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의 세상읽기] ‘논형(論衡)’의 저자 왕충(王充)의 자연정명론(自然定命論)
[류동학의 세상읽기] ‘논형(論衡)’의 저자 왕충(王充)의 자연정명론(自然定命論)
  • 승인 2022.11.28 20: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고대 중국 사상사에는 두 차례의 인간의 주체성이 중요시 되는 시기가 존재했다. 춘추전국시대(기원전770∼기원전221)와 위진시대(220∼317)가 그것이다. 춘추전국시대는 하(夏), 은(殷),서주(西周,기원전1046∼기원전771)시대의 원시적 주술 관념을 탈피하고 인간의 주체성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왕충이 태어나기 전의 중국 사상은 한(漢) 초기 특히 한 경제(재위 BC 157∼BC 141)의 모후인 두태후가 실권을 장악한 40여 년간은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무위사상인 황노사상(黃老思想)에 법가사상의 요소가 가미된 정치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한무제가 즉위하고 동중서의『춘추번로(春秋繁露)』의 천인감응설이 사상계를 주도하고 여기에 참위설(讖緯說)과 재이설(災異說)이 풍미하면서 한나라는 전통적인 신학이 주도했다. 이러한 사상계에 일대 비판을 가하면서 등장한 인물이 왕충이다. 그는 30년 동안 공을 들인 저작인『논형』애서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노자의 말과 기의 운행에 관한 역전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하늘의 도는 자연적이고 길흉은 우연히 모인다(천도자연 길흉우회)"는 주장을 하면서 동중서의 천인감응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본성과 명은 다르다고 보고 사람이 부모가 기를 줄 때에 이미 길과 흉을 얻는 것을 명이라 했다. 그는 명을 수명과 녹명으로 분류하여 수명(壽命)은 삶과 죽음, 장수와 요절을 말하고, 녹명(祿命)은 빈부와 귀천인 부귀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모두 태어날 때의 기(氣)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는 자연정명론(自然定命論)을 주장하였다.

그는『논형』「명의(命義)」에서 국가의 명이 사람의 명을 이기고 수명이 녹명을 이긴다는 주장을 하였다. 다만 본성의 악함은 후천적인 학습과 교육을 통하여 선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왕충은 기(氣)를 사용하여 만물의 생성과 운동의 변화와 멸망 및 전환을 해석하여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위주로 한 자연정명론(自然定命論)의 학설을 세웠다.

왕충의 생애는『논형』의「자기(自紀」와『후한서』의「왕충전」을 근거로 보면 다음과 같다. 그의 선조는 군사적인 공을 세워 회계군의 양정(陽亭)에 봉해져서 그의 집안은 회계에 뿌리를 내렸다. 그의 조부 왕범(王汎)은 왕몽과 왕송을 두었고 왕송은 왕충의 부친이 된다. 왕충은 회계군 상우현(오늘날 저장성 사오싱시 상위구)에서 후한(동한) 광무제 건무3년(서기25년)에 태어나 화제(和帝) 영원 연간인 97년경 사망했다. 그의 고향인 저장성 사오싱시(소흥시)는 인구 5백만 명 정도로 춘추전국시대에 월왕(越王) 구천(句踐)에 의해 건설된 월국의 도읍지로 지급시이며 중국역사문화명성(1차, 1982)으로 선정된 역사가 깊은 도시이다.

이곳은 대우릉(大禹陵), 란팅정[蘭亭]·콰이지산[會稽山]·위에왕대[越王臺]등 역사적인 고사와 관련 있는 명승지가 많다. 또한 중국 사대 미인인 서시, 논형의 왕충, 중국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루쉰[魯迅]의 출생지로 루쉰기념관이 있다. 중국 근현대 정치가인 저우언라이(周恩來, 주은래)기념관과 부근에 선위안[沈園]·등후[東湖],안창고진((安昌古鎭) 등이 있다.

왕충이 고향을 떠나 수도인 뤄양(낙양)으로 간 때는 16세 정도였다. 그는 태학(太學)에 들어가 반표(班彪,3년∼54년)를 스승으로 삼고 공부를 했다. 반표는 반고(班固, AD 32-92), 반초(班超),반소(班昭)의 부친이다. 반고는 박학능문(博學能文)하여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한서(漢書)』의 집필과 건초(建初) 4년(79년)에『백호통의(白虎通義)』를 편집했다. 그는『한서』이외에『백호통의』와「양도부」,「유통부」 등의 문학작품이 『문선』 등에 남아있다. 반고(班固)에게는 왕충(王充)과 얽힌 이야기가 하나 전한다. 하루는 왕충이 반고 등을 두드리며 반표(班彪)에게 "이 아이는 반드시 한(漢)나라 역사를 쓸 것입니다.(此兒必記漢事)"하고 말했다고 한다. 이때 반고(班固)는 열 세 살이었고, 왕충은 반고보다 다섯 살이 많은 열 여덟 살이었다.

반초(32년∼102년)는 서역을 30년간 경영한 인물로 반고의 동생이다. 반소(45-116)는 반표 반고가 완성하지 못한『한서』를, 화제(和帝)의 명을 받고 계승해『한서(漢書)』중 8편「표(表)」와「천문지(天文志)」를 완성해 편찬을 완성한 인물이다.

왕충의『논형(論衡)』은 85편 20만 여 자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형(衡)이라 함은 저울에 달아서 공평하게 중량을 재는 것이다.『논형(論衡)』의 주장은 허위 지식 일체를 검토하고 비판하여 공정한 진리를 끌어내는 데에 있었다. 실제로 이 책에는 자연관·운명론·정치사상·지식론·인성론 등이 전부 포함되는데, 독창성이 풍부한 이론이 전개되었다.

논형의 권2「길험편(吉驗篇)」에 부여의 건국 신화가 소개되어 있다.『논형』에 따르면, 동명왕은 탁리국(=고리국) 왕의 시비의 몸에서 태어나 남쪽으로 도망하여 부여에 도읍을 정하고 왕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축인묘로 시작하는 12지지가 동물과 결합한 것은 『논형(論衡)』에서 처음 등장한다,

왕충의『논형(論衡)』은 인간의 주체적 가치지향과 세계를 향한 객관적인 인식이 급속한 발달을 보이게 되는 위진 시대에 비로소 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중국의 문화혁명 시기(1966∼1976)에는 고대 사상 최초의 유물론자로서 공자보다 왕충을 높이 부각시키는 열풍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다. 왕충의 자연정명론은 명리학의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한 중요한 학설이 되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