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스르프 작가 개인전…24일까지 어울아트센터 갤러리
노비스르프 작가 개인전…24일까지 어울아트센터 갤러리
  • 황인옥
  • 승인 2022.12.1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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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가족사 소환 예술적 행위 통해 스스로 위무
목련·해바라기 차용 작품 20여점
형식은 차별화·내용은 고흐 철학
불 사용 후 매력에 빠져 본격 사용
직설적인 화법 대신 은유적 표현
노비스르작-Iris
노비스르 작 ‘Iris’
노비스작-Gogh-1
노비스 작 ‘Gogh’

불의 용처는 실로 다양하지만 예술의 영역에 관여한 역사도 빠트릴 수 없다. 불은 직·간접적으로 예술과 조응했다. 식물을 태운 뒤 나온 그을음을 아교풀로 반죽해 굳혀 흙처럼 고정한 먹(墨)은 중국 은나라부터 사용됐으며, 현대미술에선 불의 잔해인 숯을 활용하거나 행위예술의 경우 불을 직접 사용하기도 한다. 노비스르프 작가는 불의 정화 기능을 예술의 중심축에 둔다. 과거의 아픔을 소환하여 무색의 바니시를 불을 통해 가시화하며 지난 아픔을 포용하고, 위무하고, 치유한다.

노비스르프 개인전인 ‘역설의 바니타스 : 요한나(Johanna)’전이 대구 북구 어울아트센터 갤러리 명봉에서 열리고 있다. 센터 기획인 ‘2022 EAC 작가 지원 프로젝트’ 네 번째 작가전에 선정되어 진행되는 전시다. 전시에는 안료와 불의 만남으로 가시화된 목련이나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해바라기와 아이리스 그림을 형식적으로 차용한 작품 20여점을 소개한다.

그의 작업은 아픈 가족사를 자양분으로 하는 개인적인 서사다. 아스퍼거 장애, 조울증, 치매, 예술가 특유의 예민함은 모두 가족 구성원들의 병명이다. 그들 중에서 원만한 이는 작가 자신뿐이었고, 그는 그 모든 아픔들 속에서 성장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어머니는 일찍 타계했다. “가족들과 관련된 트라우마들이 집요하게 저의 의식을 잠식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업으로 가족들의 상처를 소환하고 풀어내는 것밖에 없었어요.”

내용이 개인적인 서사라면 형식적인 서술은 안료와 불의 협공으로 진행된다. 먼저 캔버스 표면에 단색으로 배경을 완성한다. 이번 전시에는 보라색이 도드라진다. 배경 중앙에 무색의 바니시로 형상을 그리고 건조한다. 이후 불로 마찰을 가하면 흰색으로 변이되어 목련이나 해바라기나 아이리스 등의 형상으로 드러난다. “수성물감이 연소반응을 통해 의도한 무늬를 남긴 것이 제가 의도한 형상들이죠.”

목련은 어린시절 집 정원에 심겨져 있던 나무였고, 시들어가는 해바라기나 아이리스는 고흐(Vincent van Gogh)의 명화에서 차용한 소재들이다. 고흐의 작품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의미가 갈린다. 먼저 표현방식에서 차별화다. 고흐가 붓 터치로 해바라기를 완성했다면 그는 불의 터치로 완성한다.

형식에서 차별화를 지향했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고흐의 철학을 고수한다. 씨앗을 가득 머금고 시들어가는 해바라기에서 풍요와 생명의 씨앗을 발견하는 고흐의 정서를 그 역시 수용한다. “고흐가 시들어가는 씨앗을 역설이라고 표현했듯, 저 역시 해바라기의 죽음에서 새로운 삶의 씨앗을 발견하려 합니다.”

무색으로 표현된 표면에 캔버스 표면에 불을 가하는 행위는 그에게 제의(祭儀)적으로 다가온다.

힘겨운 인생을 살다 이승을 떠난 어머니의 행복을 염원하는 아들의 간절한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불은 가족의 아픔을 소환하고, 치유하고 마침내 행복에 이르게 하기 위한 제의적인 매개다.

어머니에 대한 그의 감정은 애증(愛憎)이다. 연민과 미움이 교차한다. 작업과정에서 바니시를 칠하고 말린 후 불로 그을려 형상을 드러내는 행위를 수차례 반복하는데, 그런 반복적인 노동에 자신의 간절한 기도를 투영한다. 반복적인 행위는 3~7차례 진행된다. 반복된 칠과 불의 터치로 드러난 공간에는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시간성이 공존한다. 이는 어머니의 부활에 대한 그의 염원에 해당된다. “불은 어머니의 부활을 위한 매개였어요.”

고흐 작품을 차용한 부분에서 그의 아픔이 현재진행형임을 짐작한다.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에서 그를 동요하게 만드는 지점은 고흐와 테오의 형제애다. 고흐의 동생인 테오는 생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그림 한 점 팔지 못하는 형의 후원자가 되었다. “형인 고흐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던 테오를 동경했어요.”

고흐의 가족 중 테오의 부인인 요한나에게도 그의 동경심은 묻어난다. 전시 제목에 요한나의 이름을 올린 이유 또한 요한나에 대한 동경심의 발로다. 요한나는 무명이었던 고흐를 슈퍼스타로 급부상시키는 데 초석을 낳은 인물이었다. “테오는 살아생전 고흐의 지지자이자 유일한 후원자였고, 요한나는 역설의 바니스타를 실현시킨 인물이었어요. ‘내게도 그런 가족들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염원이 제 의식을 고흐나 요한나에게로 향하게 한 것 같아요.”

예술적인 행위를 통해 아픈 가족사를 소환하고 그들을 위무하는 마음이 가장 크지만 자신을 향한 위로의 감정 또한 빠트릴 수 없다. 고흐의 정물화 그림 외에도 목련이나 공룡을 그리기도 하는데, 이런 소재들은 행복했던 그의 어린시절 기억으로부터 왔다. 목련은 어린시절 집 정원에 있던 나무였고, 공교롭게도 현재 그의 작업실 정원에도 자라고 있다. 공룡은 어린시절 행복의 전령사였다. 그는 목련이나 공룡으로 대변되는 개인의 선형적인 시간을 회화라는 비선형의 시간과 병치하며 캔버스를 새로운 시간성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킨다.

“저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차원의 시간을 맞물리도록 하며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모호하게 하고, 그것을 통해 힘든 시간을 행복한 시간으로 채우려 하는 것 같아요.”

가족이 굴레라고 하지만 그를 지탱하는 것 또한 가족이다. 예술의 출발도 가족이고, 예술의 형식도 가족으로부터 왔다. 불을 작업에 끌어들인 것은 치매였던 할머니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깔끔한 성격이었던 할머니는 그가 작업하는 캔버스나 물감 같은 것들을 치우는 데도 열심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작업을 방해하는 요인이었다. “할머니가 치우시기 전에 물감을 칠한 캔버스를 빨리 말려야 해서 불을 사용해 보았어요.”

할머니의 성격 때문에 불을 사용하게 되었지만 결과는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렀다. 불에 의해 우연적인 요소들이 불쑥불쑥 튀어 올랐다. “불과 어우러질 수 있는 물성과 방식을 연구한 후 작업 방식의 일환으로 불을 본격적으로 가져오게 됐어요.”

2015년부터는 자립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파지와 예술을 접목한 창업에도 뛰어들었지만 청년창업 대상자에서 최종 탈락했다. 하지만 그는 파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현재의 일기나 심리를 표현하는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파지를 통한 예술의 확장인 셈이다. 파지 작품은 매일의 감정상태가 표현된 드로잉과 글로 구성되어 있다.

작업의 기반을 철저하게 개인적인 서사에 기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의 화면에서 아픔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직설적인 화법 대신 은유법을 사용한 결과다.

고흐나 불은 작가 자신의 내적 서사를 은유하기 위한 일종의 암호다. “개인적인 서사지만 보편의 정서로 표현하는 것이 예술가의 책무라고 생각해요. 저의 화면에서 보는 이들 각자의 서사를 발견하기를 하라죠.” 전시는 24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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