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머문 자리
[달구벌아침] 머문 자리
  • 승인 2022.12.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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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어김없이 올해도 끝이 왔다. 이때가 되면 여러 감정이 밀려온다. 그 감정은 대체로 아쉬움에 대한 것이 많다. 이유는 잘해 왔던 일보다는 잘하지 못했던 일이 더 생각나기 때문이다. 끝은 늘 이렇게 쓸쓸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한다. 하지만 끝이란 말은, 그냥 단순히 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뜻도 품고 있다. 이제는 정말 끝이 났구나 생각하겠지만 또 다른 시작이 우릴 기다리고 있으며, 끝없이 돌고 도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삶은 무한 반복이다. 산 정상으로 힘겹게 바위를 밀어 올려놓지만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매일 아침이 되면 다시 산 정상으로 밀어 올려야 하는 반복의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처럼 우리 삶도 반복의 연속이다. 그래서 영원한 끝이란 말은 애당초 있을 수가 없는 말이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을 해야 한다는 신호와 같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들었던 어른들의 말씀 중 하나는 ‘끝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예전에는 그 뜻을 잘 몰랐지만 나이 들어보니 정말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령 올림픽 달리기 시합에서 아무리 초반에 잘 달린 선수라도 마지막에 꼴찌로 들어오면 모든 사람이 그를 ‘꼴찌로 들어온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마지막, 끝에 몇 등으로 골인을 했느냐에 따라 목에 거는 메달의 색깔이 정해진다. 끝이 처음보다 중요한 이유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필자는 3월과 9월이 되면 한 학기의 시작인 개강을 하고, 6월, 12월이면 학기의 끝인 종강으로 한 학기를 마무리한다. 올해도 12월이 시작되고 어김없이 시원섭섭한 종강의 시간이 다가왔다. 이번학기는 1학년 학생들 여섯 개 반을 맡아 이틀에 걸쳐 세 개 반씩 강의를 진행했다. 학생들과 마지막 수업을 진행하며 본인이 강조한 말은 “끝이 좋아야 한다”라는 말이었다. 어디에서든지 ‘머문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부탁했다. 학기를 마칠 때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도, 다니던 직장을 관둘 때도, 머문 자리가 아름다운 우리가 되자고 당부했다. 두 개 반 수업까지는 학생들이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고, 나의 생각에 공감했다. 많은 학생들이 마지막을 더 열심히 하자는 나의 부탁에 동의를 했고, 평상시 수업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로 수업에 임했다. 그 결과 나도 기분 좋았고, 학생들도 기분 좋게 한 학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며 웃으면서 교실을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 반에서는 나의 진심 어린 부탁이 잘 전달되지 못했다. 소수의 학생들 때문이었다. 다수의 학생들은 교수인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협조해 주었지만 몇몇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다. 평소보다 더 시끄럽게 얘기를 나눴고, 수업분위기를 흐리는 등 협조도 잘하지 않았다. 참아야 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화를 밖으로 표현해서 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내 얼굴에 고스란히 싫은 표정이 드러난 모양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한 학생에게서 이메일이 와있었다. ‘한 학기 동안 너무 감사했으며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된 수업이었다.’는 내용의 이메일이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했다. 자기가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수업분위기를 망친 몇 명의 학생을 대신해서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마지막 교실을 나가는 나의 표정이 어두워 보여 너무 미안했단다. 그 편지를 받고 내가 오히려 더 미안했다. 실컷 잘해오다가 마지막에 무거운 모습을 보여준 자신이 부끄러웠다. 메일을 받고 많은 반성이 됐다. 조금 참고 이해했으면 더 좋은 수업이 되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날 남은 세 개 반의 수업은 아름다운 끝을 맺을 수 있었다.

‘머문 자리’가 아름다운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2년이란 시간도 다시 돌아보며 추억할 수 있도록 끝을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한해 동안 감사한 일을 정리 해보아야겠다. 미안한 사람에게는 용서를 구하고, 고마운 사람이 생각나면 미루지 말고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며 2022년을 잘 정리했으면 좋겠다. 나아가 감사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행복한 그것이 ‘머문 자리’를 아름답게 하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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