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상화의 라일락 향’ 세계로 날려보낸 문무학 시인과 박영호 지휘자
[화요칼럼]‘상화의 라일락 향’ 세계로 날려보낸 문무학 시인과 박영호 지휘자
  • 승인 2022.12.0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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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문학박사
봄날은 올락말락 라일락 필락말락

그 시절에 떠난 님아 봄 오는가 묻던 님아

서성로 십삼 길 뜨락 라일락꽃이 핍니다



그 겨울에 기울어져 바로 서지 않는 것은

빼앗긴 들의 수모 잊지 못할 당부란 걸

라일락꽃 필적마다 꽃잎 받아 새깁니다

문무학 시, 「상화의 라일락」 전문



‘운경遊(유)앙상블’(지휘 박영호, 반주 정취정)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제5회 정기연주회(11월 22일)가 아양아트센터 아양홀에서 열렸다.

‘운경遊(유)앙상블’은 운경재단(이사장, 곽동환) 대구중구시니어클럽(관장, 권병현)에서 100세 시대 풍요롭고 다양한 액티브 시니어들의 문화콘텐츠 노인일자리사업으로 2019년 창단되었다.

취지에 따라 단원들은 합창을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이들의 재능 나눔과 봉사 활동은 이웃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할 뿐 아니라, 단원 개개인 또한 백세시대 아름다운 인생 2막 주인공으로의 재탄생과 에너지 생산의 과정을 발견하고 만들어가게 한다.

이날 공연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첫째 무대인 1부는 ‘신고산 타령’, ‘보리타작’, ‘밀양 아리랑’ 등 흥겨운 우리 민요 중심의 연주였고, 2부는 ‘별’, ‘꽃구름 속에’, 창작곡 ‘상화의 라일락’으로 이어지는 정겨운 우리 가곡의 만남이었다.

마지막 3부는 격동의 세계 정치, 경제의 환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잘 견디며 살고 있고, 또 공연장을 찾아와 함께 하고 있는 관객을 향한 축하와 감사의 뜻을 전하는 연주였다.

갈라(Gala) 콘서트 형식으로 하이든의 ‘천지창조’, 구노의 ‘장엄미사’ 중 대표곡을 솔로 소프라노 김유섬, 테너 김준연, 바리톤 목성상, 운경遊(유) 챔버오케스트라 그리고 합창단이 함께 연주하면서 대미를 장식하였고, 막간에는 리틀하모니가 특별출연하여 산뜻한 시간을 선물하였다.

이번 연주회의 주제는 ‘사랑과 평화’다.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혹함과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 ‘사랑’과 ‘평화’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단원 모두의 염원을 음악에 담았다. 특히 「상화의 라일락」은 대구의 시인을 넘어 한국사의 온도를 데워주는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이상화의 생가에서 꿈인 듯 생시인 듯 시적화자에게 들려오던 당부의 목소리를 문무학 시인이 받아적고, 이순교 작곡가가 시에 음률을 얹고, 박영호 지휘자가 생명을 불어넣어 운경유앙상블에 의해 세상에 처음 선보인 초연곡이다.

시인이 떠나보낸 나무는 혼자서 뜨락을 지킨다. 혹독한 추위에도 꿋꿋이 잘 견디던 나무가 언제부턴가 서서히 기울어졌다. 부끄럽고 치욕스런 기억은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고,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았으리라. 조국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겨버린 사람들의 피눈물이 이른 봄, 당부인듯 꽃으로 피어 묻는다.

바람결 따라 말씀을 품은 꽃향기는 시적화자에게로 스며든다. 봄, 봄, 봄이라고, 봄이 왔다고 선뜻 대답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다.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이라지만 상화의 라일락은 바람이 불어도 필락말락 오래도록 문고리를 매만진다.

나무의 수피에 새겨진 언약은 지울 수도, 잊혀지지도 않고 외려 깊어지는 것임을 말없이 증언하는 나무의 묵언, 객석에도 들렸을까.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상화의 라일락」은 연주마다 특별한 향기로 발현된다. 문무학 시인, 이순교 작곡가, 박영호 지휘자는 수어(樹語)를 새겨듣고 소통하는 공감각의 예술가이다. 그들의 표현은 깊고 융숭하다.

아니, 하늘의 마음을 닮았다. 올 여름 포천세계합창경연대회에 참가한 심사위원들은 박영호 지휘자와 함께 한 운경유앙상블의 출전곡 「상화의 라일락」을 듣고 섬세하고 신비하고 아름다운 앙상블에 절로 ‘원더플’을 외쳤고, ‘세계에 내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합창단’, ‘메달을 걸어주고 싶은 지휘자’라고 소리높여 극찬했다.

그 열정은 평균 연령 71세라는 노당익장 단원들도 마찬가지여서 세계합창대회 금상이라는 쾌거를 만들었다.

다시 「상화의 라일락」을 들으며 인생의 역사,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나라를 빼앗긴 백성의 비애, 침탈자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치욕과 절규를 들으며 나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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