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복지논단] 사회복지에 대한 명암(明暗)
[대구복지논단] 사회복지에 대한 명암(明暗)
  • 승인 2023.01.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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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주 대구시사회복지협의회장
이솝우화에 나오는 당나귀 팔러 가는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입니다. 당나귀를 데리고 셋이서 걸어가고 있는 아들을 향해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편안하게 타고 가면 될 것을 왜 걸어가느냐”는 것입니다. 아들을 태우면 “어린 아들이 힘들게 걷고 있으니 가엽다”고 말을 보탭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당나귀에 올라가면 “조그만 당나귀에 두 사람이나 타고 가니 당나귀가 불쌍해”라고 비난합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부자(父子)는 결국 당나귀를 짊어지고 가기로 합니다. 힘이 빠진 아버지와 아들은 다리를 건너다 당나귀를 강물에 빠뜨리고 맙니다. 이솝우화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납니다.

부자(父子)의 어리석음과 줏대 없음을 비웃으며 어린 마음에 교훈을 삼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주인공들을 비웃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내가 이야기 속 부자(父子)보다 “현명하게 살았다”거나 “적어도 더 바보처럼 살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독자나 관객의 입장에서 다른 이의 오류나 부족함을 지적하고 훈수 두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삶의 장면마다 오롯이 의지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한참 나이를 먹고 난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복지’에 대해 많은 이들로부터 여러 말을 듣습니다. 복지대상자들에 대한 연민의 이야기도 있지만 그들에 대한 비난의 이야기도 듣곤 합니다. 도와야 하는 대상, 돕는 방법에 대해서도 여러 말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너무 소극적이라는 주장도 있고, 지나쳐서 문제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국가기관이 주도한 경우와 민간기관에서 수행하면 발생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기본소득 같은 제도를 시작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밥 한 그릇 무료로 제공할 때도 복지병(病)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면 논쟁적인 요소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근거와 진위를 가려봐야 할 이야기도 있으며, 전후 맥락이 맞지 않거나 오류가 섞여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논의를 지켜보는 사회복지전문가의 입장도 조금씩 다릅니다. 시비를 가리고 오류를 바로잡는 일을 강조하는가 하면 시민들의 참여와 공론화의 장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사회복지전문가의 주도로 정책과 제도가 설계되어야 한다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만큼 여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그룹도 있습니다.

시민 중에는 사회복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경우도 있습니다. 사회복지 자체에 대한 부정도 존재하고 방향이나 방식, 태도나 철학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존재합니다. 물론 무조건적 부정도 존재하고 반대로 무조건적 긍정과 지지도 존재합니다. 사회복지의 과정은 시장에 나귀를 팔러 가는 일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나귀를 팔러 가는 일은 ‘그들’의 일이며 ‘개인의 이해’에 관련된 일이지만, 사회복지는 ‘우리’의 일이며 ‘공동체의 이해’에 관련된 일입니다.

부자(父子)의 행동을 입에 올리는 것은 ‘참견’이지만, 사회복지를 입에 올리는 것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사회구성원 각자가 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개진하고 주장함은 너무 당연합니다. 감을 놓을 자리인지, 배를 놔야 할 시점인지를 선택하는 일 또한 사회구성원의 몫입니다. 특정 위정자의 신념이나 고집으로 독단적 선택이 되면 안 될 것입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선택 과정 또한 ‘공동체 구성원’의 권리이며 당연한 역할입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바람직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사회적 의사결정과정에서 역할일 것입니다.

사회복지는 앞으로 더 많은 시간, 부침(浮沈)을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가야 할 방향을 잃고 좌충우돌하기도 할 것입니다. 마치 당나귀를 몰고 시장으로 향하던 아버지와 아들처럼 일관성 없는 횡보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은 눈과 귀를 닫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위정자나 행정가이며, 어떤 결정과 방향으로 나아가든 ‘상관없는 일’로 관계를 끊어버리는 사회구성원의 무관심일 것입니다.

사회복지라는 당나귀와 동행하는 우리 사회복지 인에게 많은 공동체 구성원의 간섭과 참견을 부탁드립니다. 참견을 새기고, 간섭을 명령으로 듣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말씀 하나에 귀 기울이며 조금 늦어지더라도 아우르며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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