붐을 전지剪枝한다
겨우내 눈꽃 서린 잔가지
실개천 물 뿌리 매달고
봄 소리 풀어가고 있다
해묵은 감나무가지
번쩍이는 가윗날 먹고
잔가지 실핏줄 따라
봄볕 마디도 덜어지고 있다
마디마다 숨은 눈가루 흩어지고
된바람 싹둑싹둑 잘리는 소리
경칩 잠 깨지 못한 그늘 깔고 흥건히 쌓이면
산발처럼 자라는 우울한 햇살
이유 없이 쓸쓸해지는 봄날을 전지하며
내 마음 잔가지도
모두 전지하고 있다.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한국문인협회 윤리위원, 국제펜 회원,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을 역임한 이른바 부산 해운대 시인으로 알려진 시인이다. 현재 부산시인협회 부회장, 한국다도협회「다담茶談」편집위원장으로 활동 중.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인 권기호 교수는 이 시인의 시를 두고 `시에 대한 안목과 절제가 시인의 섬세한 감수성과 체취에 어울려 빛나고 있다’고 평한 바 있다.
봄은 겨우내 죽었던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아나는 이른바 생명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봄 속에도 새로운 생명의 약동과는 반대로 `산발처럼 자라는 우울한 햇살’을 맞기도 한다. 현란한 봄의 힘찬 기운 속에 `찬란한 슬픔의 봄’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시인은 `이유 없이 쓸쓸해지는 봄날을 전지하며 / 내 마음 잔가지도 / 모두 전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결코 봄의 영탄이 아니라 봄을 맞는 화자의 새로운 변화의 새싹을 위한 새로운 의식의 전지라고도 하겠다.
이일기 (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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