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주변 산들에 둘러 싸여 있음에도 큰 강물 굽이쳐…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주변 산들에 둘러 싸여 있음에도 큰 강물 굽이쳐…
  • 김종현
  • 승인 2022.11.2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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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대구의 형상
대구읍지 제언조에 98개 저수지 기록
성당제·감삼제·배불상제 등 적혀있어
고대천문학서 ‘동트는 달구벌’ 신비성
배추김치는 한민족 혼 담은 민족음식
조선유생, 김치 ‘오사숙성미’에 빠져
배추
군자다운 채소 배추의 속뜻 그림 이대영

◇동트는 달구벌(黎明伐)

1454(단종2)년에 완성된 세종(장헌대왕)실록에서 제148권과 제155권(8권)에 실려 있는 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서 경상도 경주부 대구군을 살펴보면, “4개의 큰 둑이 있는데 성당, 불상, 대구군 경계에 둔동(屯洞)이 있고, 수성경계엔 부제(釜堤)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1530년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지세가 척박하고 주변 산들이 첩첩이 둘려 싸여 있음에도 큰 강물이 굽이쳐 사방에 모여드는 형상이다... 성당지 부청에서 남으로 10리에 있다... 불상지(佛上池) 부에서 북으로 10리에 있다. 연화지(蓮花池) 부에서 서쪽으로 5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1899년 및 1907년에 작성한 대구읍지 제언조(堤堰條)에서는 98개 저수지(堤堰) 83개의 보(堡)가 있었으며, 성당제(성당못), 감삼제(감삼못), 배불상제(배자못), 연화제, 범어제, 둔동제, 송라제, 사리제(서부시장·초고인근), 부곡제 등이 적혀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 불상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불상지는 대구읍지에서 대불상제는 둘레가 4천 295척(1,300m 정도)이고, 수심이 5척 3촌이었으나 1918년 일제의 대구지형도면에서는 대불지로 적혀있었는데 1994년에 배자 못이란 이름으로 매립해 오늘날 아파트단지가 되었다. 감삼못도 대구읍지에서는 6,410척(2,000m 정도)에다가 수심 9척이라고 했음에도 1973년 달성고등학교로 절반 정도가 메워지더니 1984년에 광장타운을 건설하는 바람에 모두 파묻혔다.

고대천문학에서 달구벌이란 ‘동트는 달구벌(黎明伐)’이란 신비성을 지녔기에 하늘이 비취는 물거울이 천왕지였다. 천왕지란 이름값처럼 하늘의 옥황상제가 사는 자미원이 비춰져서 천계의 울음을 따라 달구벌의 닭이 새벽을 알렸다.

달구벌에 서식했던 공룡들은 천왕지의 왕용의 뜻에 받고자 하강해 용지(龍智)를 받아 승천했다. 이런 신화를 바탕으로 대략 400년 전에 달구벌에 가뭄과 돌림병으로 민심이 흉흉함을 방지하고자 천왕지를 주변으로 한 오늘날 비산동 혹은 내당동 지역농민들은 ‘천지인조화’를 기원하는 고신목을 3대 천왕으로 섬겼다. 즉 오늘날 북비산4거리의 고신목을 기천왕 혹은 동천왕, 비산동1번지 고을 중천왕, 현 비산3동 전삼성예식장(달성서쪽) 인근 고목을 말천왕 혹은 서천왕이라고 했다. 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제의무악인 ‘천왕메기풀이(天王農樂戱)’ 전승되었다.

1988년 김택규와 김영철 박사의 집념으로 ‘천왕메기’가 발굴되어 무형문화재 김수기로 전수되어 맥을 있어오고 있다. 천왕메기(풀이)는 길 굿→ 문 굿 → 엎어 패기→ 천왕제 → 천왕 메기 굿 → 천왕메기 지신 풀이 → 천왕 굿 → 천왕 풀이 → 마을 굿 순서로 풀어가고 있다. 여기서 ‘메기’란 2000년도에 인기음식이었던 논메기 매운탕을 만드는 메기(catfish)가 아니라, 논메기, 밭메기, 김 메기(weeding) 등의 농사용어로 ‘잡초를 제거하고, 거름을 주며, 동시에 주변 흙을 모아서 북돋음 작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천왕메기’란 “천왕께서 i) 천지인의 조화를 보살펴 주심으로써, ii) 천재지변을 막아주시고, iii) 흉흉한 민심을 바로잡아 주시길 기원합니다. iv) 온 동민들이 정성(마음)을 모우고자 오늘 신명풀이 한 마당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런 민속놀이와 동제가 혼합되면서 고대천문학에서 자미원이라고 했던 것을 도교와 불교에서는 천왕당이라고 호칭함에 따라 천왕지를 천왕당지로 개칭되었다. 이것이 천주교가 들어옴으로써 성당못으로 혼용하기도 했다.

◇민속전통인 천왕신앙과 삼일만세시발점을 없앤 일제

이런 신화는 점차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1906년 10월 15일 미국인 선교사 제임스 아담스(James Edward Adams, 1867 ~1929, 한국명 安義窩)가 남성로 자택에서 미션스쿨을 설립했다가 1908년 3월 30일 천왕당지 혹은 성당지 옆에다가 계성학교를 세웠고, 1911년 6월 첫 졸업생 13명을 배출하였다. 당시 서문시장은 천왕당지에서 4시방향에 있었다.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에서 삼일만세운동이 시작되자, 일제는 독립기세 발원지를 발본색원하고자 1920년부터 밑그림을 그렸고, 1923년 대구부청(현재 대구시청자리)에서 천왕당지매립 프로젝트를 추진한 계기는 1923년 10월 고려도자기 연구 전문가 노모리 켄이 조선총독부 촉탁업무로 비산동과 내당동 고분발굴을 시작했다. 이때 발굴 작업으로 파낸 흙을 처리하고자 매립대상지를 천왕당지로 꼭 집어 지정해서 매립작업을 했다. 이어 1928년 서문시장이 매립된 천왕당지로 이전해서 신성지를 아수라장(市場)으로 만들겠다던 기획대로 성공했다. 이를 통해 일제는 민속전통인 천왕신앙과 삼일만세시발점을 없앴음으로써 아픈 이빨 2개를 동시에 빼는 발본색원작업을 속 시원하게 마쳤다.

그러나 이곳에 살았던 우리들에겐 일제가 했던 짓거리는 분명하게도 ‘촛불을 훔쳐 성경을 불사른 꼴(It’s like stealing a candle and burning the Bible).’이란 걸 두 눈으로 지켜봤다. 우리의 선인들은 이런 비화는 가만 두고 있지 않았다. 죽은 시신에 영혼을 불어넣는 차시환혼(借尸還魂) 작업을 했다. 수성구 용 못에서 승천하는 주용(朱龍)이 서문시장 천왕지에 왕지(王旨)를 받들어 거문고 소리에 춤추는 은하수(琴湖銀河水)를 건너서 구름바위 못에 잠시 쉬었다가 서리 못에서 하루를 끝내도록 구상을 했다. 이런 신화가 매일 창출되게끔 제3호선 지상(천상)열차를 건설했다. 2015년 3월 시승을 개시함으로써 천왕지 왕룡의 아바타는 천상열차(sky tram)를 매일 타고 천상을 날아오르고 있다.

◇배추(白菜)라는 낱말의 속뜻을 알아야

배추란 ‘겨울에도 송백처럼 푸른 절개를 잃지 않는(松柏之節) 군자다운 채소(菜蔬)’라고 한자로 배추 숭자를 만들었다.

배추김치는 한민족의 혼을 구성하는 민족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조선유생들은 배추김치의 오사숙성미(五死熟成味)에 빠졌다. 오사숙성미란 : i) 밭에서 배추의 모가지가 잘리는 참수사(斬首死), ii) 칼로 배추포기 속을 가르는 개복사(開腹死), iii) 소금, 고춧가루, 생강, 새우젓, 계피 등 온갖 맵고 짠 양념을 다 배 속에 집어넣는 포복사(飽腹死), iv) 김치독에다가 빈틈없이 꼭꼭 밟아서 집어넣어 질식시키는 기절사(氣絶死), v) 마지막 음식으로 유산균 범벅인 김치 조각이 목구멍부터 향미를 풍기면서 넘어가는 종천사(終天死)를 당해야 제대로 된 김치 맛을 알게 된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대의명분이고, 속내는 보다 야함(淫蕩)에 있었다. 대의명분을 양두구육에 비유하면 오사숙성미는 양두이고, 음담패설은 구육에 속했다. 당시는 양두구육을 진배기 개고기국(眞狗肉蕩)이라고 생각했다.

배추란 단어는 병자호란 이후 윤리기강이 흔들릴 때부터 유행했다. ‘푸른 겉껍질을 몇 겹이고 벗기고 보면 하얀 속살을 드려내는 채소’라는 의미에서 백리채(白裏菜) 혹은 백채(白菜)라고 했다. 오늘날에는 배차 혹은 배추라고 한다. 이 정도의 골게(滑稽)는 통상적인 용어가 되었다.

시골서당에서도 매월당 김시습의 시집을 읽다가 보면 “서당엔 너무 일찍 도착하고 보니, 방안엔 소중한 학동들만 있는데. 훈장은 끝내 나를 뵙지 않겠다고 하네. 학동을 세어보니 열 명도 안 되네(書堂乃早至, 房中皆尊物, 先生乃不謁, 生徒諸未十)”라고 했던 풍월은 ‘한 꺼풀만 벗기만 속살이 보이는 골개(一疊滑稽)’ 혹은 노류장화(路柳墻花)라고 했다.

배추처럼 몇 겹을 벗겨야 비로소 속살을 드려내는 유머(多疊滑稽)를 시문으로 남긴 선비들로는 서거정이 있다. 그는 1477년(성종13년) ‘태평한화골계전’을, 강희맹은 1480년경에 ‘촌담해이’를, 이륙은 1512년에 ‘청파극담을, 그리고 성현도 1525년 ‘용재총화’, 송세림 ‘어면순(禦眠楯)’, 성여학 ‘속어면순’, 홍만종 ‘명엽지해’ 등이 세상에 나오면서 골개의 색채는 강렬하면서도 향기는 잃어갔다(强色弱香).

글·그림= 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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