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대구굴기 함의
[수요칼럼] 대구굴기 함의
  • 승인 2023.01.0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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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경제학 박사

대국굴기(大國崛起)는 2006년 11월 13일부터 그해 11월 24일까지 중국 중앙방송의 경제채널을 통해 방영된 12부작 역사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15세기 대항해시대 이후 제국으로 부상한 포루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미국 등 9개 나라의 흥망성쇠를 통해 현대 중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 핵심 내용을 살펴보면 모험정신(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과학정신과 발명 지원(영국), 현대 민주주의의 기반인 자유·평등·박애사상(프랑스), 학문과 의무교육(독일), 언론의 자유(미국), 서구의 제도와 가치 수용(일본), 표트르 1세의 개혁(러시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메디슨(A. Maddison)에 의하면 1820년 중국은 전세계 GDP의 1/3을 차지한 경제 대국이었다. 그러나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서구 국가들이 빠르게 성장한 반면 중국의 경제 규모는 오히려 축소되었다. 경제력이 약화된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들에 의해 반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중국은 전 세계 20여 국가들에게 무역항의 치외법권을 양보하였으며, 관세수입은 외국인들이 통제하였다. 또한 영국. 일본, 러시아에게는 조차지를 할양하는 아픔을 겪었다.

근대 이전에 중국이 서양보다 경제, 과학, 기술 측면에서 더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서구에 뒤처지게 되었을까? 이러한 의문점을 갖고 세계은행 부총재를 역임한 린이후 교수는 그 원인을 분석하였다. 그는 한 나라의 경제가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본 전제요건은 지속적인 기술혁신과 기술향상으로 규정하였다. 근대 이전에는 농부들과 수공업자들의 경험에 의존했다. 이 시기에는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이 가장 큰 혜택을 보았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발명의 전제조건이 개인적인 경험에서 과학자들의 연구실에서 이루어진 실험으로 대체되면서 중국은 낙후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산업혁명의 원동력인 과학혁명의 특성은 수학과 계획된 실험이다. 그러나 중국의 인재 선발을 위한 과거제도는 수학과 실험에 필요한 능력을 가진 과학인재를 배제했기 때문에 중국에는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중국도 등소평이 집권하면서 추진한 개혁개방정책으로 30년 이상 연평균 GDP성장율이 9.9%를 넘었다. 2003년 후진타오는 중국위협론을 우려한 미국 조야를 의식해 도전과 위협이 아니라 평화를 강조한다는 뜻에서 화평굴기를 내세웠다. 2012년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시진핑은 대국굴기의 다른 버전인 중국의 꿈을 내세웠다. 시진핑은 아편전쟁의 패배를 기점으로 170년여에 걸쳐 중화민족이 겪었던 좌절과 성공의 역정을 총괄하고 이를 바탕으로,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2023년 신년에 대국굴기의 대구판 버전인 대구굴기(大邱
崛起)가 등장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신년사를 통해 “2023년을 대구굴기의 원년을 삼아 미래 50년의 번영을 향해 힘차게 일어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기회 있을 때마다 “대구가 영광을 되찾기 위해선 학맥과 인맥으로 30년 동안 대구를 이끌어온 기득권 카르텔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구 시장으로 내려와 90일 동안 숨 가쁘게 기존 관행, 기득권 카르텔, 대구 폐쇄성을 극복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지역 사회의 폐쇄성이 대구의 몰락을 가지고 온 큰 원인이라고 수차례 밝힌 홍 시장의 발언은 단순히 정치적 레토릭만은 아니다. 대구에서 20년 살았던 주민들 중에서 아직도 이방인으로 느껴진다는 하소연과 그 맥이 통하기 때문에 새겨들어야 한다.

대구는 산업화 시기에 한국 경제에서 시도된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전국 3대 도시로서 자리매김하였다. 오늘날 대구는 그 위상이 추락하면서 지역민들의 자부심에 상처를 주고 있다. 특히 대구는 중앙정부와 협력적 관계를 중시한 결과 지역 내부의 혁신 역량을 키우지 못했다는 비판이 높다. 전임 권영진 시장에 이어 중앙 정치와 행정 경험이 있는 홍준표 시장의 등장은 또 다른 개혁이다.

대구의 문제점을 파악한 홍 시장은 대구굴기를 외치지만, 홍 시장의 비전과 리더십을 추진 동력으로 전환시켜 주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대구굴기를 통해 강력한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주체와 키워드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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