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대구읍성 바깥에 장관 이루던 고인돌 대부분 소실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대구읍성 바깥에 장관 이루던 고인돌 대부분 소실
  • 김종현
  • 승인 2022.12.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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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고인돌의 분포에서 달구벌의 아쉬움
지구촌 곳곳에 6만여 기 분포
한반도에 4만5천910기 존재
100년 전 달구벌에 2천~3천기
대구역 주변·도심지서도 발견
조국근대화 사업 등 하며 소실
신천 중심으로 고인돌 밀집
생명수사상·수향문화 이유
시민회관 건립 때 칠성바위
경상감사 아들 무병장수 기원
청동기시대달구벌수호신들
청동기시대 수많은 바위들이 달구벌 수호신으로 자리잡았었다.

◇고인돌, 남한 3만5천966기 중 경북에 3천125기 분포

고인돌은 대략 6만여 기(基)가 지구촌에 분포되어 있는데, 유럽은 대서양 동안을 따라 길게 집중 분포되어 있으며, 발트해 스웨덴 남부부터 덴마크, 네덜란드 북부, 독일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서유럽에서는 프랑스가 중심지로, 포르투갈과 스페인, 서쪽으로 영국과 아일랜드에까지 이르고 있다. 지중해 연안에서는 코르시카와 사르디니아, 프랑스 남부인 프로방스, 이탈리아의 동남부반도, 아프리카 북부인 알제리, 지중해 동안인 시리아 등에 거석이 분포되어 있다.

흑해연안은 러시아 까프까즈에 집중되어 있으며, 아시아 지역은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대만,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는 집중되어 있다. 특히 동부아시아 지역 한국, 일본 구주 북서부지역 나가사키, 사가, 후쿠오카 등에 600여기 분포, 중국 절강성 50여기, 요령성 700여기가 분포되어 있다. 일본 고인돌의 특징은 비교적 작으며 큰 것은 2~3m, 작은 건 1m 내외, 탁자식은 존재하지 않고 기반식 축소형이 대부분이다.

1999년 문화재청과 서울대학교가 공동조사한 보고서에서는 한반도에 4만5천910기 남한에 2만9천510기(북한 2만여 기)로 세계적으로 6만여 기 가운데 82.5%의 비중이라고 했으나, 최근 통계로는 남한 3만5천966기로 자세한 내역은 강원도 412기, 경기도 957기, 충북 218기, 충남 743기, 전북 1천969기, 전남 2만2천560기, 경북 3천125기, 경남 1천660기, 제주 105기 등 총 3만5천966기가 발굴되었다. 이들의 모양에 따른 분류로는 i) 탁자모양 고인돌, ii) 바둑판 모양 고인돌, iii) 덮개모양 고인돌, 그리고 vi) 들려 싸기 고인돌 등이 있다.

그런데 달구벌에 있었던 고인돌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앞선다. 100년 전에도 2천~3천여 기는 넘어섰다. 1973년 7월에 발간된 경상북도 대구시 ‘대구시사(3권)’ 제2권 제1편 선사시대~삼국시대에서 “고인돌(지석묘) 무더기는 1920년대 초기만 해도 대구읍성 바깥에 분포해서 장관을 이루었다.”고 적고 있다. 사실, 당시는 대구역 주변, 달성공원 부근은 물론 도심지역에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신천(新川, 사잇걸), 진천천(辰泉川, 별샘걸), 욱수천(旭水川, 윤슬걸), 율하천(栗下川, 밤거랑) 섶에 많은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해방 전만 해도 달구벌 사람들은 ‘고인돌 천지삐까리’라고 했다. 조국근대화와 새마을사업을 하면서 고인돌의 수난사는 시작되었다. 1996년도 발행된 제2차 ‘대구시사’ 제1권 제1편 선사시대 지석묘(고인돌)에 43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진천천 유역 15기, 욱수천 유역 10기, 율하천 유역 17기 등이다.

◇신천주변 3천여기 대부분 소실

1927년 조선총독부는 민족역사를 뒤집고자 고분발굴(도굴) 촉탁사업을 추진했다. 일본인 고이즈마 아키소와 사와 šœ이치 팀이 대봉동 지석묘 발굴 작업을 했다.

당시 고인돌을 묘표석, 지경석, 제단석 혹은 화결석 정도로 인식했다. 대봉동 고인돌을 구조상 강돌(水石)을 밑바닥에 깔고 설치한 묘표석으로 생각했다. 막상 뚜껑돌(蓋石)을 올리고 보니 그 아래에 여러 군데 매장부(埋葬部)가 있었다.

달구벌을 가로지는 신천을 중심으로 고인돌이 밀집된 이유는 청동기 시대의 사람들은 i) 식물의 뿌리는 물을 향해 땅속으로 뻗어나가는 물굽성 혹은 습굽성(水向性, hydrotropism)이 있고, ii) 야상동물로 물(샘)섶을 중심으로 집단생활을 한다. iii) 사람도 생전에 식수와 농업용수를 경작하고 식량을 얻기에 생명수사상(Vita Aqua Cogitatio)을 가졌다. ii) 사후엔 신천에 비췄던 은하수 별나라를 통해서 저승으로 간다고 믿었던 수향문화(水向文化, aqua cultura)가 형성되었다. 오늘날 종교 즉 기독교에선 “요단강 건너서 천국에서 만나리!”, 불교에선 “용선을 타고 저승 극락으로”라는 믿음을 가졌다. 그런 믿음에서 달구벌에선 신천을 중심으로 3천여 기가 넘게 분포되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을 살펴보면, BC10 세기전 후 농경청동기시대 선사천문학에 의해 거북머리를 남두육성(혹은 키 별자리)을 향하게 하여 풍년을 기원하며, 동시 꼬리는 북두칠성으로 무병장수를 기원했던 사암고인돌인 연구산 거북바위가 있다. AD 10세기 이후에는 당시의 믿음이었던 비보풍수(裨補風水)에 의해 i) 화산(앞산)의 화기진압을 하고, ii) 진산에다가 신천(龜首, 수맥)과 팔공산(龜尾, 지맥)을 있기 위해, iii) 여러 차례 옮겼던 거북바위(龜岫)였다.

이에 대해 서거정은 ‘거북봉오리 날아든 봄 구름(龜峀春雲)’이란 시를 지었다. “거북봉오리라고 하나 희미하게 보이다보니 자라 봉오리 같구나. 들락날락거리는 무심한 저 구름은 또한 유심하기도 하네. 대지에 돋아나는 신성한 생명체들 모두가 바라는 것이오니, 가능하시다면 딴 맘 잡수지마시고 단비장마(甘霖)나 만들어 주소서.”라고 기원했다. 그 거북바위가 현재까지 대구제일중학교(중구 명륜로 23길16) 교정을 지키고 있다. 이외에도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가창로 441) 대구시 기념물 제14호 고인돌 8기(BC 1000~300년으로 추정)가 있고, 수성구 상동(上洞) 아르떼 수성랜드 부지 고인돌 5기, 상동 청동기마을 고인돌 1기가 전시되어 있다.

◇경상감사 아들 이름새긴 칠성바위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고인돌은, 1973년 시민회관 건립 때 경내에 있던 칠성바위이다. 어떤 유구나 유물도 없어서 동측에 안치시켰다가 1998년 시민회관(콘서트홀)에서 대구역 뒤 칠성2가 302로 옮겨진 청동기고인돌 7기가 그것이다.

전래설화에 의하면 조선 정조 병진년 경상감사 이태영(李泰永, 한산이씨 목은 15대손, 1744~1803)이 읍성 북문 밖 기이한 바위 7개가 있어 칠성바위로 모시(탁명의식을 치루)고 주변에 화훼를 심었다. 그 바위에다 아들들의 이름을 새겨서 무병장수를 기원했다는 전설이 있다. 현장조사를 해보니 i) 암질은 사암과 점토암 등으로 각기 다른 것으로 봐서 일명 탁명의식(托名儀式) 혹은 의암모의식(義巖母儀式)을 위해서 주변 7개 지석묘 등 거석을 모았으며, ii) 5개의 바위에는 이희갑, 이희준, 이희정, 이희두 및 이희평이라는 이름을 새겼으나 나머지 2개는 이름이 보이지 않음으로 봐서 북두칠성의 의미로 나중에 추가했을 법하다. iii) 규모와 무게를 실측한 결과 가장 큰 돌(李羲甲)은 6.49톤(길이 2.08m×폭1.34m×높이 1.4m×60%×비중 2.6)이고, 가장 작은 것은 1.724톤(길이1.8m×폭1.1m×높이0.5m×67%×2.6)이었다.

가장 최근에 발견된 동구 괴전동 선돌 2기(夫婦百年偕老石) 가운데 가장 큰 선돌(남편 석)은 남남동방향으로 봐서 농경과 풍년을 맡고 있는 별인 키 별자리(箕星)를 향해 선돌의 앞·뒤에다 별자리구멍(星穴)을 음각했는데, 앞면에선 길이 88.74㎜, 폭 21.23㎜, 깊이 7.07㎜, 뒷면의 성혈은 길이 62.72㎜, 폭 43.45㎜, 깊이 13.00㎜나 되며, 암각 단면을 10배로 확대해서 살펴보니 올통볼통한 사압입자가 그대로 있는 것으로 봐서 돌보다 단단한 청동기로 쪼아서(啄刻, pecking skill) 새겼다. 암질은 사암(모래바위)으로 무게 0.943톤(길이1.28m× 높이1.33m × 폭 0.3m ×70% ×비중 2.6)정도였고, 나머지 작은 선돌(아내 바위)은 새김은 없으나 남편방위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진천동 선사역사공원 사암 암각입석(동심원 암각) 및 고인돌(臥石) 3기는 많은 자료가 공개되어 있어 여기선 생략한다. 위에서 이미 소개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화장사(華藏寺, 川內里 515-1番地) 사암(모래바위) 등 칠성바위(臥石) 5기가 화장사 내 분산 배치되어 있으며, 가장 큰 고인돌인 칠성각 앞 바위에는 2~3중 동심원으로 남남동방향(後天周易巽方)으로 농경과 풍년을 담당하는 키 별자리를 향하고 있다. 청동기시대(BC 6~4세기로 소급) 암각화가 새겨져 있어, 육안으로 확실히 보이는 4개의 동심원만을 실사한 즉 지름 77.80㎜와 깊이 4.36㎜, 지름 46.05㎜와 3.36㎜, 지름 10.06㎜와 3.14㎜, 그리고 지름 15.41㎜와 깊이 5.10㎜정도였으며, 단면을 10배로 확대해서 살펴보니 미끈미끈한 사암입자라 경도가 높은 청동기 등으로 문질려서(engraving skill) 새겼다.

글·그림 = 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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