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문상
[달구벌아침] 문상
  • 승인 2022.11.1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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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여름 끝, 가을이 시작하자 동창회에서 동창들 부모님의 부음 문자를 보내왔다. 가까운 친구도 있고, 이름만 기억나는 친구도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문자가 왔다. 직장에서도 전국에서 직원 가족의 부음 문자가 온다. 덥다가 갑자기 쌀쌀해지는 날씨를 이기지 못한 탓인지 자주 왔다. 마음이 무거웠다. 당사자들은 오죽이나 슬플까.

엄마를 보러 갔다. 이제 자식들의 이름을 기억하지도, 자식들인지 알지도 못하는 엄마다. 그래도 혈색은 좋아보였고, 컨디션이 좋은지 크게 웃기도 했다. 그것으로 족했다. 아직 직접 얼굴을 볼 수 있고, 손을 만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래도 울적한 마음은 들었다. 건강하고 젊던 엄마의 기억이 또렷한데 이제 현실에서는 볼 수가 없다. 기억 속에서만 있을 뿐이다. 그런 울적한 기분을 달래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엄마보다 나이가 적은 작은외숙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작은외숙모의 털털한 웃음이 기억났다. 방학때 고향에서 대구로 놀러오면 서문시장에 가서 원피스와 신발을 사주었던 기억이 났다. 조그마한 밥 공기에 쌀밥을 차려주어 먹었던 기억도 났다. 엄마는 밥을 너무 적게 준다고 했다. 그래서 기운이 나서 일을 하겠느냐고 말이다. 농촌에서 먹는 밥과 도시에서 먹는 밥은 양에서 차이가 났다.

다음날 언니, 오빠들과 함께 장례식장에 갔다. 외사촌 오빠들이 있었다. 친척 중 가장 막내인 홍희여서 홍희가 초등학교 때 이미 20대를 넘긴 오빠들이었다. 어른들이었던 오빠들이 이제 홍희랑 비슷해 보였다. 홍희도 나이를 꽤나 많이 먹었다. 초등학교 때는 워낙 아이와 어른으로 나이차가 많아서 대화도 되지 않고 부끄러워했다. 어색하고 묻는 말에 겨우 대답을 했다. 이젠 많이 살아서 그들의 삶과 자신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고 예상이 되어 대화가 물 흐르듯이 되었다.

태어난 이후 가장 오랫동안 보아온 사람들이다. 추석이나 설에 시골에서 보았고, 가끔 결혼식이 있을 때도 보았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본다. 오랜 세월동안 인연이 끊기지 않고 보는 사이인 친척.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되는데, 그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이들을 같이 보냈다. 처음 기억나는 것은 할머니의 죽음이다. 열두 살의 어린 홍희가 겪는 알 수 없는 슬픔과 달리 그들은 울면서 할머니의 죽음을 맞았다. 벌써 어른인 그들이 우는 모습을 보았다. 엄마도 울었고, 아버지도 울었다. 손님이 올 때마다 울면서 맞이했다. 그리곤 서로 손을 맞잡고 돌아가신 연유를 묻고 위로를 건넸다. 그랬던 것 같다. 그 방에 들어가보지 못했지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손님은 나왔다. 아직 슬픈 표정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차려주는 음식앞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음식을 먹었다. 어린 홍희는 음식도 먹지 못하고 외딴방에 혼자 있었다.

그랬던 홍희가 이제 문상을 간 날이 얼마나 많았는가. 평소에는 잊고 지내지만 문상가면 그리운 사람들. 영정사진에서는 환히 웃는다. 좀 더 자주 만나지 못했을까. 좀더 자주 문안 인사라도 드리지 못했을까. 사는 게 뭐가 그리 바쁘고 허덕이느라 맛난 거 사들고 찾아뵙지 못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사촌 언니 오빠들. 자주 연락하고 만나면 좋겠다는 결심이 생기지만, 그 결심은 장례식장을 나오면서 금새 사라지고 오늘 할 일을 좇느라 바쁘다.

또 만날 일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일까. 그 누구가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는 말처럼 나이하고 무관하게 영정사진을 대하게 된다. 아무쪼록 문상가서 보는 날이 멀었으면 좋겠다. 기쁜 일로 만났으면 좋겠다. 가을이 무르익어 손바닥보다 더 큰 나뭇잎이 떨어지는 날이다. 다들 있는 그 곳에서 오늘 하루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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