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비슬산 너덜겅 걸으며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비슬산 너덜겅 걸으며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 김종현
  • 승인 2022.11.0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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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미래를 향해 도도히 흐르는 강(向未來滔滔之江)
크게·넓게 보려면 침묵으로 봐라
깊이 빠져들려면 침묵을 늪으로
침묵의 강물은 진리를 향해 흘러
종교에서는 수행수단으로 ‘침묵’
중국고서지학에서 살펴 본 조선
사마천 사기에 ‘조선·기자’ 언급
남북조시대 배인이 저술한 ‘사기집해’
습수·열수·산수 세 강물 합쳐져 ‘열수’
가장 먼저 아침햇살 받아 신선함 지녀
달구벌호수
달구벌호수. 그림 이대영

◇비슬산 너덜겅, 초월의 강

2005년 어느 여름날이다. 직장 동료직원이 승진하지 못함을 비관하더니 우울증으로 시달리다가 13층 아파트에서 50세 인생을 마감했다. 비슬산 대견사에서 사후 49일만에 천도재의 종제를 올린다고 해 생전인정을 잊지 못해 참석했다. 비슬산 기슭에 있는 예연서원 앞뜰에 세워진 곽재우(郭再祐, 1552~1617)와 곽준(郭遵,1550~1597)의 삶의 기록을 읽으며, 신도비(神道碑)라는 의미를 새삼 생각했다. 유교에서 신도비란 “산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위해 저승길(神道)을 닦고자 이승의 기록을 돌에 새김”이란 뜻이다. 불교에선 “죽은 영혼을 위해 악업을 벗어던지고 좋은 세상으로 가도록 하늘 길(천도)에다가 꽃을 뿌리는 제의”로 천도제라 했다.

멍멍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대견사 옆길로 비슬산 너덜겅(block stream)에 들어섰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서 만나리!”라는 가사의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In the Sweet By and By)” 찬송가를 흥얼거렸다.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믿음만 가지고 가겠네.” 20년 이상 같은 직장동료로써 쌓았던 인정은 요르단 강과 같은 생자(生者)와 망자(亡者)를 갈라놓은 침묵이 흐르는 돌 강(stone river of silence)은 아니었다. 1961년에 상영했던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이란 영화에 오드리 헵번이 하늘에 흘러가는 달을 보고 불렀던 달의 강(Moon River)이 있다. “몇 마일이나 되는 넓은 강이여. 어느 날엔가 나는 아름다운 그대에게 건너가리. 그리운 꿈을 낳고, 또 그대는 마음을 깨기도 하네. 그대가 어디로 가건 나는 따라가리. 세계를 바라보려고 방황하는 두 사람. 아직 보지 못한 세계가 많이 있네. 같은 무지개의 끝을 추구하면서, 무지개다리의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네. 그리운 어린 시절의 친구들인 문리버(Moon River)와 나.”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같이 온 직원들이 나를 찾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더 비슬산 너덜겅을 보고서야 비로소 존 케일(John Weldon Cale) ‘스톤 리버(Stone River)’의 가사가 떠오르게 되었다. “너덜겅, 물이랑 더 이상은 흐르지 않네. 너덜겅, 물이랑 더 이상 흐르지 않네. 사람들이 물을 끊어 주변으로 흐르게 했겠지. 그곳은 물이 흐르는 강이 아니네... 자라는 나무도 없다네. 동물도 눈에 띄지 않네. 흐르고 있는 것이랑? 이젠 막 꿈이 흐르고 있다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어떤 움직임도 없이 조용히 멀리 미래(진리, 사랑, 혹은 꿈)를 향해 흐르는‘침묵의 강’이었다. 이런 ‘침묵의 강(River of Silence)’은 다정한 부부 사이에도 흐르고, 학문을 하는 학자들의 마음속에서도 흐른다. 종교에서는 참선, 명상 혹은 수행수단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뭔가를 크게 넓게 그리고 깊게 보려면 침묵으로 봐라. 깊이 빠져들고 싶다면 침묵의 늪으로 끝없이 들어가라. 소리도 없이 움직임도 없이 침묵의 강물은 진리를 향해 흐른다(To see something big, broad and deep, look at it in silence. To dive deepest, go endlessly into the swamp of silence. Without sound and without movement, the silent river flows toward the truth).”라고 비슬산 너덜겅은 말하고 있다. 비슬산의 너덜겅을 무아지경으로 걷는다는 건 일종의 명상과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초월의 강(river of transcendence)’이다. 남방불교 위빠사나(毘婆舍那) 혹은 북방불교의 디야나(禪那)에 해당하는 수양방법인 명상 혹은 참선이다. 세상을 바라다보는 색안경(sunglass)과 같은 ‘관(觀)’이다. 이는 생각을 멈추고(止) 혹은 멈추고 놓아줌(止息)을 거쳐서 새로운 뭔가 자리 잡음(定)에서 움직이지 않는 마음의 지혜(觀)을 얻게 된다. 이것은 바로 지혜(慧)에 해당한다. 이런 수행과정을 ‘사마타(samatha, 奢摩他)’라고 했다. 가장 단순한 ‘본다(見)’는 말에도 바르게 본다(正見), 분명히 본다(了見), 능히(가히) 본다(能見), 두루 본다(遍見), 차례로 본다(次第見), 딴 모양으로 본다(別相見), 뒤집어 본다(覆見), 입장 바꿔 본다(逆地見) 등이 있다. 다시 요약하면, 위빠사나란 산스크리트어로 ‘위(Vi)’란 “초월한(supper) 혹은 특별한(special)”이고,‘빠사나’는 ‘보다(seeing)’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렇게 보는 걸 성찰 혹은 통찰 차원을 넘어서 자성과 충만(充滿, introspection, mindfulness)을 얻기 위함이다.

◇달구벌 호수에서 조선(아침의 신선함)이 탄생

먼저, 조선에 대해 중국고서지학에서 살펴보면, 기원전 사마천(司馬遷, BC 145 ~BC 86)이 저술한 ‘사기’에서 “법도를 위반해서 은나라의 국운이 쇠퇴해지자, (기자는) 조선으로 갔다”혹은 “기자를 조선에 벼슬을 봉했으나 신하는 아니었다(封箕子於朝鮮, 而不臣也).”라는 구절에서 조선과 기자(箕子: 箕星之人, 출생미상~BC 1,082)라는 말이 나왔다. 여기서 조선(朝鮮)이란 조양(朝陽), 오늘날 중국 라오닝성의 성도에 도읍했던 기자를 조상(箕子朝陽, 國朝鮮)으로 하는 나라를 말했다. 기자(箕子)에 대해 ‘논어주소(論語注疏)’에서 “미자(微子)는 주왕의 무도함을 보고 일찍 떠나버렸지만, 기자는 미친 척하고 노예가 되었으며, 비간(比干)은 간언을 하다가 죽음을 당했다.”라고 적혀있다.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AD 386~589) 편찬된 사기주역서를 배인이 저술한 ‘사기집해’에서도 “조선은 습수(濕水), 열수(洌水) 및 산수(汕水)가 있는데 세 강물이 합쳐져서 열수(洌水)가 되었고, 아마(疑) 이곳 낙랑(樂浪)을 조선이라고 불렸을 것이다(疑樂浪, 朝鮮取名於此也).” 당나라 사마정(司馬貞, AD 679~732)의 사기집역서인 ‘사기색은(史記索隱)’에서는 “조선이란 발음은 조선(潮仙, Joseon)이다. 산수(汕水 : 泳魚之水)가 있음으로서, 산(汕)의 발음의 하나인 선(仙)이다” 조선시대 1530년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조선이란 “나라가 동쪽에 있어서, 가장 먼저 아침 햇살을 받아서 광명(光明)과 신선(新鮮)함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곳이라고 칭했다(國在東方 先受朝日之光鮮 故名朝鮮).” 또한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사설’은 “조(朝)는 동방(東)이고, 선(鮮)이란 선비족(鮮卑族)을 의미한다(朝是東方, 鮮謂鮮卑).”고 했다.

일본사학자들은 “조선이란 중국에서 조공(朝貢)을 적게 바치는 나라(朝貢鮮少之國).”라고 멸시함으로 사용했던 용어로 해석하고 있다. 황국신민역사관 혹은 식민지사관으로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한서 제28권하(漢書卷二十八下) 에서 “기자는 조선에 부임하여 백성을 교화하였다(箕子赴朝鮮, 敎百民了).”이렇게 기자조선을 사실상 기록하고 있다. 또한 1343년 원나라(元國)의 중서우승상(中書右丞相) 토크토(托克托, 1314~1355)가 저술한 거란족의 역사서 ‘요사(遼史)’에서도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였던 오늘날 요령성 라오양(遼陽, 古代朝陽)이 조선(朝鮮)의 땅이었다(東京遼陽府, 本朝鮮之地).”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기록은 조선반도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정된 나라의 경계(輿地)가 아닌 만주까지를 조선반도라고 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글= 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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