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인간은 스토리텔링 동물이다
[대구논단] 인간은 스토리텔링 동물이다
  • 승인 2022.11.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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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진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미국 안넨버그 스쿨의 피셔(Walter Fisher) 교수는 “인간은 스토리텔러”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스토리텔링 동물(storytelling creatures)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스토리의 프레임을 통해서 인식하고 그렇게 구성한 스토리 맥락에서 자신의 결정과 행동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스토리 프레임이란 무언가를 원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 원하는 것을 갖기가 힘든 ‘갈등적 사건’이 발생하는 구조를 말한다. 따라서 인간은 주인공인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들이 많지만 주변은 늘 험난하고 방해하는 것들로 넘치는 갈등적 공간으로서 그런 스토리 세계로서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피셔 교수가 보기에 인간이 동물과 다른 독특한 점은 스토리텔링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모두 기억 속에 지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점이 뚜렷하지 않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인간처럼 무엇이 맛있는 것이고 누가 좋은 사람이고 어디에서 잠을 자야 하는지 명확히 지식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강아지나 고양이와 다르게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과거의 사건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명확하게 기억한다. 다시 말해 인간만이 자신의 과거 경험을 스토리 프레임으로 기억에 담아 두고 필요할 때마다 부여된 의미와 함께 그 스토리를 토해내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렇게 쏟아져 나온 스토리는 스토리텔러의 감정, 가치, 윤리가 담긴 것들이다. 그 스토리를 듣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공감하거나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여 준다면, 스토리텔러는 자신의 스토리텔링을 아마 더 신나게 전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옛 경험을 반복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필자의 경우, 모친이 육이오 전쟁시절 피난 가서 고생한 스토리, 험난했던 시집살이 스토리 등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또 직장 동료 중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과거 직장생활의 난관과 극복의 스토리를 열정적으로 반복해서 들려주곤 한다. 모두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자신이 느꼈었던 두려움과 기쁨과 의미들을 소환하고 공유하며 삶의 유대감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젊은 시절과 달리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독특한 스토리텔러가 되는 경향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은 자신이 주인공인 스토리에서 벗어나 남이 주인공인 스토리를 말하는 것을 본다. 예를 들어, 내가 학교를 가고, 취업하고, 결혼을 하는 스토리에서 내가 주인공이었지만, 이제는 세월이 흘러서 자식이 학교를 가고, 취업하고, 결혼하는 스토리에서 나는 부모라는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 스토리 보다는 자식의 스토리에 더 몰입하고 갈등을 겪으며 세상을 바라보고 자식의 스토리를 말하는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인간은 자신의 스토리뿐만이 아니라 자식의 스토리 혹은 주변의 중요한 사람의 스토리를 말하며 감정과 의미를 갖는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은 또 하나 특징적인 스토리텔러가 된다. ‘의미분별척도’를 개발한 미국의 심리학자 찰스 오스굿 교수에 의하면, 인간이 추구하는 ‘의미’의 대부분은 어떤 대상이나 사건이 자신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판별하는 것이라고 한다. 유사한 맥락에서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는 피셔는 인간은 ‘협동’의 스토리와 ‘경쟁’의 스토리로서 세상을 이해한다고 주장한다. 필자의 편견일지 모르지만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극단적 협동과 극단적 경쟁의 스토리가 펼쳐지는 맥락으로 이해하고 그러한 구도 속에서 극단적 편 가르기와 갈등사건에 대한 열정적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앞으로 발생할 사건에 대한 스토리 보다는 과거사건에 대한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 같다. 삶의 의미가 미래보다는 과거에서 더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기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듯 자신이 경험하고 보았던 자신과 타인의 과거사건에 대한 훌륭한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이다. 과거 사건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삶의 즐거움과 의미를 함께하는 나이 든 사람의 특징이 완성되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스토리텔러가 되건, 우리는 스토리텔링을 하며 상대방과 가치가 공유되는지, 감정이 공감되는지를 확인할 수가 있다. 스토리텔링을 하며 상대방과 가치와 감정이 공유되는 것을 확인할 때 우리는 서로 유대감을 느끼고 하나의 시공간에서 같이 존재함을 느끼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외롭게 태어난 인간은 본질적으로 스토리텔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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