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참 부러운 문화
[대구논단] 참 부러운 문화
  • 승인 2023.01.1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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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환 전 경산시교육장
명절이 되면 노인들은 이유 없이 서글프고, 서운하고, 막막하다. 갑자기 잃어버린 공간에서 죽음의 신을 보고 삶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아는데서 오는 당황스러움일 것이다

세계에서 신(神)이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 과문하여 그런지 네팔일 것으로 생각한다. 네팔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로 둘러싸여 있는 나라이다.

네팔에는 3억이 넘는 신이 있다. 불교와 힌두교에 관계되는 신, 시바 신, 가루다 신, 원숭이 신, 코브라 신, 코끼리 신 등, 그들의 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웃, 바로 내 곁에 있는 존재로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실제로 네팔인들이 사는 거리와 가정과 건물, 산천의 계곡과 나무와 바위들에는 각종 신들이 모셔져 있다.

네팔에는 네팔 최대의 힌두교 사원 파슈파티나트 사원이 있다. 파슈파티나트 사원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강에서는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장례식을 매일 치르고 있다. 죽은 자 중에는 굶어서 죽은 자, 병들어 죽은 자, 억울하게 맞아 죽은 자도 있을 것이다. 파슈파티나트 사원에는 네팔에서 가장 큰 황금 탑이 있다. 화려한 황금 탑을 보며 엉뚱한 생각을 한다. ‘저렇게 화려한 황금 옷을 입고 있는 신은, 굶어 죽은 자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신은 분명 굶어 죽은 자의 바짝 마른 시신을 보았을 것이다. 굶어 죽은 자의 시신 타는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황금 옷을 입은 신은 정녕 마음 편안하였을까. 황금 탑은 말이 없고 사원 앞에는 온종일 시신 타는 연기만 솟아오르고 있다.

장례식이 끝나면 유족들은 죽은 자를 위해 동전을 던지고, 거리의 아이들은 던진 동전을 줍는다. 어떤 아이는 아직 연기가 나는 시체 주머니를 뒤집기도 한다. 배고픔을 해결하려고 돈이 될만한 것들을 찾고 있다. 살아있는 아이들은 살기 위해 노력하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삶과 죽음이 함께 있다.

뒤이어 원숭이 떼가 몰려온다. 원숭이들은 시체 주위를 재빠르게 돌아다니며 남아있는 시신을 튀어나온 눈으로 샅샅이 살핀다. 주위에 널린 물건들을 이것저것 집어 입에 넣었다 뱉고, 코는 연신 실룩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그러다 먹을 만한 음식들을 찾아내어 뾰족한 앞니로 열심히 뜯어 먹는다. 아이들과 다름이 없다.

아이들과 원숭이는, 아직 죽은 자의 온기가 살아지지도 않는 곳에서 그들의 삶을 치열하게 이어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인간과 동물의 삶은 별반 다른 것이 없다. 갑자기 십여 년 전의 슬픈 이야기가 생각났다. 공직에 있는 친구가 죽고 좋은 자리가 비었다, 그 자리가 탐이 난 이는, 친구의 시신이 입관되기도 전에, 높은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인간의 모습이다.

삶과 죽음의 현장 바그마티강을 따라 남으로 내려가 인도의 갠지스강을 만났다. 갠지스강은 더 많은 사람을 화장하고 있었다. 강 위로 연기가 자욱하다.

인도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물이나 하천을 숭배하는 전통이 있다. 갠지스강은 인도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강이다. 힌두교에서는 갠지스강에 몸을 씻으면 전생에 지은 죄가 씻겨진다고 한다. 많은 인도인은 살아서는 갠지스강에 목욕하는 것을, 죽어서는 시신이 화장되어 유골이나 재가 이 강에 뿌려지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생각한다. 윤회를 굳게 믿는 많은 인도 사람들은 시체의 재가 둥둥 떠다니는 곳에서도 물놀이와 수영을 하고, 몸을 씻는다.

화장터에서 목욕하는 인도인들을 미개한 민족이라 하면 안 된다. 인도인들이 사랑하는 갠지스강은 인류 4대 문명 발상지이다. 그들은 BC2000년경부터 대형 목욕탕을 가진 도시를 만들었고, 우리나라 전(前) 대통령 부인이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타지마할을 건축한 나라이다. 지금도 인도는 인공위성을 자체 개발하는 나라이고, 아이들은 구구단이 아닌 19단을 외우는 수학 강국이다. 시신을 화장한 재가 흐르는 강에서 밥그릇을 씻는 것은 그들의 삶이고, 그들의 문화이다. 우리는 그들의 다름을 인정하여야 한다.

인도 반도 사람들은 인생을 커다란 윤회 바퀴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흐르듯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장자(莊子)와 일맥상통한다. 죽은 것은 육신이지 본질적 자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문화는 죽음을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들은 죽음을 흔적 없이 떠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생각한다.

어찌 보면 참 부러운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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