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집이 없는 그들은 어디서 잠드는가
[달구벌아침] 집이 없는 그들은 어디서 잠드는가
  • 승인 2022.12.18 19: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현숙 시인
한파가 몰아치던 밤이 지난 새벽이다. 어슬렁어슬렁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 소리 들리더니 현관문 앞에 멈춰 선다. 서성이는 소리가 모닥불 등에서 튀는 불똥처럼 타닥타닥 들려온다. 모닝콜처럼 잠든 나를 깨운다. 잠결에도 밥 달라는 신호임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일상이 되어 버린 그들과의 밥 전쟁은 수년째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아침이 오려면 아직은 먼 미명의 새벽, 어둠을 가르며 주섬주섬 외투를 찾아 걸친다. 벽을 더듬어 불을 켠 후,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주렁주렁 졸음을 매단 채 습관처럼 현관문을 나선다. 그런 날이면 매번, 밤새 그들은 어디서 잠들어 있다가 훅, 끼쳐오는 밥 냄새를 어찌 맡고 찾아오는지 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얼마 전, 아침의 일이다. 감고 나간 머리카락이 바깥에 나서자마자 얼어버렸다. 머리카락 사이사이 남아있던 물길 끝에 고드름이 달릴 만큼 추운 날이었다. 골목 안에 주차해 놓은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야옹"

어디서 나는 걸까, 한참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쉬 찾지 못했다. 혹시 몰라 후드를 열어보았다. 아뿔싸,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그곳에 끼어 있었다. 겨울철이면 후드에서 우연히 고양이를 발견해 구출했다거나, 운전 중 뜨거워지는 엔진에 고양이가 화상을 입거나, 참변을 당했다는 사연이 간간이 이어지고 있던 터였다.

황급히 119로 전화를 걸어 구조요청을 한 후 기다렸다. 급히 출동한 구급 대원은 숨 고를 새도 없이 달려오자마자 후드부터 열었다.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곤 그제야 '후유, 다행이다'라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큰 일 날 뻔 했다'며 나 역시 쿵쾅거리던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귀 기울이지 않고 지나쳤다면 어땠을까?"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후드 속에서 하룻밤 잠을 잔 고양이들은 잠이 깬 후에도 알아서 나가질 않는다고 한다. 후드에 갇힌 고양이는 차 고장의 원인이 될 수도 있으니 차를 위해서라도 빨리 빼내는 것이 좋다는 말을 덧붙였다. 또한 후드 외에도 타이어와 자동차 사이 틈틈이 생각지 못한 곳에 고양이가 숨어있을 수도 있으며 이는 주행 중 사고 위험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당부하곤 대원들은 살아남은 새끼를 준비해온 고양이 집에 넣곤 자리를 떠났다.

생명을 살리는 '라이프 노킹'이라는 말이 있다. 아침에 자동차 시동을 걸기 전, 겨울왕국 속 안나가 엘사의 방을 두드렸던 것처럼 엔진룸을 똑, 똑 '모닝노크' 해주는 것은 어떨까. 길고양이를 위해 또 나의 애마를 위해.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철이면 추위에 약한 그들은 금세 시동을 끈 차량의 엔진룸 안으로 찾아 들어간다. 그곳이야말로 가장 아늑한 보금자리며 잠자리다. 운전자의 대부분은 그들이 엔진룸에 들앉아 있는지 모른 채 바로 시동을 걸거나 주행하는 일이 잦다. 운전자들은 습관처럼 시동부터 걸고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온기를 찾아 엔진룸 안으로 찾아 들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무심하게 행해지는 사소한 습관으로 인해 그들은 사망하거나 자동차의 고장을 유발하는 계기가 된다는 뉴스를 해마다 겨울이면 자주 접하게 된다. 예열하듯 노크하는 것이야말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예방책이 아닐까.

"출근 전, 자동차에 시동 켜기 전 똑똑! 모닝노크 하세요."

그 외에도 자동차 엔진룸 두드리기, 차 문 세게 여닫기, 좌석에서 크게 발 구르기, 경적 울리기 등이 있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를 내서 잠들어 있는 고양이를 깨워주는 아주 작은 습관 하나로 인해 고양이도 사람도 자동차도 안전하게 또한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살아있는 그 누구든 내일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닥쳐올 미래를 걱정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기쁨과 아픔, 환희와 비탄은 하나의 창문에서 바라보는 하나의 풍경인지도 모른다. 빛과 그림자, 이 둘을 동시에 승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정면에서 직시하는 용기이고 지혜가 아닐까. 일출 속에서 내일의 일몰을 바라보는 십이월의 아침, '새삼 살아있음이 진지하다'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는 한겨울 속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