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년입니다] 허진수 단듸랩 PD, ‘밸류크리에이터’ 정체성 찾아 미디어 시장 개척
[나는 청년입니다] 허진수 단듸랩 PD, ‘밸류크리에이터’ 정체성 찾아 미디어 시장 개척
  • 윤덕우
  • 승인 2022.11.2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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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중심의 미디어 산업 구조
유튜브 등장에 새로운 형태 변화
일반인도 누구나 콘텐츠 제작
유튜버·BJ 등 다양한 직업 탄생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태생
미디어 노동시장의 ‘낀세대’
자연스레 축적된 생존본능 있어
집착 않는 유연함·신속한 적응력
허진수PD
영양 고추를 미디어 콘텐츠에 소개하고 있는 허진수 PD.
 
허진수PD-2
허진수PD가 영양군 도시재생센터에서 지역민을 대상으로 영상촬영 및 편집스킬 노하우를 강의하고 있다.

◇ 미디어 시장에 나타난 자기 주도적 청년경제 주체들의 등장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미디어 산업의 일자리 형태는 방송사를 중심으로 한 종신고용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이후 1990년대 민영방송이 만들어지고 TV 채널이 증가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외주제작 형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는 지상파 방송사를 정점으로 한 정규직-비정규직의 위계 구조를 명확하게 구분 짓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또한 방송사의 직접고용, 간접고용, 특수고용, 상시계약, 한시계약, 바우처, 임시직 등 다양한 형태로 확대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방송사에서 외주라는 개념을 도입했을 초창기만 하더라도 그 목적은 정당했다. ‘엘리트적 독점 생산 체계의 해체와 제작 시장 확대로 방송 프로그램 다양성 확보에 기여하겠다’는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미디어 산업분야의 노동시장은 스타 PD를 중심으로 한 소수의 거대 외주제작사와 열악한 노동조건의 소규모 외주제작사로 양극화된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같은 업무라고 할지라도 계약형태에 따라 노동조건은 달랐다. 뿐만 아니라 소규모 제작사의 양적 증가는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져 노동의 질은 악화되기에 이르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적 문제 속에서도 많은 청년들은 무언가를 창작해 내고 프로그램을 완성해 내는 일 자체에 보람과 열정, 희열 등을 경험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다는 점이다. ‘기회’라는 명분 하에 ‘그림자 노동(대가 없는 노동)’도 마다하지 않고서 말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하게 된 글로벌 플랫폼 유튜브는 미디어 산업의 대중화를 견인했을 뿐만 아니라 미디어 산업분야에서 기회를 탐색해 왔던 청년들에게 전혀 새로운 길을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 전 세계인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유튜브 플랫폼에는 1분마다 500시간 이상의 신규 동영상이 업로드되고, 매일 3천만 명이 방문해 10억 시간 넘게 시청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회의 여지는 충분했다.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매체 특성상 많은 일반인 크리에이터들이 앞다퉈 관련 콘텐츠 제작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디어 산업의 일자리 형태 분화가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는 시점에서 유튜브의 등장은 크리에이터, 유튜버, BJ는 물론 스스로 웹 기반 콘텐츠를 제작·기획하는 자기 주도적 청년경제 주체들을 탄생시켰다. 어쩌면 기왕에 안정된 조직의 보호를 받지 못할 바에야 스스로 자기를 브랜드화하여 자기 경쟁력을 높이는 실천이 유용하겠다고 판단한 청년들이 늘어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진 청년들이 늘어나게 된 배경에는 자기 주도성이 높은 오늘날 청년세대의 특징과도 맞물린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 미디어 노동시장의 낀세대

‘낀세대’라 하면 신세대도 아니고 기성세대도 아닌 그 언저리에 애매하게 박혀 있는 세대를 의미한다. MZ세대 안에서도 낀세대라 하면,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태생의 세대일 것이다. 이들은 80년대 초반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밀레니얼 세대’라고 보기도 애매하고, 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Z세대’라고 보기에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M)와 Z세대의 문화가 비슷하다고 해도 빠르게 변화되어 온 시대의 흐름 안에서 ‘M’과 ‘Z’는 서로 경험하지 못 한 문화의 차이가 존재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아날로그-디지털 시대의 과도기를 겪었다고 본다면 Z세대는 아날로그에 대한 기억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 사이에서 아날로그의 흐릿한 기억이 남아 있는 세대가 바로 낀세대라 할 수 있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태생인 것이다. 92년생 허진수 PD(단듸랩). 그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열정까지 요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산업분야가 청년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변화하는 시대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해 달려온 낀세대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고” 말한다. 허 PD는 자신의 정체성을 ‘도전적인 사람 중에 가장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며, 공격수 중에 가장 수비를 가장 잘하는 축구동호인(생활체육인)이며, MZ세대 중에 가장 유연한 사고를 가진 프리랜서 PD’라고 표현했다. 그림자 뒤엔 언제나 빛이 있듯이 낀세대에겐 자연스럽게 축적된 본능적 생존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덧 붙였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어느 하나에 집착하지 않는 유연함이 있으며, 변화를 예상하고 대비하며 신속하게 적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군생활 동안 접하게 된 <전쟁론>, ‘방어적 전투’라는 낀세대의 생존법을 통찰케 하다

뛰어난 운동신경은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기 때문에 대학에서는 체육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했다.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은 빠르면 빠를수록 ‘효’를 행하는 지름길이라는 신념 하에 대학 입학과 동시에 통역, 유아체육교사, 대리운전, 안전요원, 스키강사 등 돈이 되는 일은 뭐든지 경험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후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군(軍)에 입대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적성을 찾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경제활동을 목적으로 경험한 일들은 군생활 곳곳 다양한 장면에서 쓰임이 많았고, 체대에서는 그냥 보통의 학생이었지만 군에서는 체력적으로 에이스였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아졌던 순간을 많이 경험하게 되었다고 했다. 일반 병사로 입대한 군생활은 부사관 전역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남들보다 조금 더 길었던 군 생활은 자신이 어떠한 장면에서 언제 어떻게 재미와 흥미를 느끼고 전력질주할 수 있는지 통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은 창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개성과 자기 주도성, 자기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업무환경과 더불어 결과에 대한 빠른 피드백을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덧 붙였다. 그런데 발견된 자신의 모습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경제활동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 무렵 접하게 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공격적 삶’이 아닌 ‘방어적 삶’에 대한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공격보다 방어가 더 강력한 전쟁의 형태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방어가 더 어렵다고 말했죠. 공격은 전력 집중이 가능하고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지만 방어는 수세적으로 병력이 분산되어 경계 소요가 더 늘어나기 때문에 제한된 병력 안에서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죠. 인생은 한 방향만 보고 공격적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방어적으로 살아가는 게 답이라는 걸 군에서 배우게 됐어요”

“방어라는 것이 제자리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진짜 방어를 위해서는 더 분주해야 하고 더 많이 공부해야만 하는 거였어요. 저는 제가 MZ세대의 낀세대라고 생각해요. 낀세대의 역할은 이쪽저쪽 사방을 모두 살피며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삶 전반이 방어적 전투태세여야 승리하는 거죠(웃음)”

◇ 낀세대로서 경험한 삶의 지혜

군 제대 후 대학 졸업까지 자기 성찰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 허진수 PD가 직업세계에 첫 발을 디뎠을 때 운명처럼 만나게 된 첫 번째 인연은 영상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젝트팀이었다고 했다. 영상 촬영은 촬영 목적과 내용, 장소뿐만 아니라 촬영기법 등이 매번 달랐기 때문에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이때 느낀 일의 매력은 미디어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탐구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일은 클라이언트와 고객의 피드백이 즉각적이었기 때문에 디테일한 실력 성장을 체감할 수 있었으며, 시대의 변화 속도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듯 한 느낌이 또 다른 차원의 사회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에 일의 매력을 배로 느끼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영상 촬영 프로젝트팀의 객원 PD로서의 경험들은 자신의 경력개발 로드맵을 분명하게 해주는 기폭제로 작용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업계 선배들이 일방적으로 연결해 주는 프로젝트가 아닌 자신이 참여하고 싶어 하는 프로젝트에 당당히 지원 의사를 표출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이후 선배들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선택한 목적지는 경북 영양의 시골마을이었다. 목적지가 영양이라고 해서 미디어 노동시장 안에서의 역할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남들이 도전해 보지 않은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기에는 더 탁월했다. 뿐만 아니라 지역 곳곳에는 방어적 전투태세로 무장해야 할 포인트들이 정말 많았다고 했다. 지역의 가치에서 자신의 삶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발현하여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방어자는 공격자보다 동맹국의 도움을 많이 기대할 수 있어요. MZ세대의 낀세대로서, 공격자보다는 방어자 포지션이 더 유리한 이유도 있지만 그 위치에서 제 역할을 찾았습니다. 저는 로컬의 「밸류(value)크리에이터」로서 저의 가치와 지역의 가치를 함께 성장시키는 미디어 콘텐츠 제작자로 성장하고자 합니다.”

영양군에서 만난 허진수 PD는 로컬이 가지고 있는 고유 가치를 영상에 담아내는 일로서 자신만이 표출할 수 있는 고유 정체성을 공고히 해 나가는 작업을 통해 오늘도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이미나 (청년활동연구가/ 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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