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책임, 시작에 있지 않고 끝에 있다
[달구벌아침] 책임, 시작에 있지 않고 끝에 있다
  • 승인 2022.12.0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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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책임이란 말은 시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에 있다. 흔히 우리가 ‘책임’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사람과의 관계를 시작하는 시작점에 두는 경우가 많다. 또한 어떤 상황을 시작할 때 그때 처음 사용하는 말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책임’이라는 그 말은 시작에도 중요하게 사용되어야 할 말이지만 그 뜻의 진정한 의미는 끝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은 쉽게 책임이란 말을 입에 담는다. 어떤 문제 앞에서 어떡할 거냐고 물으면 “제가 책임질게요.” “책임 지면 되잖아요”라고 화내듯 말한다. 그 말을 듣고 ‘그래 역시 책임감 있는 사람이군.‘이라고 믿음을 가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 그 말의 진의를 의심할 것이다. 책임진다는 말을 듣고도 의심부터 하게 된 까닭은 지금까지 책임이란 말을 어떤 곤란한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단어쯤으로 만들어 버린 책임 없고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이다. 책임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단어가 절대 아니다. 끝까지,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서 붙들고 있을 때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책임’이란 단어다.

한 부부가 갈등이 깊어졌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했고, 한 가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둘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내는 남편이 예전처럼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고, 사랑이 식었다고 말했으며, 남편은 아내가 이전처럼 부드럽지도 않고 자신을 존중해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부부는 지칠 대로 지치고, 상처받을 대로 받은 상태에서 아픈 부위만 골라서 서로를 더 아프게 할퀴고 있었다. 부부는 모두 각자가 자기 나름의 노력을 했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이제 지쳤고, 더 이상 잘해 볼 마음도, 자신도 없다고 얘기했다. 처음 결혼할 때 서로를 책임지겠다고 얘기했던 것은 어디 가고 없었다. 사랑은 사라지고 미움만 가득한 상태로 둘은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상담자로서 보고 있자니 안타까움도 크고, 또한 화도 났다. ‘책임’이라는 말을 너무 함부로 입에 담고, 너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듯해서 화가 났다.

둘은 서로를 책임지겠다고 양가 부모와 일가친척, 수많은 친구들, 지인들에게 약속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서로의 편이 되어 한 몸처럼 살아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들은 책임이란 단어를 변명처럼 사용하고 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책임지려 했습니다.”라며 서로 노력했단다. 책임지고 잘해보려고 했단다. 서로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대로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책임을 다했다’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도 있고, 결혼으로 맺어진 수도 없이 많은 가족들이 그들을 통해 서로 무겁게 묶여 있었다. 그런데도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가겠다고 쉽게 말을 하고 있었다.

처음 사랑을 할 때 아내는 내가 너의 곁에서 믿고 따르겠다고 말했고, 남편은 너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책임지겠다고 자신 있게 서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현재의 결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었다. 믿고 따를 수 없게 되었고, 그녀와 함께하겠다는 행복의 노래는 더 이상 부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고 있었다. 바로 책임지겠다고 말을 자신들의 입으로 했다는 사실을. 책임은 그냥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고, 끝까지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말로써 사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책임지겠다고 말을 했다면 두말할 것 없고 책임을 져야 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곁에서 믿고 따르겠다는 말의 책임을 져야 하고,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그 말의 책임을 져야 한다. 살다 보면 힘든 일도 많고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절망의 순간도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이란 단어를 생각하며 ’한 번 더‘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 곧 내일 헤어질지언정 오늘은 책임을 지려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지는 자세다. 책임은 시작에 있지 않고 끝에 있음을 잘 알아야 한다. 책임이라는 말이 가볍게 사용되어선 안 된다. 다소 무겁더라도 어렵게 사용해야 할 말이다. 마치 물고기를 잡기 위해 사용하는 일회용 미끼처럼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 달콤하게 사용할 그런 단어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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