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나를 먼저 반성합니다
[의료칼럼] 나를 먼저 반성합니다
  • 승인 2022.11.2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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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수 대구시의사회 정보통신이사 임연수소아청소년과 원장
평소 늘 보던 감기 환자이고 늘 보던 배 아픈 아이들을 보면서 오늘도 틀에 박힌 진료를 하던 나를 반성합니다. 어지럽다 머리 아프다고 오는 아이들을 별거 아닌 시선으로 바라보던 나를 반성합니다. 그중에는 가끔 중환이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하고 귀찮아하던 나는 없었던가?

몇 년 전 배가 아프고 기운이 없다고 내원한 학생이 아빠와 함께 내원한 경우가 있었다. 일요일 진료병원에서 장염이라고 진단을 받았고 구토를 약하게 2번밖에 안 했는데도 얼굴 혈색이 안 좋아 보여 침대에 눕혀 놓고 가슴 청진부터 시작을 했다. 배가 아프다고 하면 으레 배만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은 굳이 눕혀 놓은 자세로 꼼꼼이 진찰을 했고, 심박동이 150회 정도로 그 나이에 나올 수 없는 심박동을 보여서 이건 심장이든 뭐든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 급히 대학병원 응급실로 보냈고 나중에 급성 심근염으로 중환자실로 입원해서 무사히 퇴원을 했다. 만약 내가 그날 심장박동과 호흡을 살피지 않고 배만 진찰했다면, 거기다가 수액을 원하는 아빠 말대로 수액을 놓았다면 아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던 아찔한 경험이었다. 그 외에도 늘 감기지만 그중에는 중환들이 숨어 있어서 늘 보던 대로 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특히 전신 상태(general condition)를 살필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이태원 참사로 꽃다운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버린 그 젊은 영혼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그 가족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한다. 너무 허무하게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라 전국민이 너무 황망하고 가슴 아픈 일이며 그 가족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넘어 스스로를 가누기 힘든 슬픔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사건을 두고 언쟁만을 일삼고 그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을 충분히 하고 있는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조그마한 위험 신호가 감지된다면 살펴보고 점검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도 젊은이들이 좀 모이겠지? 음주나 마약 등으로 문제가 생기면 안되니 순찰이나 하자. 우리 구에 있는 이태원이니 시끄럽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위험해 보이니 경비를 해달라고 전화를 해도 뭔 소리야 애들 노는데 왜 우리가. 경고의 전화가 와도 주말에 귀찮게 왜 이러나 하지는 않았던가. 그리고 머릿속에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을 백날 해도 매뉴얼을 만들고 순서를 머릿속에 넣어놓고 실전 연습을 해두어야 사건이 터지면 머리가 돌아가기 전에 우리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각각의 경우를 대비한 꼼꼼한 매뉴얼이 필요하고 인지하고 예행 연습을 통해 몸이 기억하게 만들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조금만 이상한 것이 있다면 의심해보고 점검해보고 위험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하고 나 하나쯤 모른 척하면 누군가 하겠지라는 생각을 없애야 한다.

이번 사건도 코로나 이후 해방감에 들뜬 이들이 당연히 많을 것이고 2년 넘게 우리는 그런 일들을 해보지 않아 몸이나 머리가 대비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는 것. 그리고 조그마한 위험 신호도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다.

제발 니탓 네탓, 추모는 이렇게 해야한다,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 안된다가 아니라 제발 각자의 위치에서 나는 평소 안일하지 않았던가. 돌아가신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내게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고 이런 일들을 예방하기 위해 입법에 관련된 분들이라면 거기에 맞는 법안을 고민하고 발의하고 일선에 치안과 안전을 담당하는 분들이라면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이 정도의 위험이 감지되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기반성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몇 년 전의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그만큼 많은 논쟁을 해놓고도 무엇하나 준비해 놓은 것이 없다면 우리 모두의 잘못이 아니던가.

오늘도 진료실에 들어오는 모든 환자를 내가 처음 의학을 배울 때 배운 것처럼 활력징후를 살피고 조금이라도 의심해보는 자세를 가지기 위해 반성하고 노력할 것이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반성하고 노력한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희생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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