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의 수업은
영호의 수업은
  • 여인호
  • 승인 2022.11.1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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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30명이 대군입니까?” 영호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교감 선생님의 이야기 중간에 끼어들었습니다.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던 교감 선생님은 제일 뒤에 앉은 영호에게 달려오셨습니다.

“뭐라고. 이♡♡가(이) 말이 많아.” 동시에 대나무 회초리로 영호의 등을 다섯 번이나 힘껏 내리치셨습니다.

교감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웃 개령고을에 감문 고을에서 30명의 대군을 이끌고…….” 하는 찰나에 영호가 끼어들어서 일어난 일입니다. 영호의 일생에서 가장 심한 체벌을 받은 날입니다.

가뜩이나 말이 적었던 영호는 그 이후에 말수가 더 적어졌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말수가 적으니 괜한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말수가 적은 것은 그때 일도 한 원인이 되었지만, 말이 어눌해서 그런 면도 있습니다.교감 선생님이 체벌 대신에 “다른 사람이 말을 할 때는 경청을 하고, 말이 끝난 다음에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란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요? 영호가 수업을 할 때도 6학년 때와 같은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영호는 한두 번은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좋은 말로 타이릅니다. 그래도 끼어들기가 되풀이될 때는 정문일침을 합니다.

영호는 2015년에 폐교된 경북 김천시 아포읍의 대신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입학을 해서 1, 2학년 통지표에는 양떼와 아름다울 미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2학년 때 고영희 선생님은 지극정성으로 문자와 주산 지도를 해주셨습니다. 6학년 국어시간에 김명진 선생님은 한쪽 분량의 글을 틀리지 않고 끝까지 읽기를 시켰는데, 희망한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에 선생님께서 정확하게 읽으셨는데, 국어의 소중함을 알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아포중학교는 저전거로 십 리가 넘는 비포장길을 다녔습니다. 1학년 영어시간에는 스쿨(School)과 같이 스펠링과 발음기호가 따로 있는 낱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송설당 여사의 애국애민의 정신이 깃든 김천고등학교는 기차 통학과 자취의 경험이 쌓이는 시절이었습니다. 2~3학년 담임이셨던 전장억 선생님은 참 재미있는 국어 수업을 하셨습니다. 사자성어 뜻풀이, 한 번도 막힘없이 술술 외우셨던 사미인곡, 속미인곡, 독립선언문 등등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합니다. 지금은 그리 어려운 낱말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매우 생소했던 표절(剽竊)이라는 말을 영호가 맞추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영호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좋은 수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자청해서 공개 수업도 하고 책을 보고 공부를 하는 데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장학사로 장학지도를 나갔을 때도 수업을 했습니다. 교장이 된 지금도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평소에 생각했던 것을 엮어서 ‘수업?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시작으로 몇 권의 졸저가 세상과 만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영호가 생각하는 수업역량을 ‘역사용 역량’, ‘수업철학 역량’, ‘수업행복 역량’, ‘수업문 역량’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역사용’은 역지사지, 사랑, 용기입니다. ‘수업철학’은 방법에 앞서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는 것입니다. 이론적인 바탕도 튼튼해야 합니다. ‘수업행복’은 수업 그 자체에서 행복을 찾자는 것입니다. ‘수업문’은 언제라도 누구에게라도 내 수업의 문을 활짝 열자는 것입니다. 우리 교대부초 선생님들도 이 네 가지 수업역량을 갖추기 위해 겸손과 열정으로 일신우일신하고 있습니다.

영호는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많은 선생님으로부터 좋은 수업을 받았습니다. 수업을 받은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했습니다. 교원, 교육전문직원, 대학생, 학부모 등 여러 사람들과 영호의 수업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도 많았습니다. 영호의 언행을 되돌아봅니다. 영호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평생의 등불과 소금이 된 적이 있는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슴에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가. 영호의 또 다른 인생수업을 위해서 수업철학이자 인생철학인 ‘절차탁마’의 초심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김영호 대구교대부설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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