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가을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 개구리·귀뚜라미·접시꽃…화폭에 담은 서정적인 가을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가을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 개구리·귀뚜라미·접시꽃…화폭에 담은 서정적인 가을
  • 윤덕우
  • 승인 2022.11.0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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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조초충도 작가 전기
“조용하고 간결하면서 담대
신묘한 경지에 도달” 평가
신사임당 ‘어숭이와 개구리’
잠자리·방아깨비·접시꽃 등
가을 풍경 떠올리게끔 유도
정선 ‘추일한묘’
고양이는 고희, 벌은 공경 의미
건강·장수 축원하는 마음 담아
아침 저녁 기온이 차가워지면 창문 너머 앞산에 나무들은 옷을 바꿔 입었다. 바야흐로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맑고 높은 하늘 먼 구름에서 떠돌던 가을 기운이 이제는 겨울을 예감케 하는 쌀쌀함으로 우리 곁에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여름 내내 그악스러운 울음을 울던 매미의 소리는 어느덧 모두 그쳤다.

저녁 운동으로 아파트 정원을 거닐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가냘픈 신음소리에 그 자리에 멈춰 귀를 기울여 본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가을벌레 소리!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부디 잊지 마라 달라고 애원하는 듯하다.

며칠 전 본 협회에서 실시한 이론 특강 수업을 진행하며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깊이 공부하게 되었다. 그 덕분으로 풀숲에 사는 그 가냘픈 울음소리에 초충도 속 벌레들의 움직임을 상상해 본다.

풀벌레들이 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같은 종류의 곤충도 상황에 따라 소리의 크기와 주파수, 간격을 달리하여 독특한 소리를 내는데 짝을 찾을 때 내는 소리와 적이 나타났을 때 주위의 동료들에게 알리는 경고의 소리가 다르다고 한다.

풀벌레들은 날개를 비비거나, 뒷다리를 날개에 비벼서 우는데 날개를 1회 비비는 동작을 파동이라고 하며, 벌레의 종류에 따라 파동이 다르고 1초당 4~5회에서 200회까지 울고 같은 종류이라도 온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귀뚜라미의 경우 주파수는 1500~10,000 Hz로 파동이 규칙적이라 음악 소리처럼 들리게 된다. 게다가 한 마리가 울면 여러 마리가 따라 우는데 마치 청개구리의 합창 같기도 하다. 물론 개구리의 울음소리보다는 듣기 좋지만... 사람이 듣기에 제일 좋은 주파수의 범위는 1000~5000㎐로서 이 부근에서 소리를 가장 예민하게 느낀다고 볼 수 있으며, 그래서 귀뚜라미의 소리를 듣기 좋게 느낀다고 한다.

귀뚜라미는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서 가을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벌레이다. 그 우는 소리를 본떠 “귀돌-> 귀똘-> 귀뚤”에 작고 귀엽다는 의미의 접미사“ -이 ” 또는 “-아미”가 더해져서 된 의성 명사이다. 8~10월에 정원이나 풀밭 부엌 등에 살면서 가을을 알리듯 밤에 우는 귀뚜라미는 옛날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을철 서정을 다룬 소재로 문학과 그림에 나타나고 있다. 오늘은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의 모습을 우리의 옛 그림에서 찾아보았다.
 

화조초충도-전기
전 전기(傳 田琦) 화조초충도(花鳥草蟲圖) 지본담채 28.5X19.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기(田琦)는 19세기 중엽 조선에서 활동한 화가로서 생몰년도나 구체적인 경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30살이 되던 1854년에 요절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호는 고람(古藍) 또는 두당(杜堂)이라고 전해지며 조희룡(趙熙龍), 유재소(劉在韶), 유숙(劉淑) 등과 매우 가깝게 지냈던 중인 출신으로 김정희(金正喜)의 문하에서 서화를 배웠다. <호산외사(壺山外史)>의 ‘전기전 (琦田傳)’에 의하면 “체구가 크고 빼어나며 인품이 그윽하여 진·당(晉唐)의 그림 속에 나오는 인물의 모습과 같다”고 하였으며, “그가 그린 산수화는 쓸쓸하면서도 조용하고 간결하면서 담백하여 원대(元代)의 회화를 배우지 않고도 원인(元人)의 신묘한 경지에 도달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그의 시화는 당세에 짝이 없을 뿐 아니라 상하 100년을 두고 논할 만하다”고까지 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가 있다.

그가 활동하는 시대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중세적인 질서가 해체되면서 근대적인 요소가 활발히 성장해 가는 시기였다. 한양이라는 조선시대의 수도가 차츰 서울이라는 도시로서의 규모를 갖춰가고 있었으며, 양반이 아닌 중인 계층에서도 새로운 스타일의 도시문화를 주도하는 부류가 생겨나고 있었다. 전기(田琦)는 그러한 무리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그림 초충어해도 화첩에는 다양한 꽃과, 새 그리고 곤충이 등장한다. 세밀한 관찰력과 깔끔한 붓질로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한껏 드러내는 갈대와 곤충, 잠자리 특유의 몸놀림과 먹잇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새의 비장함으로 화면 구성의 독특함을 자아낸다.

화면 하단부에 가을벌레의 대명사인 귀뚜라미가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당당하게 등장한다. 이러한 용기 있는 모습에 귀뚜라미를 추초생(秋初生)이라 부르기도 했다. 즉 가을 일찍이 나와 계절을 알려주는 젊은이라는 뜻으로 당당하고 용기 있는 선비로 비유 된 것인데... 전기(田琦)의 화조충어도 속 귀뚜라미가 바로 그런 형상인 듯하다.

귀뚜라미는 한자로 실솔 또는 괵아라 하는데, 괵아는 독음이 중국에서 ‘관아(官衙)’와 비슷하기 때문에 같은 뜻으로 쓰인다. 또한, 난초에 잎이 좀 길게 뻗어 보랏빛 꽃을 피운 것을 “손”이라 하는데 그 부르는 음이 “자손 손(孫)”와 같다. 난초와 귀뚜라미가 같이 그려진 그림은 동음이자의 독음에 의해서 “자손이 官衙에 들다.”의 뜻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가을벌레 그림을 찾아보자.
 

어숭이와 개구리-신사임당
전 신사임당(傳申師任堂) 필 초충도 중 5폭 어숭이와 개구리 32.8X 28.0cm 지본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 유명한 신사임당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초충도(草蟲圖)이다.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은 이이(李珥)의 어머니로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여류화가이다. 시,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났고 자수도 잘 하였다. 그림에 있어서는 산수, 포도, 대나무, 매화, 그리고 화초와 벌레 등 다양한 분야의 소재를 즐겨 그렸다. 여덟 폭 병풍의 초충도 중 어숭이와 개구리가 나오는 그림은 가을의 대표 소재들이 많이 들어있다. 어숭이는 접시꽃의 서울 사투리로 가을을 대표하는 추규(접시꽃)이며, 가을을 대표하는 곤충인 고추잠자리와 가을을 상징하는 방아깨비가 함께 그려져 깊어가는 가을의 분위기를 잘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방아깨비는 예전부터 가을 들판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는 전형적인 가을 곤충으로 알려져 있다. 한자로 종사(&#34749;斯)‘ 라고도 하는데, 알을 한번에 99개를 낳으므로 역시 자손을 많아 낳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정선의 <추일한묘秋日閑猫>와 같이 가을 풍경을 묘사하고자 할 때 방아깨비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추일한묘-정선
겸재 정선(謙齋 鄭敾) 작 추일한묘(秋日閑猫) 견본채색 30.5 X 20.8cm 간송미술관 소장.

정선(鄭敾 1676~1759)의 <추일한묘(秋日閑猫)>에는 겸재의 세심한 관찰력과 실물을 그대로 그려내는 능력이 유감없이 드러나 있다. 가을볕이 따사로운 어느 날 연보랏빛 국화가 핀 뜰에 금빛 눈의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멋모르고 땅에 내려앉은 방아깨비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고양이, 방아깨비, 국화 꽃잎은 실물과 다름없이 세밀하게 묘사했지만 국화 줄기와 잎은 간략하게 묘사했다.

그림의 의미를 더 깊이 알아보자. 고양이는 묘(苗)로서 70의 나이를 나타내고, 방아깨비는 당(當)으로서 “마땅하다”라는 의미가 있으며 배경으로 그려진 강아지풀은 노(老)로서 노인의 뜻이 있고, 국화는 지조 있는 선비를 말함이며, 벌은 봉(奉)으로서 ’떠받들다‘라는 의미가 있다. 아마도 이 그림은 그림을 받는 분이 70대 어르신으로서 “학문과 예술 그리고 지혜를 두루 겸비한 대인(大人)으로서 주변으로부터 추앙과 존경을 받는 분일 것이며, 건강하게 장수함이 마땅하다.”라는 뜻이 들어있는 건강 장수를 축원하는 의미의 그림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아파트 정원의 그 가냘픈 울음소리의 주인공을 다시 만나보자. 어두운 저녁이라 그 모습을 찾지는 못했지만 흔하게 들을 수 없는 소리라 한참을 그 앞에 서있었다. 그 울음소리는 기세등등하게 뜨거웠던 계절이 지나간 자리에 슬쩍 휘감고 돌아가는 바람 한줄기 같기도 하고, 앞으로 다가올 계절에 대한 준비와 한해의 마무리에 위한 성찰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변화가 있는 요즘, 이러한 자연의 순리가 담고 있는 의미를 새삼 되새겨보게 된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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