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감사일기
[달구벌아침] 감사일기
  • 승인 2022.12.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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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나이가 들수록 날씨에 민감하다. 조금만 날씨에 비껴가는 옷차림을 하면 몸 컨디션이 영향을 받는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더욱 그러하다. 최고 날씨가 영하를 보이면 가장 두꺼운 옷을 골라 입어추위가 침범하지 못하게 성벽을 쌓는다.

최고 날씨가 영상을 보이면 덜 두꺼운 옷으로 입어야 답답해지지 않는다. 너무 두꺼운 옷을 입어도 몸이 부대낀다. 무릎과 어깨와 목과 머리도 기온에 영향을 받아 병원을 자주 간다. 물리치료를 받으면 좀 낫다.

한 주는 자주 가고, 다음 주는 쉰다. 날씨에 신경을 쓰고, 병원을 자주 가고, 해가 빨리 지다 보니 하루가 짧아 일주일도 짧게 느껴진다.낮이 긴 것이 좋아, 밤이 가장 긴 ‘동지’를 기다리다보니 한 해 끝자락이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산 세월 중 오늘이 가장 나이가 많은 날이기도 하다. 내년이면 또 한 살 먹는다. 만나이로 계산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산 세월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세월이 참 빨리 지나갔다. 언니 말로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내가 젊은데 아이들이 크면 자신이 나이가 들어 좋지만도 않다고 하더니 그 말 뜻을 알 것도 같다. 아이들 신경을 쓰면서, 집안 살림살이 신경을 쓰면서 바쁘게, 정신없이 살고 나니 날씨에 영향을 쉽게 받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한숨 내 쉬고 쉬어가고 싶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을 들여다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아이들 입시가 끝내고 나면 이것을 해야지 저것을 해야지 목표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목표들은 기억이 나지 않고, 연극이 끝난 뒤 텅 빈 극장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박수갈채를 받았든, 박수를 받지 못했든 관객이 돌아가고 난 비어있는 의자와 무대의 느낌. 털썩 주저앉아 그동안 힘들게 연습하고 고민하고,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날들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 그 느낌이 들어 잠시 멍하니 있고 싶어졌다. 다음 목표를 세우지 않고 말이다.

한 주가 지나고 나니 불안해졌다. 뭔가를 해야할 것 같은 조바심이 생겼다. 시간을 마냥 흘러보내 며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꼭 해야하는 일이 하루 중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 너무 좋은데, 책임과 의무감으로 하루하루 살아가지 않아도 되어 너무 좋은데 왜 그 비어있는 시간을 즐기기 못하고 제자리에서 뜀뛰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들까. 결국 다시 목표를 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목표를 향해 천천히, 느리게, 여유있게, 한 걸음씩 걸어가면서 바람도 느끼고, 햇살도 느끼고, 주변도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목표를 세우지 않겠다는 결심은 한 주 만에 꺽였다.

그러나 세운 목표는 계속 번복되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커서 먼저 책을 읽어야겠다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다. 책을 읽다가 직접적으로 글쓰기에 도움도 안 되고, 지금 당장, 오랜 시간을 글쓰기 몰두할 수 없는데 이것을 읽어 무엇하나, 다른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의 갈등과 불만이 있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시험을 준비해봐야겠다 싶어서 영어단어를 열심히 외우다가 채용인원이 적어 합격가능성이 낮은 것 같아 포기했다.

그동안 만나지 못한 지인들과 만나 술을 마시고, 커피를 마셨다. 즐거운 시간은 7시부터~9시30분까지였다. 그 시간을 넘기니 피로감이 생겼다. 홍희의 총량의 법칙에서 사람들과 즐겁게 대화를 할 시간은 하루 중 3시간정도인 듯하다. 하루의 총량을 넘기면 피로하다. 어쩔수 없는 홍희만의 총량이 있다.

홍희가 자기답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한 달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굳이 다른 새로운 목표를 세워 달성하려고 하지 않고, 오늘 하루하루 해야하는 일, 일어나는 일을 자기답게 수행하는 것, 그리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 조금 더 나아가 감사일기를 한 줄이라도 써 보는 것. 그것이 자기답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이런 깨달음이 생기게 되어 감사하다. 오늘 이 글을 쓸 수 있어 감사하다. 동료가 글을 붙여놓은 것을 보았다.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오늘 행복한 일이 하나는 있다”. 같은 생각이다. 매사에 감사할 순 없지만, 오늘 감사한 일은 하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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