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소금에서 배우는 정치, 한 움큼 소금 매일 먹는 심정으로 정치 한다면…
[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소금에서 배우는 정치, 한 움큼 소금 매일 먹는 심정으로 정치 한다면…
  • 윤덕우
  • 승인 2022.11.2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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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우정·성실·맹세의 상징
약속·계약시 소금 먹은 아랍인들
그런 심정으로 정치 펼친다면
결코 허언·공약 남발 못 할 것
불순물 제거해야 좋은 소금이듯
정치에서도 불순물 제거해야
좋은 소금 고르는 안목·혜안
정치인 선출·임명에 적용되길
소금
한 움큼의 소금... 시대가 바뀌어도 우리가 단 하루도 소금 없이 살 수 없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문화는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양식이다. 인간은 문화를 만들기도 하지만 문화에 의해 행동이 제약되기도 한다. 지금은 ‘맛’과 ‘멋’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기획연재 「‘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을 통해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 마케팅 등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맛’(음식, 외식, 식품, 커피, 와인, 술 등)과 ‘멋’(패션, 의류, 액세서리, 에티켓, 트렌드 등)이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상관관계가 있는 지를 조명해본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이들에겐 가장 답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때로는 솔직하게 “아빠가 좋아요” 또는 “엄마가 좋아요”라고 답하거나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해 눈물을 글썽이거나 아니면 “아빠 엄마 다 좋아요”라고 우문현답의 정답을 말하곤 한다. 사실 ‘가장 소중한 존재가 무엇이냐?’와 같은 종류의 질문들은 극단적 이분법적 사고를 유발하거나, 교과서에 가까운 정답만을 요구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고 개방적인 사고을 방해하여 폐쇄적인 문화의 원인이 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 가치를 쉽게 놓치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소금이다. 소금은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인간의 몸은 적정한 염분 농도를 유지해야 하므로 평생 소금 없이는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위대한 소금을 홀대하고 몰라보는 이야기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하는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염전인 ‘트라파니’가 있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는 이런 민담이 전해져 온다.

어느 날 왕은 세 명의 공주를 한자리에 불러 “진정으로 아비를 사랑한다면 내 생일에 가장 특별한 선물을 하여라.” 라고 말했다. 왕의 생일날이 되자 첫째 공주와 둘째 공주는 귀하고 값비싼 귀금속들을 선물하니 왕은 매우 흡족해 했다. 왕은 마지막으로 막내 공주가 가져온 선물 상자 속, 낡은 소금 자루를 보고는 크게 진노하여 막내 공주를 성에서 추방했다. 성을 떠나면서 막내 공주는 친구인 궁정 요리사에게 ‘앞으로 왕이 먹는 음식에 소금을 넣지 말라’는 당부를 하였다. 그날 이후 왕은 간이 안 된 음식만 먹게 되자 괴로워하며 결국 일주일 만에 막내 공주를 다시 성으로 불러들여 그 지혜로움을 칭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소금 덕분에 왕이 되는 기회를 잡은 사례가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이 저술한 ‘연려실기술’에는 광해군이 세자가 되는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선조가 10명이 넘는 왕자들을 모아놓고 “세상에서 가장 맛난 반찬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다른 왕자들은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말했으나 유독 광해군만은 소금이라 답했다. 선조가 그 이유를 물으니 광해군은 “소금이 흔한 것이지만, 아무리 맛난 음식도 소금 없이는 100가지 맛을 이루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일화를 전해들은 신료들은 왕의 재목으로 광해군을 주목했다. 결과적으로 광해군이 왕이 되었으니 소금은 광해군이 왕이 되는데 일조한 셈이다.

인류 역사는 소금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소금은 날마다 섭취해야 하는 필수 영양소이기에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 소금을 찾아 떠난 곳에 길이 만들어지고, 소금이 모이는 곳에는 마을이 생기고, 소금을 사고파는 시장도 들어섰다. 그 결과 소금으로 번성한 나라가 있었고 때로는 소금은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소금은 문명과 역사 속의 중심에 있었다. 그래서 일까? 세계사 곳곳에는 소금이 남긴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로마는 소금길에서 고액의 통행세를 받아 막대한 부를 챙겼고, 만리장성을 쌓을 돈을 모으기 위해 진시황은 소금에 세금을 매겼으며 소금 독점권을 놓고 배네치아와 제노바 공화국은 120년 동안 싸웠다. 또한, 소금세의 부당함을 호소하던 프랑스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프랑스 혁명(1789년)을 이룬 것이나 개혁정치를 표방한 나폴레옹을 몰락시킨 것 중에 하나도 ‘소금세의 부활’이었다. 프랑스의 소금세는 1946년에 와서야 완전히 폐지되었다고 하니 프랑스 국민에게 소금세의 역사는 지긋지긋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소금에 관한 흥미로운 역사가 많다.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 신화에 ‘소금장수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소금은 우리 민족의 뿌리와 밀접하다. 고려 말 충선왕은 나라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최초로 소금전매제도를 시행하였고, 조선 때에는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소금을 생산했다. 한편, 소금은 역사적 영웅들이 만들어낸 시간 속에도 녹아 있다. 조선 세종은 밤늦도록 책을 보다가 피곤하면 소금물을 마셨고, 임진왜란 때 충무공을 시기하는 세력들이 지원물자를 보내지 않자 이순신 장군은 여수지역에서 소금을 생산하여 군수물자를 충당하였고, 영조 때 암행어사 박문수는 흉년이 들자 백성들에게 소금을 생산하는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다.

이처럼 굳이 역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소금은 우리와 늘 함께 한다. 격렬한 운동 뒤나 열심히 일한 뒤에 흘리는 땀방울이나 울다가 흘리는 눈물에도 소금의 성분이 남아 있다. 우리 몸은 70퍼센트가 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물에는 0.9퍼센트의 소금이 녹아 있다고 하니, 날마다 섭취해야하는 소금이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격언과 퍽 잘 어울린다.

불과 50~60년 전만해도 소금 1석을 쌀 1석과 맞바꿀 정도로 소금은 비쌌다. 그러나 요즘은 짠 음식을 과다하게 섭취할 정도로 소금은 흔하다. 그래서 소금의 과다섭취는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인식되며 고혈압 등 각종 성인병과 비만의 중요 원인이 된다. 그러나 소금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영양소다. 세포에 영양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청소하며 단백질의 소화와 뇌 세포의 활성화에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소금은 ‘정제염’이다. 정제염은 ‘불순물’로 간주되는 각종 미네랄이 제거된 99%의 염화나트륨을 말한다. 문제는 많은 가공식품에는 천연 소금이 아니라 염화나트륨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소금에는 천일염, 암염, 정제염 등이 있지만 이 중 가장 좋은 것은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인데, 여기에는 불순물이 들어 있어서 이를 어떻게 제거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즉, 불순물을 제거해야 좋은 소금이 된다. 그래서 소금은 훌륭한 정치인과 비유된다. 정치가 대접받고 올바른 정치인이 많아지기 위해서는 우리 정치에 남겨져 있는 불순물을 제거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소금이 신뢰와 부, 정화를 상징하듯, 정치인도 신뢰와 부, 정화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먼저, 신뢰 있는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고대인들은 소금을 변함없는 우정·성실·맹세의 상징으로 여겼으며 아랍인들은 약속을 하거나 계약을 할 때 소금을 나눠 먹었다고 한다. 한 움큼의 소금을 매일 먹는 심정으로 정치를 한다면 결코 허언이나 공약을 남발하지 못할 것이다.

두 번째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정치의 가장 큰 역할은 법을 통해 국가 권력을 운영하고 예산의 결정·집행을 통해 재화와 용역을 배분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정치인은 국가와 국민, 그리고 지자체와 주민들의 부를 늘려주고, 삶의 질을 개선시켜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무능한 정치인이라는 낙인은 피할 수 없다. 개인의 한을 풀기 위한 ‘출세형 정치’나 퇴직이나 낙선 후, 갈 자리를 알아보는 정치 등 일명 ‘생계형 정치’는 반드시 근절되어야만 한다.

세 번째로, 우리 사회의 정화기능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 역사가 가지는 훌륭한 전통을 지키고 자유와 민주에 기반한 법질서가 변질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사실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것은 어쩌면 실질적 정의에 위배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최고의 차선책인 ‘민주주의’를 발명하였고 운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접받으려만 하고 ‘의전’과 ‘아부’에 취한 채, 자기 정치와 자기 출세에 골몰한 정치인을 세금으로 지원하고 선출·임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치인은 바닷물에 녹는 소금인형처럼 국민의 삶 속에서 온전히 녹아버려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도 올바른 정치인을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불순물을 제거하고, 나트륨 덩어리를 피하고, 천연 소금을 고를 수 있는 지혜가 정치인들의 선출과 임명에도 적용되었으면 좋겠다.

간혹 식당에 가면 “손님이 짜다면 짜다.”라는 표어를 보게 된다. 고객 입장에서 장사를 하겠다는 사장님의 의지와 고객중심에서 서비스를 하겠다는 확고한 마인드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정신이 있는 식당이라면 최소한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정치가 무엇인지,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정치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정치인들이나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예비 정치인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싶다.

“국민이 짜다면 짜다.”
 

 

이상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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