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 문화와 달구벌] 하늘의 삼원 다 비춰지는 달구벌…가장 먼저 동이 트는 곳
[신가유 문화와 달구벌] 하늘의 삼원 다 비춰지는 달구벌…가장 먼저 동이 트는 곳
  • 김종현
  • 승인 2022.11.15 21: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7) 조선(朝鮮, Joseon)이 달구벌호(達句伐湖)에서 기원한다면?
1억4천450만 년 전부터 분지 형성
달구벌 호수에 1억4천만 년 전 공룡
‘별나라 별 동네’ 가운데 달구벌 위치
조선, 하늘이 준 음식·앞날 기약 증표
아침신시, 오늘날 용어로 ‘새벽시장’
‘신선한 아침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축제기간 새벽부터 개최됐던 신시’
달구벌별호수
‘키 별자리(箕星)’에 해당하는 ‘별나라 별 동네(辰國辰韓)’가운데 달구벌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림 이대영

◇달구벌, 1억3천만 년 전까지 분지

1990년 상영된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1995년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와 2018년 ‘쥬라기 월드(Jurassic world)’에서 중생대 공룡(dinosaurs)들의 우글거림, 아마존 원시림의 울울창창함, 원시인들의 급변하는 환경에 살아남고자 하는 발버둥 등이 생생함으로 녹아내렸다. 컴퓨터그래픽 기법을 이용해서 중생대 달구벌의 공룡세계를 그려본다면 흥미진진한 ‘달구벌 쥬라기 공원(Dalgubol Jurassic Park)’이 된다.

대략 22억만 년 전 지구환경이 안정화됨에 따라 2~ 3%내외 비중을 차지했던 산소비중이 13%까지 상승했으며, 더욱 화산폭발, 지진 등 지각조산작용으로 지상에 번창했던 양치식물 등이 지하로 매몰(오늘날 석탄 및 석유로 나타남)됐다. 이산화탄소 발생 생물체가 사라져 산소비중이 21%까지 올라갔다. 이에 따라 다세포 혹은 대형 식·동물이 탄생되었고 크게 번성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룡인데 1억6천500만 년 가량 지구촌에 살았다가 대략 6천5백만 년 전 백악기 말(the end of the Cretaceous Period)에 사라졌다. 멸종의 원인으로 확증된 건 i)‘소행성 충돌(asteroid impact)’을 주장하고 있으나, ii) 대규모 기후변화를 발생시키는 화산폭발, 지진 등의 지구환경과 맞물려 돌아갔다. iii) 이외에도 빙하기 동멸설, 초식동물 부적응설, 생존경쟁설 및 복합원인설이 있다.

‘공포의 도마뱀(恐龍, dinosaur)’이란 용어는 1841년 영국 해부학자이며 생물학자였던 리처드 오웬(1804~ 1892)이 이전에 없었던 파충류 도마뱀(공룡)에 대해 그리스어로 ‘끔찍한(Deinos)’ 단어와 ‘도마뱀(Sauros)’을 복합해 ‘공룡’이란 학술어를 만들었다. 이를 1842년에 저술한 ‘멸종된 거대한 나무늘보의 해골에 대한 설명(Description of the Skeleton of an Extinct Gigantic Sloth)’에서 공룡(恐龍)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달구벌은 1억4천450만 년 전부터 1억3천만 년 전까지 분지가 형성되었다. 달구벌 호수에 공룡이 살았던 시기는 1억4천만 년 전까지 거슬려 올라 갈 수 있다. 멸종한 시기는 지질학자들이 말하는 백악기 말까지로 추정되는 6천500만 년 전으로 본다. 거대한 달구벌 호수는 6천 년 전을 기준으로 해도 오늘날 백두산 천지연(天地淵, 9.165㎢)에 비교하면 13배 정도인 120.145㎢(현 달서구 62.34㎢의 1.9배)이었다. 현재 대구시 평균고도는 49m/SL, 면적 883.5㎢의 13.59%를 기준으로, 구글어스(Google Earth) 프로그램을 이용해, 현재보다 5만 년 전(50,000 years bp)으로 가정하면, 팔공산이 968m나 융기했다고 하는데 이를 기준하면 대구시는 평균고도 -939m/SL로 해저에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 달구벌 지질구조상 5 ~ 15m의 수성퇴적암이 생성되었다는 사실은 풍화침식작용으로 주변 산들이 깎여서 쌓였다는 의미다. 따라서 15m/SL이나 낮은 지역(34m/SL)을 추산하면 용수면적이 120.135120.145㎢정도나 된다.

◇달구벌호(達句伐湖) 조시(朝市)에서 조선(朝鮮)

한반도에서 달구벌 호수는 ‘하늘이 비춰지는 거울(天照鑑)’이었고, 천상삼십삼천(天上三十三天)이 열리면 곧바로 달구벌호수에 동텄기에 (새벽) 동트는 달구벌(黎明達句伐)이라고 했다. 한반도 최대의 옹달샘(九泉)으로 “근심걱정 속에서 살다가 편안함 속으로 없어진다(生於憂患, 而死於安樂)”는 종교적인 신비성을 자아냈다. 한반도의 생명체에겐 ‘웅달샘(九泉)’이란 생명줄이 되었다. 별나라(삼한) 때에는 이곳에다가 ‘아침신시(朝市)’를 개최했다.

당시 달구벌호수는 내륙의 바다였다(內陸海). 바다(海)란 “하늘의 못으로 수많은 냇물을 받아들이는 것, 물(水)에다가 매번(每)이 합쳐서 된 글자”라고 설문해자는 설명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 ‘바다’가 있으나, 우리말로 ‘받다(納, receive)’ 혹은 ‘받아들이다(受納, accept)’를 어근으로 한다. 한자로 바다 해(海)를 뜯어보면 ‘인간(人)의 어머니(母)처럼 가리지 않고 뭐든지 받아들이는 큰물(水).”이라는 합성어(compound word)로 보인다. BC 237년 진시황에게 상신한 이사(李斯, BC 284 ~ BC 208)가 쓴 간축객서(諫逐客書)에서 “(천하에 제일 높다는) 태산은 한 줌의 흙더미도 사양하지 않았기에 그 높음을 이룰 수 있었고, 넓은 바다 하해(河海)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였기에 그 깊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고 했다.

하늘의 삼원(三垣)이 다 비춰지는 거대한 거울(天三垣鑑)이었던 달구벌이 가장 먼저 동트는 곳이라고 믿었다. 당시 천문학으로 옥황상제가 사는 자미원에 하늘 닭(天鷄)이 있었고, 천계(하늘 닭, 天鷄)가 울어야 하늘이 열리면서 동튼다고 믿었다(鷄鳴開天, 開天黎明). 또한 닭은 28수 별자리 가운데 동식물의 흉년과 풍년을 관리했고 별나라 ‘키 별자리(箕星)’에 해당하는 곳이 한반도(달구벌)이었기에 ‘별나라 별 동네(辰國辰韓)’가운데 달구벌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단군국조가 개국할 당시에 바다와 산이 만나는 끝자락이라고 ‘아침신시(朝市)’를 이곳(달구벌)에서 열었다. 중국에선 아침신시에 올리는 생선(朝市生鮮)을 특별히 ‘조선(朝鮮)’이라고 했으나, 한반도에선 아침의 신선함(朝市新鮮)까지도 조선이라고 했다. 즉 조선(朝鮮)은 하늘이 준 음식이고 앞날을 기약하는 증표로 사용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신라 박제상(朴堤上, 363~419)의 밀봉사서(密封史書) ‘징심록(澄心錄)’ ‘부도지(符都志)’에 적혀있다. 한반도의 새벽은 “닭이 울어야 동튼다(鷄鳴明黎).”는 믿음에서 이곳을 닭벌(達丘伐, 鷄野)이라고 했고, 이곳을 ‘조시에 올랐던 생선(朝鮮)’처럼 신비스러운 곳(是處是聖地也)으로 여겼다.

◇신시, 신성한 민의광장

‘아침신시(朝市)’를 오늘날 용어로는 억지로 번역하면 ‘새벽시장(天光墟, dawn market)’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례로는 홍콩의 5개 새벽시장을 소개할 수 있다. 날씨가 맑은 날 새벽에 열렸다가 거두어들이기에 속칭 ‘도깨비시장(鬼市, ghost market)’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달구벌의 ‘아침신시(朝市)’는 오늘날 시대감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 설명을 붙인다면, ‘저자 시(市)’자는 허신(許愼, AD 58~ 148)의 ‘설문해자’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의미하며, 시장에는 담장을 둘러 치고 있어 물건을 내다 걸었던 모양(十)을 그린 것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설명은 기원후의 저잣거리(市場)를 설명할 수 있으나 기원전 수천년 전으로 소급되는 ‘달구벌 조시’를 설명하기엔 태부족이다. 태초에 사람이나 동물들이 모여서 정보와 생필품을 교환했던 곳은 산골에서는 옹달샘(谷泉, spring), 들판에서는 물섶(waterfront, 호수, 웅덩이, 늪)이고, 동네에서는 우물(民井, well)이었다. 그러나 제정일치의 단군(제사장과 군장의 통합)에선 신시를 개최해 물물교환, 정보교류는 물론이고, 신에게 감사, 통치이념 전달, 부족 간의 화합 등을 도모했다. 따라서 당시의 ‘저잣거리 시(市)’라는 “소도와 같이 신성시하는 장소에다가 금기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담장과 같은 시설물을 설치하고, 솟대 혹은 상징물(토템)을 들어 올렸던 장대(十)를 형상화했다(牆僻邪惡,而設如神木,故市聖地也).” 따라서 아침신시란 ‘신선한 아침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축제기간 동안 새벽부터 개최되었던 신시(祭開晨市,此謂朝市)’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Acropolis) 혹은 로마제국의 로마 아고라(Roman Agora)에 해당하는 신성한 민의광장(sacred gathering police)이었다.

좀 더 설명을 붙이면 한자 ‘저자 시(市)자’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겨울철 시장 아주머니들이 추위에 무릎에 올려놓은 담요모양(膝甲)이라서 ‘슬갑(膝甲) 불’이라고 했으며, 요리하는 어머니들에게 앞치마 모양이라서 ‘앞치마 불’등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불(市)자로 사용된 사례론 BC 210년 이전 진시황제에게 불로초 불사약을 구해오겠다고 약속했던 서불이라는 사람의 이름자에도 ‘무성할 불(茂盛也弗)자가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용례는 시경 국풍(詩經國風)의 ‘후나라 사람(候人)’에서 “저 길잡이 좀 보게! 어찌 창을 그렇게도 메고 있는가? 저기 저 사람들 좀 보게, 삼백이나 되는 병사들이 붉은 슬갑을 두른 걸 좀 보게나!”라는 시 구절이 나온다.

글·그림= 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