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절망을 넘어,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자
[화요칼럼] 절망을 넘어,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자
  • 승인 2022.11.0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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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문학박사
웃지 말라, 꾸짖지도 말라

쉽게 이야기하지 말라

때리는 채찍은 장난이겠지만

맞는 개구리의 배는

생명과 이어지는 아픔,

한 사람의 깊은 아픔은 누구도 달래지 못한다

안녕은 못하고 떠나지만

잊지 않을 거라고 전하여다오

-박남수 시, 「안녕 안녕」 중에서



박남수 시인이 남기고 간 이별사 「안녕 안녕」은 절망적이다. 발 디딜 곳 없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쫓기듯 먼 곳으로 떠나갈 수밖에 없는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고국을 버리고 타국으로의 이민을, 친지들에게조차 알리지 못하고 떠나갈 수밖에 없었음을, 이별의 말 한마디조차 남길 수 없었음을 한 편의 시 「안녕 안녕」에 담아 보낸다. 마지막 수에서 시인은 아픔을 추스르며 애원한다. ‘웃지 말’아요, ‘꾸짖지도 말’아요, ‘쉽게 이야기하지 말’아요, ‘때리는 채찍’은 장난처럼 쉽겠지만, ‘맞는 개구리의 배는’ 생명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픔이라오, ‘누구도 달래지 못’하는 깊은 아픔을 간직하고 떠나야 하는 이별의 절절함에 가슴이 아려온다. 그러나 시인은 이별사 속에 일말의 기대를 묻어둔다. ‘안녕’이란 말은 ‘못하고 떠나지만/ 잊지 않을 거라고 전’한다. 다음에, 이 다음에는 우리 환하게 웃으며 만나자고 손을 흔들어주고 있다.

한국의 수도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에서 156명의 청년들이 산화했다. 그날 이후, 비명에 떠나간 희생자를 애도하며 국민들도 절망으로 목숨을 연명하고 있다. ‘한국’과 ‘압사’는 어울리지 않는 수식이다. 아직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지금까지 압사는 후진국형 재난으로만 알고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서도 시민의식이 부재한 몇몇 국가에서 무질서, 혼돈, 광기 등으로 표출되어 나타나던 것이 압사였다. 한국은 한일 월드컵, 탄핵 촛불 집회 등에서 100여만 명이 좁은 공간에 몰려 있어도 사고는커녕 난동조차 거의 없어 세계의 칭송을 받던 나라가 아닌가. 이처럼 ‘한국’에서의 ‘압사’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믿을 수 없고, 어떤 단어로도 위로할 수 없는 안타까운 압사 참사가 발생하였고, 우리는 함께 애도하며 일상으로 돌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왠지 불안하다. 다시 한국사회에서 무질서, 혼돈, 광기 등의 표출에 휩싸이는 집단 비극만은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국민애도기간이라는 절망의 냉기 속에도 간간이 희망의 씨앗이 날아들었다. 15세 희생자 친구들이 남기고 간 “어른 돼도 잊지 않을게” 라는 손편지는 추모객의 눈물을 따듯하게 데웠고, 스무살 청년음악가는 플룻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하며 희생자의 아픔을 달랬고, 17살 희생자의 마지막 등굣길에는 환하게 웃는 꽃보다 아름다운 소년의 영정을 든 엄마가 교실에 등교하여 먼저 간 아들을 대신해 허리숙여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사’를 드려 배웅 나온 친구들과 선생님의 슬픔을 눈물바다에 묻어주었고, 참사 현장을 목격한 상인은 희생자를 위한 제사상을 차려놓고 큰절을 올리며 “애들 밥 한 끼 먹여 보내고 싶었다”는 말에 상을 차린 상인도 울고, 시청자도 울었고, 16살 희생자 친구는 “우리 아직 너무 어리고 할 것도 많은데, 20살 30살 10000살이 되어도 함께 한다는 거 잊지 마. 나랑 다녀줘서 고마웠어”라며 마지막 인사에서 희망의 약속을 희생자에게 선물하였고, 참사 당시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겠다고 울부짖던 이태원 경찰관은 “유족께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고, 윤대통령 부부는 하루도 빠짐없이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사찰, 성당, 교회 등에서 희생자를 애도하는 기도를 올렸다.

국가 발전과 정치 발전은 그 궤를 같이한다. “믿을 수 없는 참사 앞에서 여전히 황망하고 가슴이 아프지만, 정부는 이번 참사를 책임 있게 수습하는 것은 물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는 발언은 국민의 마음을 대통령의 입을 통해 전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실천이다. 절망을 딛고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자. 이태원 참사가 정치 발전과 더 나아가 국가 발전의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자. 너와 나, 아니 우리 다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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