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그림자 노동, 의료에서도 중요한 가치이다
[의료칼럼]그림자 노동, 의료에서도 중요한 가치이다
  • 승인 2023.01.0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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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혁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곽재혁 신경과 원장
최근 뉴스에 수년간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그의 부인 노소영 관장에 대한 법원의 이혼 판결이 나왔다. 법원이 책정한 재산분할 금액은 655억원으로 역대 재벌가 이혼 재산분할 금액 중 최고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이였다.

655억원은 비록 큰 액수지만 실제적으로 법원은 최태원 회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노 관장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의 50%인 1조 3500억원을 이혼 대가로 요구하였지만 법원은 노 관장이 재산 형성 과정에서 기여가 미미했다고 판단을 하였다. 최근 노 관장은 1심 판결을 두고, 앞으로 기업을 가진 남편은 가정을 지킨 배우자를 헐값에 쫓아내는 것이 가능해졌고 여성의 역할과 가정의 가치가 전면 부인됐다고 말하였다.

미국에서는 ‘결혼은 사랑, 이혼은 비지니스’란 말이 있다. 할리우드 유명 스타나 재벌들이 조강지처를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선택할 때 거액의 위자료를 지급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선진국에서는 가사노동과 같은 보이지 않는 노력, 즉 그림자 노동에 대한 가치를 높이 인정 해주기 때문이다. 그림자 노동은 오로지 임금 노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노동으로, ‘이반 일리치’가 고안한 용어이다. 가사노동뿐 아니라 경제 활동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강요되는 모든 무급 활동으로, 자율적인 삶을 억압하는 모든 노동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그림자 노동의 가치는 의료계에서도 폄하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대학교수로 재직할 때 뇌졸중을 담당하였다. 아이의 생일날에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차를 몰고 가다가 응급실에 급성 뇌경색 환자가 왔다는 콜을 받았다. MRI촬영을 보고 시술을 할지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아서 MRI를 찍으라고 얘기를 한 후 식당으로 향하던 차를 돌려 집으러 왔다. 다행히 그 환자는 MRI결과가 나쁘지 않아서 시술을 하지 않아도 되어, 응급실에 갈 필요는 없었지만 우리 가족은 그날 저녁 외식을 하지 못했다. 2-3일에 한번씩 자택에서 당직콜을 받지만 따로 수당이 있지 않고 시술이 필요해서 병원에 가면 택시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수당으로 받았다.

건강보험 수가는 의료행위별 업무량, 진료비용, 위험도등을 고려해서 결정이 된다. 그림자 노동에 대한 가치는 빠져있거나 저평가 되어있다. 응급 시술은 업무량과 위험도는 적절하게 평가를 받을 수 있으나 병원 밖에서 대기를 하면서 다른 개인적인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가치는 측정이 되지 못해, 결국 의료진의 노력에 비해 수가는 저평가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소아과의 경우에는 업무량, 진료비용, 위험도등을 따져 볼 때 수가가 낮게 측정되어 있다. 하지만 소아환자 진료를 볼 때는 소아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 상담도 매우 중요하다. 아이가 아플 때 예민해 있는 보호자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결국, 보이지 않는 노동의 가치를 측정하지 못한 수가 정책이 현재 우리나라 필수 의료의 붕괴 위험으로 초래하였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이 15.9%로 밖에 되지 않는다. 2018년 101%로 정원대비 지원자가 많았던 것에 비해 급격히 감소하였다. 소아청소년과 외에도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필수의료과 전공의는 해마다 지원율이 급감하고 있다. 결국 전국 주요 대학병원들이 소아청소년 전공의 부족 문제로 입원실을 축소하거나 한시적으로 폐쇄하고 있다. 또한, 서울아산병원에서 신경외과 의사의 부족으로 근무하던 간호사가 뇌출혈 수술을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필수 의료 붕괴가 현실로 다가왔다.

다행히 현재 필수의료과 전공의에 대한 국가의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가 된 상태이고,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당시 필수의료 국가책임제 도입을 공약한 바 있다.“필수과목 전공의 수급의 고질적 문제점을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도록 국가의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야 할 것 없이 국민의 생명을 지킬 있는 필수의료 지원제도의 제정에 시급히 나서야 할 때이다.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을 존중해야 진정한 노동을 중요시 하는 국가인 것처럼 필수의료에 대한 정책을 만들 때도 보이지 않는 노동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무너지고 있는 필수 의료의 붕괴를 지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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