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무형 작가 개인전…내년 1월 16일까지 갤러리 모나
권무형 작가 개인전…내년 1월 16일까지 갤러리 모나
  • 황인옥
  • 승인 2022.12.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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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멸·순환과정을 회화·사진·퍼포먼스로 서술
물감 칠하고 말리기 수차례 반복
머리카락 기르기 23년 사진으로
삶·예술의 지향점은 진리·깨달음
“짧지만 울림있는 詩 같은 작업 ”
대학 때 공모전 특선 후 프랑스로
유럽 각종 아트페어 초대·개인전
“원 해체는 작업의 무한확장 의미
장르 구애 없이 조형성 자유 획득”
권무형작가개인전
권무형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모나 전시장 전경.

일찍부터 동양은 순환적인 우주관을, 서양은 직선적인 우주관을 믿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질주하고 죽음은 곧 끝이라는 관점이 직선적 우주관이라면, 죽음은 또 다른 탄생을 의미하며 존재는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견해가 순환적 우주관이다. 권무형 작가의 주제의식은 순환적인 우주관으로 집약된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노화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는 생멸(生滅)과정과 존재의 끊임없는 순환과정을 회화, 사진,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시각적 언어로 서술한다.

그의 주제의식이 집약된 작품은 회화다. 첫 숨을 토하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순간까지, 생멸의 기록을 회화로 서술한다. 작업은 캔버스에 모래를 바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작업에서 호흡이 가빠지는 것은 그 이후부터다. 흙을 바른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세우면 중력에 의해 물감이 땅으로 흘러내린다. “인간의 먹고 배설하는 행위”와 흡사한 이 과정에서 물감이 마르면 또 다시 물감을 칠하고 캔버스를 세워 말리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한다. 붓을 손에서 놓는 지점은 중첩된 물감 덩어리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캔버스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이다.

“물감덩어리가 캔버스 표면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은 육체와 정신의 유체이탈로 보면 됩니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죠.”

물감과 작가 자신의 예술적 노동의 결정체로 획득되는 물감 덩어리는 영롱하기 그지없는 진주에 비견될 만큼 그에게는 미(美)의 정수로 다가온다. “조개가 모래를 먹고 배설하기를 반복하며 영롱한 진주를 만드는 것을 보고, 저 역시 화가로서 아름다움의 정수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어요. 그것이 캔버스와 모래와 물감의 결합으로 만든 물감덩어리였죠.”

또 다른 작품은 사진과 비디오다. 자신의 신체 일부인 머리카락을 예술적 요소로 활용한 작품인데, 1999년 2월 28일 00시에 그의 신체적 퍼포먼스는 시작을 알렸다. 작업의 출발은 머리카락을 삭발하고, 사진과 비디오로 촬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과정을 시기마다 사진과 비디오로 기록한다. 작업이 종지부를 찍는 시점은 머리카락이 땅에 닿는 순간인데, 이때 그는 비현실적으로 길어진 머리카락을 미련 없이 삭발할 예정이다.

“머리카락 작업의 의도는 머리카락이 길어가는 과정을 통해 사람의 일생과 순환에 대한 담론을 보여주는 것이죠.”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하고 장장 23년이 흘렀지만, 그의 머리카락 기르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머리카락도 생멸을 거듭하는 까닭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노화된 머리카락이 빠졌고, 끊임없이 새로운 머리카락이 그 자리를 채웠다. 머리카락의 생멸 주기 때문에 애초에 그가 계획했던 땅에 닿을 만큼 자란 머리카락은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머리카락의 최종 귀결점인 ‘땅까지 성장하기’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지만,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는 23년이라는 긴 여정은 그의 우주관을 여실히 확인시키는 실험의 장이 되기에 충분했다. 23년간 그의 신체에 다양한 변화가 찾아왔고, 그 기록들이 가감없이 사진과 비디오로 담겼다. “세월이 흐르면서 제 얼굴에 주름이 생겨났고, 머리카락에도 조금씩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자신의 신체 일부인 머리카락은 바다와 소라 등의 오브제와 컬레버래이션되며 다양한 사진 작품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이 작업은 제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계속됩니다. 생멸과 윤회를 저의 신체의 일부로 증명하는 작업이니까요.”

그가 “머리카락의 생멸과정을 나비의 삶과 연결” 지었다. 알에서 애벌레로 성장하고, 5~6회 번데기로의 환골탈태(換骨奪胎) 끝에 아름다운 나비로 탄생하는 나비의 일생을 머리카락의 생멸에 비유한 것이다. 나비는 짝을 만나 알을 낳으면 죽음을 맞이하고, 자연의 일부로 흡수되어 다른 생명체의 영양소가 된다. 그는 나비의 삶에 압축된 ‘순환’의 현현(顯現)을 생명체의 존재의미로 받아들인다. “순환이야말로 모든 생명체의 존재 의미라고 생각해요.”

작품 ‘명상 : 8괘(八卦)’는 퍼포먼스 작업이다. 8괘는 자연계 구성의 기본이 되는 하늘·땅·못·불·지진·바람·물·산 등을 상징한다. 자연과 인간의 모든 현상을 8개의 기호와 기호들의 조합으로 설명한 동양철학이다. 그의 8괘 퍼포먼스는 우주의 질서에 대한 형상화다. 먼저 웅크리고 앉은 8명의 무용수가 그를 에워싸는 것으로 퍼포먼스는 시작된다. 그와 8괘에 해당되는 무용수는 탯줄과 시간이라는 의미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자 무용수들은 중앙의 알수 없는 주관자로부터 점점 멀리 떨어진다. 그들 간의 거리가 정점을 달리는 순간, 거리는 다시 좁혀지고 처음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태어나서 죽는 과정과 벗어날 수 없는 시간과 굴레를 동양철학의 정수인 8괘를 통해 형상화했어요.”

그의 예술은 진리를 향하고 있고, 그는 예술가 이전에 깨달음을 구하는 구도자다. 그는 자신의 삶과 예술의 지향점을 ‘진리’와 ‘깨달음’에 둔다. 이는 그의 작품 제목들이 한결같이 ‘명상’인 이유다. “제 작업은 모두 ‘명상’의 범주에 있어요. 현세에 발을 딛고 있지만, 그 너머의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명상’이 위치하고 있죠.”

‘진리’를 구현하는 매체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회화, 사진,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열어둔다. 하지만 주제의식은 오직 하나, 생멸(生滅)과 순환(循環)이다. 생태적인 주제는 지극히 생태적으로 구현된다. 질료인 캔버스를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성장하는 생명체로 전환하고, 우주의 원리인 8괘를 자신의 신체에 대입한다. 그의 작업들을 숭고함으로 이끄는 이유는 생태의 원리를 지극히 생태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다.

그가 “육체와 신체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논리를 폈다. 그에게 신체는 영혼의 집이다. 그는 신체의 자연발생적인 변화 과정을 통해 영혼을 가진 생명체의 삶의 여정과 순환의 질서를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굴레이자 신의 영역인 시간에 대해 성찰하고, 우주의 질서에 한 걸음 다가간다. “캔버스나 저의 머리카락은 육체이며, 매일 길어나는 머리카락이나 캔버스에 올리는 물감은 정신이죠. 저의 작업은 정신과 육체의 기록에 해당하는 일종의 ‘일기’입니다.”

그의 작업들을 문학에 비유하면 ‘시(詩)’다. 긴 서사의 소설이나 단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수필과는 거리를 둔다. “간결하지만 힘 있는 문장으로 핵심을 찌르며 울림을 전하는 시와 같은 작업을 추구한다”는 것이 그의 의도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작업은 다분히 함축적이다. “한 마디의 말이나 짧은 시가 긴 소설이나 영화보다 훨씬 큰 울림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황한 설명보다 간결하지만 힘 있는 전달이 저의 작업 스타일과도 맞습니다.”

그가 동양적인 우주관을 심화한 장소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이었다. 자신의 뿌리를 떠나 낯선 땅에 부유하게 되면서, 오히려 자신의 뿌리가 더 명징하게 드러났다. 그의 두 번째 근거지는 프랑스. 현재 그는 국내와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행은 대학 3학년 초 중퇴와 함께 결행됐다. 대학 1학년 때 전국 공모전에서 특선을, 2학년 때 우수상과 다음해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25세에 최연소 추천작가로 등극했지만 더 넓은 곳에서 예술을 펼쳐보겠다는 야망으로 프랑스로 떠났다.

보다 자유로운 유럽에서 그의 작업은 일취월장했고, 사회적인 성취도 주어졌다. 2000년 른 아트페어를 시작으로 여러 국제아트페어 참가 작가로 이름을 올렸으며, 2007년 9월에는 프랑스 아트 님(NIM) 국제 아트페어 주최측으로부터 개인전 초대를 받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 3 국영 방송사 뉴스에서 그의 사진과 비디오 작업을 인터뷰할 만큼 호평을 받았다. 2008년부터 사진의 메카인 유럽과 미국에서 연이어 주목작가로 입지를 구축해갔다. 2008년 아트 그르노블에서도 주최측 초대 개인전과 뉴욕 아시안 아트페어(ACAF NY)에서 메인 홍보작가 9인에 선정되고, 전시 중에 (뉴욕 타임즈)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권에서의 활약상도 컸다. 2007년 12월에 세계적인 아티스트인 왕두 등과 함께 하는 전시에 초대됐으며, 터키 이스탄블 국제 아트페어에 하이라이트 작가 8인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독일문화재단인 마리포사에 백남준의 작품과 함께 소장되어 있다.

그의 작업은 오늘도 진화 중이다. 최근 개인전을 시작한 갤러리 모나(대구 중구 명덕로 35길 68) 개관전에 걸린 회화 작품에 변화가 감지된다. 모래를 칠하고 물감을 중첩하는 대신 윤회를 의미하는 원을 해체한 조각들을 캔버스 표면에 붙이고 흰색을 도포한 작품이다. 윤회를 상징하는 ‘원’은 그의 이전 작업인 퍼포먼스에서 차용했다. 퍼포먼스에 사용된 회오리 모양의 원을 해체하여 반입체 회화로 구현했다.

그가 “빛과 그림자의 효과까지 더해져 서사는 보다 흥미로워졌다”며 변화된 화풍에 만족감을 표했다. “원의 해체는 작업의 무한확장을 의미해요. 회화 작업이나 설치, 퍼포먼스 등 장르에도 구애를 받지 않고, 회화 작업에서도 규모나 조형성에서도 자유를 획득하게 되었어요.”

원의 해체를 형상화한 흰색 부조 회화와 사진, 영상 작품 등을 소개하는 갤러리 모나 권무형 작가의 개인전은 내년 1월 16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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