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옆 소복이 채송화가 피어있던 집 그 집에 세든 이발소가 있었어요 유독 흰 얼굴의 소년이 손님의 머리를 감겨주었지요 그 소년과 짧은 치마의 나는 펌프 물이 푹푹 거품을 낼 때 가끔 마주쳤지요 물방울이 여름 하늘로 솟으면 분홍채송화가 낮 세수를 한 번 더 하였지요
소년의 얼굴도 더 환해졌고요
마당에 있던 소년과 나는 번져가는 노을을 보고 있었지요 함께 대문을 나서 긴 둑을 따라 걸었어요 어둠이 오고 소년은 별이 된 어머니 이야기를 하였지요 소년의 긴 속눈썹에 초록별이 뜨고 별은 소년의 눈 속에서 그렁거렸어요
햇살 가득한 마당에서 소년이 정든 꽃잎처럼 웃었지요
나는 모른 척 웃지 않았고요
소년은 이발소에 다시 오지 않았지요
빨간 목도리를 하고 동성로를 걷고 있었지요
희미한 불빛 아래 옷가지를 노상에 펼쳐놓은 흰 얼굴의 소년
고개 숙인 소년의 목덜미로 바람이 불어오고 흰 달이 건너갔지요
◇김광숙= 대구 출생, 2018년 <시문학>으로 등단,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해설> 얼마의 세월이 흘렀을까? 미소년의 흰 얼굴과 분홍 채송화가 그려지는 아름다운 동화 같은 얘기는 지난 세월의 추억이 되었다. 채송화만 보면 그 소년은 가끔씩 첫사랑처럼 생각나지 않았을까? 가슴 속에 담아둔 별이 된 어머니 얘기를 털어 놓았을 때의 그 마음은 서로를 신뢰하고 있었을 시간. 그 흰 얼굴의 소년을 동성로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목덜미에 불어오는 바람과 흰 달이 건너간 시간을 걸으며 잠시라도 아는 척 할까 하는 망설임은 없었을까?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두는 게 가장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김인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