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결수 개인전, “예술은 진리 향한 숭고한 노동”
김결수 개인전, “예술은 진리 향한 숭고한 노동”
  • 황인옥
  • 승인 2022.11.2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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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오모크
볏짚 수집하고 사각 큐브 제작
볍씨 뿌리기 등 작가 행위 가미
“실패한 노동에만 뭔가가 있다”
오모크갤러리-김결수작가의볏짚작품
오모크 갤러리에 전시된 볏집을 활용한 작품에 김결수 작가가 물을 주고 있다.

논 5마지기(한만지기 200평)에서 수확하고 남은 볏짚을 거푸집에 켜켜이 쌓아 대형 사각 큐브를 만들었고, 바닥에는 공만 한 크기의 미니 큐브 2,000개를 가지런히 놓았다. 모든 큐브 속에는 볍씨가 뿌려졌다. 7일간 환경과 온도를 맞춰 정성들여 씨앗의 눈을 틔웠고, 시간이 흐르면서 싹은 푸르름을 더했다. 볍씨의 발아 속도가 더욱 빨라지면서 볏짚 속에 묻어온 다양한 포자들에서도 이름 모를 식물들이 발아했다. 갤러리 오모크에 전시된 김결수 작가의 작품이다.

그가 작업에서 주목하는 가치는 ‘노동’. 작업의 재료나 작업 과정에 ‘노동’이라는 가치를 기본으로 깔고 간다. 이때의 ‘노동’은 이타성에 맞춰진다. 바로 ‘노동의 효과’에 주목한 개념이다. 가족이나 타자 등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노동’일 경우만 작업의 메타포가 된다. 말하자면 희생을 담보로 한 숭고한 노동이어야 한다는 것.

작업은 2단계로 진행된다. 누군가에 의해 쓰여 지다 효용 가치를 다하고 버려진 사물들을 수집하는 1단계와 수집한 사물에 자신의 예술적인 행위를 가미하는 2단계가 그것이다. 요리에 사용된 도마, 해체된 집의 구들장이나 서까래, 버려진 목선, 깨진 가마솥, 방앗간 기계, 네온사인 등의 버려진 사물들을 1단계에서 수집하고, 그것에 자신의 예술적인 서술 행위를 가미하여 예술작품으로 승화하는 것은 2단계에서 행해진다.

작품의 시점은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의 공존으로 드러난다. 타자의 노동을 기반으로 한 과거 시점과 작가의 현재 예술적인 행위가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최근 그의 작업에서 변화가 감지되는데, 2020년부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우주 생성의 원리인 ‘순환’에 대한 개념적인 확장과 관계됐다.

갤러리 오모크에 설치한 볏짚 작업이 대표적이다. 작업의 외연도 확장되고, 작업 과정도 보다 복잡해졌다. 먼저 농부 노동의 결실인 볏짚을 수집하고 사각 큐브를 제작한다. 여기에 볍씨 뿌리기와 물주기라는 작가적 행위가 가미되고, 햇볕과 바람과 습도가 개입되며 벼가 성장한다. “볍씨의 발아와 성장이라는 과정이 추가되면서 ‘생명의 순환’이라는 종교적이자 철학적이고, 우주적이며 본질적인 개념을 확보하게 되었어요.”

외연의 확장은 ‘생명력’의 개입으로 가능해졌다. 볍씨가 생명력을 발휘하게 되면서 작품은 하나의 거대한 순환의 고리로 들어가게 됐다. “농부의 부산물에 작가인 저의 행위가 더해지고, 작품에서 성장한 씨앗이 자라서 씨앗을 맺어 생명을 이어가게 되면서 작품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계속 순환하는 거대한 생명의 공간이 됩니다.”

그의 예술에서 핵심 개념이 된 ‘노동의 효과’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됐다. 세상에는 예술을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좁혀주는 장르로 숭상하는 쪽이 절대적이지만, 그에 반해 무익하고 무용한 노동에 지나지 않는다며 폄하하는 입장도 없지 않다. 그는 바로 이 후자들의 견해에 저항적인 입장을 취하고 싶었다. “무익하고 무용한 노동이야말로 예술의 존재 의미이며 미덕”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예술을 매개로 한 철저하게 실패한 노동만이 줄 수 있는 뭔가가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가 예술의 존재 의미를 3가지로 짚었다. 진리와 진실 그리고 감각이다. 그는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실존적인 질문들을 진리의 범주로,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식들을 진실의 범주로, 감각적인 쾌를 추구하는 예술은 감각의 범주로 인식했다. “진리는 종교적인, 진실은 현실 참여적인, 감각적 쾌는 몸적인 경향성의 갈래들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이들 갈래들 중에서 그는 예술이야말로 진리를 향한 숭고한 노동으로 받아들인다. “세상에는 해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것을 해명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죠. 감각적인 현실이 간과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행간읽기와 이면 읽기를 통해 그런 일들을 수행하게 되는데, 그런 노동들이야말로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죠.” 갤러리 오모크 김결수 개인전은 3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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