 어깨가 더욱 무거웠던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로컬에서의 시간은 특별함 그 자체였다’고 말하는 손 대표는 로컬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리고 그 특별함은 손 대표 자신을 시간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들어주었는데, 이것은 로컬의 가치를 재조명하여 작품으로까지 이어지게 했다고 말 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 로컬의 가치를 재조명해서 지역을 알리고 디자이너 손정인을 알리는 일 자체가 제 몸값을 올리는 새로운 방법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흔하게 마주했던 울진의 미역이 저의 시간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지역은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매우 빠르게 흘러가고 있어요. 디자이너로서의 울진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은 시대를 앞서가면 앞서갔지 뒤처지지는 않는 삶이라는 것을 매일매일 체감 합니다”
 

손정인대표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는 로컬디자이너 손정인 대표. 지역청년들에게 자신의 지역정착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손 대표가 지역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의 첫 프로젝트는 ‘rhythm of gopo’이었다. 울진 고포 지역의 미역을 현대인의 식습관에 맞게 소분하여 제품화하는데, 자신만의 디자인 색을 입힌 프로젝트였다. 디자인 콘셉트는 소분된 미역을 소비할 때마다 울진 바닷가의 추억과 파도 소리를 들었던 경험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품은 LP 형태로 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성과는 기대 그 이상이었다. 로컬 디자이너로서 손대표의 정체성을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 대표는 지역의 가치를 트렌디하게 해석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과 자신의 가치를 동시에 알릴 수 있는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었고, 로컬에서 시간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지역의 자원에서 비롯된 가치 자체는 제자리에서 묵묵히 우리를 기다려 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을 바르게 알고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어울리도록 재디자인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느림과 빠름의 균형을 잘 잡아나가야 하겠죠.”

손 대표는 로컬에서 시간을 다루는 자신만의 비결이 느림과 빠름의 균형유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지역을 공부하고 있으며, 자신이 로컬에서 보내는 시간이 경제적 가치로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경제적 가치가 사회적 가치로 인정받았을 때 자신과 같이 지역 살이를 꿈꾸는 청년들(협업 파트너)이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라고 했다.

◇로컬은 변화하는 노동 트렌드에 전면으로 도전할 수 있는 기회

지역은 인구가 줄어들면서 인구가 지탱해 온 공동체성과 인프라가 함께 붕괴되는 악순환 굴레에 놓여있다. 최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책기조 속에서 청년 인구를 부여잡고자 하는 지역의 고민은 시작되었지만, 아직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대규모 국책사업과 대기업 유치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인구를 유지하겠다는 지방정부의 경제성장 전략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혹평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청년들이 로컬에서 보여주고 있는 값진 시간들은 새로운 노동 트렌드와 함께 지역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더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손대표와 같은 혁신적인 청년들의 활약 속에 지금 이 시간에도 지역 곳곳에서는 청년의 시간과 지역의 시간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

※ 긱경제: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사람과 임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형태)
 

 
이미나 (청년활동연구가/교육학박사)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