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재벌집 막내아들’ 실화를 소재로 하는 스토리의 즐거움
[대구논단] ‘재벌집 막내아들’ 실화를 소재로 하는 스토리의 즐거움
  • 승인 2022.12.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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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진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영화나 소설, TV드라마에 나오는 스토리들은 모두 작가가 만들어 낸 허구의 스토리이다. 등장인물과 사건들은 모두 작가의 상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독자나 관객은 그런 스토리가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몰입하게 되거나 감정적인 반응을 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인간은 물리적 근거 없이 심리가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소설이나 영화 등 허구 스토리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람도 볼 수 있다. 영화나 TV드라마는 관심 없고 오로지 뉴스만 본다는 사람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절박한 현실에 매몰되어 하루하루의 파고 속에 살아가는 사람에게 현실이 아닌 허구의 스토리는 허구이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TV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허구의 스토리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매혹할 수 있는 독특한 스토리 구성을 보여 주고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이 시대 한국인이 겪어온 “삼성, 한보철강, 삼성차, 월드컵 4강, 외환위기, 카드대란, KAL기 폭파사건…” 등의 역사적 사실을 회상하게 하고 그 의미와 감정을 다시 느껴볼 수 있게 만든다. 드라마를 통해 회상되는 그런 역사적 사실들이 보는 사람에 따라 들춰내는 감정과 의미는 각자 다르지만, 나의 지나온 삶을 생각하게 하고 이 순간 이런 현실 공간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즐거움이 있다. 물론 스토리의 주요 즐거움은 새로운 삶을 사는 주인공에게 몰입되는 꿈같은 상황이나 돈 때문에 무시 받고 험악한 처지에 놓인 주인공의 역전극 같은 복수상황, 그리고 배우들의 매력적인 연기 등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스토리를 즐겁게 보게 하는 요소들은 이처럼 차고 넘쳐 보이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은 한국사회의 실제 사건들과 인물들을 소환시키고 회상하게 하는 즐거움을 잘 엮었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60년대 70년대 미국인들은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저녁 TV뉴스에서 충격적으로 목도하게 된다. 실제 인간들의 죽음을 TV를 통해서 보는 미국인들은 그 리얼함에 압도되어 허구의 영화 내용에 흥미를 잃고 영화산업의 위축을 불러오는 사태도 있었다. 베트남 전쟁의 실제적 공포감 때문에 특히 이 당시 미국 호러영화들은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힘든 상황을 맞기도 했다. 그래서 그 이후 호러영화는 더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살육으로 채워지는 비주얼과 스토리 구성으로 전환하게 된다.

1970년대 나온 영화 ‘핼러윈’, ‘엑소시스트’, ‘에일리언’ 등이 모두 그 전 시대의 고전적 표현과 다르게 인간을 푸줏간 고기(butcher shop horror)로 다루는 듯한 포스트 모던한 표현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나아가 호러영화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움직임은 사실성을 스토리에서 강조하는 아이디어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뉴욕의 어느 박물관에 가면 영화에 나오는 실제 악마의 인형이 있다거나 혹은 영화에 나오는 엑소시즘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는 식으로 허구의 스토리를 실제적 사건인 것처럼 혹은 실제로 존재하는 요소를 강조하며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음을 볼 수 있다. 공포감을 즐기는 영화가 공포영화인데 그 공포감의 핵심이 허구의 스토리 장치보다는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요소를 사용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엮어내는 것이다.

실제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스토리를 흥미롭게 만든 최근 미국영화 중에 우리는 ‘원스어폰어타임인… 할리우드, 2019’도 기억할 수 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영화 피아니스트 감독)과 그의 아내(광신도들에 의해 임신한 채로 살해된)의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원스어폰어타임인… 할리우드’는 허구와 실제를 섞어서 관객에게 1960년대 할리우드에 대한 향수와 애정을 듬뿍 만들어 내고 있다. 허구의 스토리 구성이 즐거움을 주는 것이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것들이 그 흥미를 입체화 시키는, 독특한 크리에이티브가 발휘된 작품인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은 물리적 근거 없이 심리가 발생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그것이 무엇이든 존재한다는 믿음이 없다면 그런 허구의 사건이나 대상에 반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인간은 허구의 스토리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 그런지를 설명하는 학자들의 이론들은 무척 다양하다. 하지만 최근에 자주 나오는 실화를 소재로 하는 스토리들은 그런 실제 사건의 요소 때문에 관객의 반응을 촉발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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