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가시를 얹은 집
[달구벌아침] 가시를 얹은 집
  • 승인 2022.12.0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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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가고 겨울 오는데…
엄마 고양이 향한 시선은
더욱 싸늘해져만 가고,
새로 태어난 어린 생명 탓에
염치없는 울음소리 외면 못해”
문현숙 시인
“글쎄요. 나는 좀 솔직한 편이예요. 맘에 넣어 두고 살진 못해 하는 말인데, 제발 밥 좀 주지 마세요.”

얼마 전, 이층 계단 난간에 기대서서 감을 따고 있는 아랫집 아저씨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나를 올려다보며 그가 내게 내뱉은 말이다. 그땐 대수롭지 않게 여겨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녀는 문밖에 나는 방 안에, 그녀는 종이 박스에 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다. 종이박스 긁어대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뒤척임에 짓눌려 나는 밤새 두 발 쫙 내려놓고 맘 편안하게 깊은 잠에 들 수 없다.

가을이 가고 겨울의 시작이다. 가지로부터 떨궈져 나온 감잎들 계단을 오르내리며 뒤채는 소리에 장단을 맞추는 듯 박스 긁어대는 소리, 밤새 들려온다. 문밖의 그는 온몸이 시리고 문 안의 나는 마음이 시려 쉬 잠들지 못하는 불면의 밤이다.

바람마저 시린지 창틈을 비집고 들어와 어둠 속에 냉기를 불어 넣는다. 한 하늘을 이고 같은 계절 같은 시간 속 똑같은 어둠에 놓여 있지만 그녀는 박스 안에서 신문지를 깔고 나는 두터운 솜이불을 누에고치처럼 덮고 있다.

그녀는 여름 끝, 가을 시작 즈음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새끼 두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남은 두 마리 새끼를 챙기느라 슬플 겨를도 없어 보였다. 며칠 새 피골이 상접한 작은 몸이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매일같이 아침마다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그녀와 마주하게 된다. 현관문 앞에서 모닝콜처럼 울어대며 앉아 있다. ‘염치없는 줄 알지만 제발 밥 좀 주세요. 저는 괜찮은데 새끼들 배고파 우는 건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요.’라며 그녀의 눈빛은 그리 말하는 듯 보였다.

눈 한 번 질끈 감아버리면 그만이라 생각하면서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거야. 그 사람 살가죽을 입고,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 다니지 않는 이상.”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중 한 구절을 생각해내곤 그런 그녀의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매번 나는 객지에 나가 있는 내 자식들을 떠올리며 차마 모르는 체 할 수 없었다. 내가 베푼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내 아이의 주린 허기를 채워줄 유일한 유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까치밥처럼.

현관문 손잡이 잡는 소리만 들리거나 눈만 마주쳐도 형사를 마주한 도둑처럼 줄행랑을 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어미가 되고 보니 세상이 달리 보였는지 밥그릇이 비어갈 때쯤이면 앞면 박대하고 달려와 내 발밑에서 울어댄다. 막무가내로 끊임없이 줄 때까지 운다. 막상 그릇에 밥을 채워주면 그녀는 밥그릇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앉는다. 나와 대적하듯 방패를 자처하며 진을 치고 앉아 새끼들이 다 먹을 때까지 시린 콘크리트 바닥에 부풀어 오른 젖가슴을 내려놓은 채.

새끼들이 밥을 먹는 동안만이라도 새끼들이 맘 편히 먹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듯, 거절할 수 없는 그런 애틋한 눈빛을 하고서. 컵 받침 위에 놓인 찻잔처럼, 내가 자리를 뜨기 전까진 한 톨도 먹으려 들지 않았다. 새끼들이 다 먹고 물러난 후, 그제야 그녀가 찬밥처럼 남은 식은 밥 속에 얼굴을 파묻는다. 허기를 다 채우지 못했는지 새끼들은 다시 또 그녀의 젖가슴을 찾아 파고들 곤 했다.

아저씨가 지붕이나 대문 위와 아래로 난 틈, 그리고 담장마다 올라가 가시덤불을 설치하고 있다. 옥상, 쓸모를 다한 물탱크를 반으로 잘라 그곳에 석류나무를 심어 키우고 있었는데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병이 들어 베어지고 말았다. 베어낸 가시투성인 석류나무와 어디서 구해온 탱자나무로 집 가장자리를 방음벽처럼, 온통 빙 둘러싼 채 길고양이들의 길목마다 에워싸고 있었다. 나의 간곡한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새끼고양이들이 어미 고양이인 그녀의 애타는 울부짖음을 듣고 달려가다 가시덤불 속에 갇혔지만 나는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는 이 집의 주인이 아저씨라는 사실에 그녀도 나도 시리기만 한 계절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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