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가을을 보내며
[대구논단] 가을을 보내며
  • 승인 2022.11.1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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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환 전 경산시교육장
가을이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하던 일 잠시 멈추고 확인해보지만, 온 길 모르듯이 가는 길도 알 수 없다. 가을이 빠르게 남쪽으로 흘러가는 것만 확실하다.

가을 산을 찾아가 보자. 가을 산 붉은 치마폭에 마냥 휩싸여보자. 고속도로를 달렸다. 만추의 끄트머리에서 만난 단풍이 저녁노을 붉은빛같이 쓸쓸하다. 가을은 해마다 그렇다. 늘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고속도로는 통행량이 적어 주위를 두리번거릴 여유를 준다. 갑자기 차가 천천히 간다. 운전자들이 가을 산에 정신을 빼앗기는가 보다. 곧이어 터널이다. 터널의 불빛이 LED라 운치가 있다. 이윽고 햇빛을 맞음과 동시에 시야가 훤하다. 양옆으로 동(東))으로는 가산(架山)이, 서(西))로는 유학산이 나온다. 다부동이다

다부동은 6·25 전쟁 때 대한민국의 최후의 보류였다. 다부동 방어선이 돌파되면 대구가 공산군의 포병 사정권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유학산과 가산산성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무려 열다섯 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었고, 적군과 아군의 사상자가 모두 3만 명을 넘었다. 다부동 전투는 국군의 위대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아직도 이곳에서는 전사한 영령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있으며, ‘다부동 전적 기념관’을 설립하여 호국 영령을 추모하고 안보 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그렇게 적군과 아군의 화포가 무려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이 가련한 주검 위에 가을이 왔다. 1950년에 그랬듯이 격전의 여름을 지나고 가을이 왔다. 가을 구름이 원혼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그날의 피비린내를 생각하는지 단풍빛이 처연하다. 못다 이룬 청춘들의 한이 많은가 보다.

이제 자동차는 소백산을 향해 달린다. 단풍은 300리나 되는 먼 길을 끈질기게 따라온다. 이 길은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손해다. 알록달록 단풍이 어느 한 곳 나무랄 수 없기 때문이다.

풍기에서 순흥 소수서원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은행나무길이다. 포도에 떨어진 은행잎과 아직 나무에 매달린 은행잎이 세상을 온통 노랗게 물들인다. 가을 길을 폼나게 한다.

‘전통, 21세기와 해후하다’ 소수서원의 슬로건이다. 전통이 21세기와 해후하면, 역사는 현대에서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

소수서원은 유교 선현들을 제사 지내고 유생들을 교육하는 곳이다. 풍기 군수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시초이다. 1550년에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았다. 이곳에는 국보, 보물, 장서 등이 많이 남아있다. 2019년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서원에 들어서면 소나무 숲이 장관을 이룬다. ‘사적 제 55호, 소수서원 소나무, 172번’ 소나무마다 이름표를 달아 보호하고 있다. 소나무 한그루 한그루는 아름드리 굵기로 늘씬하게 자랐다. 소나무들은 제각기 사연을 담아 하늘을 향해 길게 목을 내밀고 있다.

그렇다. 소수서원 주위 순흥 고을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소수서원에서 수십 리 개울물을 따라 내려가면 ‘피끝’이라는 마을이 있다. 피끝마을은 피가 흐르다 끝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금성대군은 세종의 여섯째 아들이자 단종의 숙부이다.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고, 평소 단종 편에 섰던 금성대군을 이곳 순흥으로 유배 보냈다. 금성대군은 이곳에서 순흥 부사 이보흠을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영남 선비를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켜 단종 복위 운동을 계획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거사가 무르익을 무렵 순흥 부사 이보현의 관노의 밀고로 수양대군의 습격을 받게 된다. 아직 계획 단계에 있던 순흥 고을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고 피바다를 이룬다. 이때 죽은 군사와 순흥부 백성들의 시체는 산을 이루고, 피는 피끝마을까지 흘러내렸다.

소수서원 서쪽 마을에 금성대군 신단과 금성대군위리안치지가 남아있다. 560여 년 전 11월 가을에, 피로 물들었던 순흥은 지금 조용한 시골 마을이 되었지만, 단풍은 오늘도 물길 따라 피끝마을을 찾아가고 있다.

가을 산을 찾아 나선 길에서, 다부동과 금성대군을 만났다. 같은 민족, 같은 집안의 권력 대립의 소모적인 피 흘림을 만났다. 이 가을을 보내며 또 어떤 소모전이 벌어질까 저어되는 마음이 파도가 된다. 2016년 12월의 촛불집회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다. 이태원 참사는 이들의 먹이가 되었다, 12월 겨울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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