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토마, 사진작가 정우영·서양화가 황재광 2인전
갤러리 토마, 사진작가 정우영·서양화가 황재광 2인전
  • 황인옥
  • 승인 2022.12.1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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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색면으로 화면 나눠 다양한 감정 소화
두 개 풍경 나란히 배치, 하나처럼 구상하기도
잔잔한 분위기 특징…“편안함 선사하고 싶어”
퇴직 앞두고 ‘자유’라는 세계 열어준 그림
예민한 감수성으로 자연이 건네는 말 포착
첫 전시…구상·추상 섞인 회화 22점 선봬
40여년간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정우영과 황재광 2인전이 갤러리 토마에서 열리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이들은 미국 뉴욕 유학, 계명대에서 재직까지 우연이지만 필연같은 인연을 이어왔다. 내년 2월과 8월 정년퇴직을 앞둔 이들은 이번에는 사진작가와 회화작가라는 또 다른 결의 예술적인 인연을 이어간다.
 
정우영작AegeanSea
정우영 작 ‘Aegean Sea’. 갤러리 토마 제공

◇ 면분할 풍경사진을 추구하는 사진작가 정우영

정우영은 지난 10여년간 추상과 구상의 균형이라는 가치에 매달렸다. 그의 가치가 가시적으로 표현된 첫 번째 작품이 ‘Imagination and Representation’ 연작이었다. 바다풍경을 촬영한 후, 면분할을 통해 아랫면은 풍경으로, 윗면은 색면으로 채운 작업이었다. 두 개의 면에는 각기 다른 정서를 아우르며 균형추를 맞추려 했다. 정확히는 “면분할은 한 장의 사진에 다양한 감정을 담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그의 언급이었다.

면분할은 그에게 영화와 사진의 접목이었다. 미국 유학 시절에 영상 수업을 들으며 영화의 매력에 빠지면서 “사진과 영화가 접목할 수 없을까?”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했고, 면분할이 대안으로 떠올렸다. 그가 이토록 면분할에 진심이었던 배경은 정서적인 측면과 관련됐다. 그는 자신의 화면이 ‘편안’하기를 희망했다. 그의 사진 속 바다는 잔잔하고, 색면은 그윽한 것에서 그의 정서가 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제가 세상을 편안함으로 인식하는 속내는 저와 관람객에게 편안함을 주고 싶어서인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새로운 시도가 목도된다. 바다와 하늘을 한 컷에 촬영하고, 하늘과 바다를 각각의 대상으로 분할한 작품 ‘Aegean Sea’ 연작이 대표적이며, 이전 작업인 ‘Imagination and Representation’ 연작의 확장된 버전이다. 하늘이나 바다 중 하나의 면에 인위적인 색을 입히는 방식으로 면분할이 가해지거나, 가로가 아닌 세로 면분할을 시도하기도 한다. 또 다른 작품인 무제 연작은 하늘 풍경을 촬영한 작업이다. 면분할 없이 하늘 풍경에만 집중했다.

“하늘은 제 예술의 마지막 시점에 해 보고 싶었던 작업이었어요.”

작품 ‘Closing One Eye, Looking For Some One’ 연작 풍경의 대상도 자연에서 인간세상으로 변화했다. 사진 속 풍경은 병원 창으로 들어오는 도심의 풍경이다. 이 연작에서도 면분할은 여전히 지속된다. 하지만 색면으로 분할하는 대신 두 개의 풍경을 나란히 배치하여 하나의 풍경처럼 구성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창밖 풍경에서는 대상의 변화와 함께 구성적인 변화까지 모색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들도 여전히 있다. 병원이라는 긴장된 공간에서 바라본 약국이나 거리 풍경을 피사체로 했지만 사진 속 정서는 여전히 편안하다. 그의 정서는 늘 편안함을 향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신작이 출현하기까지의 배경은 마냥 편안한 이야기일 수 없다.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아찔함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올해 그는 상당히 아팠고, 병원에서 아픈 이유를 찾기 위한 수많은 검사들을 진행해야 했다. 도시의 창밖에서 바라본 풍경은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촬영한 사진이다.

“여러 가지 검사들을 했고 각오도 하고 있었는데, 막상 의사로부터 들은 말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였어요. 큰 병에 의한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때는 절박했고, 그 상황에서 오히려 담담하게 저 자신을 기록해보자는 의도로 나온 작업이었어요.”

바다와 하늘 풍경과 병원 창으로 바라본 도심의 풍경은 암을 의심할 만큼 급박한 상황에서 버킷 리스트를 실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업들이다. 생애 마지막 주제로 남겨놓았던 하늘풍경을 작업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동시에 작가 자신의 삶도 기록하려 했다.

“암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내가 작업을 못하면 어떻게 되나’하는 조급한 마음이 생겼고, 그때 하늘과 나의 삶을 기록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사진이지만 그림 같다. 현실풍경이지만 현실 너머의 풍경같은 독특한 화면이다. 이런 작업이 나오기까지는 미국 유학 시절 지도 교수의 영향이 있었다. 당시 그는 지도 교수의 과제로 랄프 깁슨이라는 사진작가 스타일의 사진을 제출했다. 너무 깨끗하고 정직한 그의 사진을 보고 지도 교수는 단호하게 개선을 주문했다. 그의 가르침은 “카메라 프레임을 보지 말고 사진 찍기”였다. 주문대로 사진을 촬영하자 의외의 효과가 드러났고, 이후 이런 방식의 작업들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교수님 주문대로 했더니 의도하지 않은 사진들이 나왔어요. 그 의외성이 너무 신선하게 다가왔고 지금까지도 그런 방식이나 태도는 계속 유지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방식은 계속될 겁니다.” 

황재광작Myway
황재광 작 ‘My way’. 갤러리 토마 제공

◇ 일상에서 포착한 낭만을 그리는 서양화가 황재광

영국 낭만주의 시인이었던 윌리엄 워즈워스(W. Wordsworth)는 시를 쓸 때 평범한 삶에서 소재를 선택할 것과,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할 것,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시인의 상상력으로 채색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강력한 감정의 자발적 넘쳐흐름’으로 쓰는 시가 좋은 시라고도 했다.

황재광의 그림에서 윌리엄 워즈워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해서 그것을 지나친 비약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특유의 예민함으로 감각한 일상 속 흔적들을 자신만의 시적 감수성으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과 시선이 멈추게 했던 순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번 전시 제목인 ‘Spots of time’ 또한 워즈워스의 장시인 ‘prelude’에서 가져왔다. 황 작가의 생애 첫 번째 전시인 이번 전시에는 22개의 회화 작품을 걸었다.

황 작가는 평생 영문학자이자 시인으로 살았다. 그런 그에게 시와 그림을 완벽하게 분리할 것을 강요하면, 그는 한 발 물러서게 된다. 아직은 그에게 ‘그림’은 곧 ‘시(詩)이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이 아직은 시에 종속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스스로 자신의 시를 쓰레기라고 평가했지만, 그는 100여편의 시를 치열하게 써 내려간 시인이다.

인생은 예측불허이고, 그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오히려 생의 의미가 빛이 난다고 한다. 이 법칙은 그의 미술에도 적용된다. 시와 그림이 주종관계라고는 하지만 정년퇴직 후에 그가 그림에 본격적으로 매진할 경우 그림이 시의 권위나 수준을 뛰어넘지 말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그림이 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며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일찍 그림에 대한 재능을 보였지만 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5살 무렵부터 그림을 그렸고, 중학교 때부터는 그림에 ‘특출한 재능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곧잘 들었다. 미술경시대회에 나가면 장관상이나 군수상을 받았지만 그것이 그의 가슴을 뛰게 하지 못했다.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그렇다고 그림을 그리면서 큰 공을 들이지도 않았는데, 그럼에도 결실이 좋았던 것이 오히려 미술에 흥미를 잃게 한 이유가 됐다.

“노력없이 얻은 성과에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그림은 제 뇌리에서 잊혀 졌어요.”

그림이 그의 의식을 제대로 건드린 것은 2012년 무렵. 그해 연구년 기간에 1년간 미국 뉴욕에 체류하게 되면서 세계적인 미술관을 탐방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곳에서 본 미술 작품들에서 무한 감동을 받으면서 불현 듯 달력 뒷면에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을 보고 그의 딸이 “잘 그렸다”는 칭찬을 하면서 사단이 났다. 그의 가족들은 그림에 빠져 있는 그의 모습에서 ‘행복’을 발견했고, 그를 응원했다. 가족의 응원에 힘입어 그는 망설임 없이 아트 스튜던츠 리그 오브 뉴욕에 등록해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퇴직을 앞둔 그에게 그림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것은 ‘자유’였다. 대학 시스템에 길들여진 그가 그림을 만나면서 정형화된 틀에서 빠져 나오게 됐고, 충만한 행복감마저 경험했다. 무엇보다 유화 물감 냄새가 가슴을 뛰게 했다. 자신을 구원할 매체로 시와 함께 그림까지 더해지면서 그의 내면은 긴장과 이완으로 넘실댔다.

그가 “시나 그림은 인간의 원초적인 외로움을 잊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수동적인 자신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겸양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상이 주체고, 그는 대상에 반응하는 객체로 자리매김해 갔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능동적인 사람이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수동적으로 변했어요. 제가 먼저 말을 걸기보다 풀이나 꽃이 말을 걸면 저는 반응하는 식이 된 거죠. 그것은 곧 겸손을 의미했어요.”

작업은 추상과 구상이 혼재한다. 일상에서 말을 걸어오는 존재나 현상들에 대한 그의 반응들이 그림으로 표출된다. 그는 특히 비루한 존재들에 애정을 갖는다. 그가 비루함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외에 또 하나가 있다. 그것이 곧 비루함이 주는 반전이다. 그는 비루함에서 예술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런 그가 반문한다. “비루함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아름다움이 아닐까요?” 전시는 18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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