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시위
[달구벌아침] 시위
  • 승인 2023.01.08 21: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순란 주부
아이들이 어릴 때 맞벌이를 하지 않아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주부로서 집을 꾸미고 싶은 욕심도 있었으나 지금 당장 필요한 것들을 사기에도 돈이 넉넉하지가 않았다. 먹을 것, 입을 것, 생활용품 등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있었다. 한 푼이라도 아껴서 아이들이 커서 원하는 것이 있을 때 해 줄 수 있었으면 해서 검소하게 생활하고 아낄 수 있는 것은 아꼈다. 갓난아기때부터 좋은 것을 해주고 먹이고 싶었지만 자기들이 무엇을 먹는지, 어떤 것을 입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아기라 비싼 것은 해 주지 못했다. 아기에게 정서적 부분과 뇌발달에도 좋다고 하여 분유대신 모유를 먹였다. 이유식도 직접 레시피를 보고 해서 먹였다. 옷은 큰새언니네 아이가 입던 것을 물려 입었다. 첫째를 낳고 둘째를 고민했던 때문인지 첫아이가 쓰던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아서 받을 것이 많았다.

얇은 이불, 포대기, 유모차도 있었다. 옷들은 주로 집에서 입었다. 외출복은 새로 샀다. 유모차를 끌고 나가면 낡고 오래된 티가 많이 났다. 크고 천이 오래되어 얼룩도 묻어 있었다. 그 당시 유행하는 것은 작았고 가벼웠다. 새 유모차에 새로 태어난 아기를 태우고 다니는 엄마들은 젊었다. 밝고 젊은 엄마와 아기를 보며 나이 들고 낡은 유모차에 타고 있는 자신의 아기가 퇴색해 보일까봐 새 유모차를 사고 싶었다. 갓 입사한 남편의 월급봉투는 얇았고, 유모차를 사기에는 거금이 들었다. 명품도 아니고 그냥 새 것을 사고 싶은 작은 소망이었지만 홍희보다 더 검소하고 알뜰한 남편은 새 유모차를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큰고모와 작은고모가 낡은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것이 보기 싫었던지 새 것을 사주고 싶어했다.

사주겠다고 하는 말에 바로 사달라고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사 달라’는 말을 선뜻 하는 것이 염치없는 것 같아서 머뭇거렸다. 지금이라면 바로 대답했을 테지만 남에게 도움이나 돈, 큰 선물을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던 홍희는 신세를 지는 것이 싫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는지, 아니면 인사치레로 하는 말인지, 진심이었는지 ‘안 사 줘도 된다. 괜찮다’고 했다.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알아서 사 주었을 텐데 부모가 사주기를 원하지 않으니 두 고모는 사주겠다는 의사표시를 철회했다. 고개를 약간 갸우뚱거리면서, 한편으로는 돈이 굳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새 유모차를 얻을 기회를 잃고, 사지도 않았다. 둘째 아이때도 낡은 유모차를 얻어서 타고 다녔다.

흔한 학습지도 하지 않고, 전업주부인 홍희가 책을 읽어주고 문제집을 사서 풀게하고 답을 체크해 주었다. 공부는 스스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책, 학습 교재, 온라인강의와 자기주도학습법이 넘쳐 나므로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끔 해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첫째 아이는 신경을 쓰고 시간을 들여 공부하는 습관을 어느정도 만들어 준 것 같지만, 둘째 아이는 늘 뒷전이었다. 둘째 아이가 말하는 것이나 행동이 똑똑해 보여 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어릴 때 잘 놀았던 아이가 중고등학교 때 공부에 더욱 흥미를 갖고 몰입을 하여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중3까지 공부에 흥미를 크게 보이지 않던 둘째는 고등학교1학년 등급이 좋지 않았다. 더 늦으면 공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 고1겨울방학 때부터 전폭적으로 학원을 보내고 학원비를 지출하기로 결심했다. 원하는 수업을 듣게 하고, 자신감과 격려를 주었으며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한 번 믿음이 배반해도 대학에 입학해서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기잃은 얼굴이 마음이 쓰였고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다시 실패.

잘 해 주지 못했던 어린 시절 때문에 가능한 지지와 격려를 보내었지만 이제 시위를 팽팽하게 당겨본다. 힘이 들었다. 부러질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과녁을 향해 날아갈 마음이 꺽이면 화살은 툭 떨어질 것이다.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진짜로 날아가고 싶은건지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도록 날아가야할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최대한 힘껏 당겨본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