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첫차를 기다리며
[달구벌아침] 첫차를 기다리며
  • 승인 2023.01.1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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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새벽 세 시, 옥상에 오른다. 한껏 매달았던 추진 빨래를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물고 있던 집게들이 철봉에 오래 매달리기 하듯 빨랫줄을 부여잡고 허공에 매달려 있다. 쓰임을 다한 후 반 토막 난 몸을 내어준 물탱크 속 석류나무 한 그루 사이사이로 삶이 가져다주는 기회처럼 별들이 언뜻언뜻 반짝인다. 텃밭을 감싸 안은 채 온기를 더해주던 비닐하우스의 찢어진 틈새로 시린 겨울바람이 나부낀다. 그 곁, 조그마한 화분 속 얼어버린 화초 사이를 비집고 민들레 노란 속살이 뾰족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바지랑대를 받치고 있던 깨진 돌 하나를 물탱크 옆에 내려놓고 앉아 등을 기대본다. 가끔, 축축한 삶을 말리고 싶은 날이면 언제든 이곳에 올라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곤 한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다 일어나면 잘 마른빨래를 개켜 서랍에 넣듯 흐트러지고 엉킨 마음과 생각들이 어느새 가지런하게 정돈이 되곤 한다.
늦저녁, 길은 저물고 대문 밖 외등이 켜질 즈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고금리와 경기침체를 감당할 재간이 없어 결국 집을 내려놓기로 했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육십을 바라보는 올해 말이면 평생 꿈이던 내 집 한 채 가지게 된다며 꿈에 부풀어 있던 터였다. 늦은 밤까지 식당 일을 하면서도 고생이 고생인 줄 모르고 꼬박꼬박 몇 해째 부금을 부었었다.
바지랑대로 하늘 재긴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두워서 보일 것 같지 않은 구름은 사람들이 잠든 밤에도 쉬지 않고 어디론가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구름과 구름 사이 빗방울을 켜켜이 꽂아 넣은 채, 목화솜 이불을 탄 듯 하염없이 가뿐하게 흐르고 흐른다.
"사람이 길을 가다 보면/ 버스를 놓칠 때가 있단다// 잘못한 일도 없이/ 버스를 놓치듯/ 힘든 일 당할 때가 있단다// 그럴 때마다 아이야/ 잊지 말아라// 다음에도 버스는 오고/ 그 다음에 오는 버스가 때로는/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떠한 경우라도 아이야/ 너 자신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너 자신임을 잊지 말아라"
막차를 놓치듯 살다 보면 계획한 것과는 달리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안다. 북극성을 올려다보며 나태주 시인의 '다시 중학생에게' 전문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어려운 말 하나 없고, 어려운 문장 한 줄 없이, 우리가 모르는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다음에도 버스는 오고 그다음에 오는 버스가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시가 겨울의 한가운데 서서 칼바람을 맞으며 선 채로 있는 우리에게 그나마 따뜻한 온기가 되어준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누군가 이해해 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어떤 일이든 견뎌 나갈 힘을 나눠 가질 수 있다. 때론 기다리는 것일수록 오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기다리는 것들은 조금 더디더라도 꼭 온다는 것을 나의 경험을 들어 위로했다. 그러니 쉽게 마음을 놓아버리지 말고 잘 견뎌 보자는 의미로 손을 다잡았다. 한 다리 건너 지기라는 말은 친구라는 의미도 있지만 지킴이라는 뜻 또한 내포하고 있다는 걸 잘 아는 옆지기에게도.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있다는 것은 삶의 기회이며 아름다움이고 놀이다. 그것을 붙잡고 감상하고 누리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린 일이라고 한다. 세상이 보여 주는 최상의 것을 배우는 일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 살아가는 일이 힘에 부칠 때일수록 어쩌면 내가 한 말과 행동이 사랑하는 이에게 또한 누군가에게 하는 마지막 말과 행동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곤 한다. '거울 효과'처럼 내 얼굴이 그들의 거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웃는 모습을 바라보며 상대도 웃을 테니.
'세상의 중심에 너 홀로 서라' 속 '너'란 단어가 데칼코마니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힌다. 중심이 된 그녀와 중심이 된 내가 만나 서로의 등을 기댈 수 있다면 조금은 기울어지고 엇갈린 채 서 있어도 바지랑대처럼 빨랫줄을 탱탱하게 지탱하고 설 수 있으리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처럼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어느 구름에 비가 들어 있는지 그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비가 오면 우산을 펼쳐 빗방울을 받아낼 수는 있듯 첫차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새 달력 앞, 일월의 정류장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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