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의를 취득하고 봉직의를 거쳐 개업의 생활을 하면서 아이가 좋아서 하지만 내가 아끼는후배들에게 선뜻 소아청소년과를 하라고 말할 자신이 점차 없어졌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상 행위별 수가 방식이다 보니 검사도 수술도 처치도 없는 과라서 오로지 진찰료만으로 수입을 올려야 한다. 내 목소리가 가버리고 내가 피곤하면 수입이 조금 올라가지만 내 목소리가 돌아오는 시기가 되면 환자 숫자로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정형외과는 부러지고 아픈 곳은 어디인지 보이기도 하고 증상이 좋아지고 나빠지고가 금방 보이지만 아이들의 질환은 그렇지가 못하다. 열감기 환자가 왔을 때가 제일 힘든데, 진찰상 어디 어디 이상은 없다. 바이러스성이기 때문에 해열제 먹고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 해열제는 원래 1~1.5도밖에 못 떨어뜨리니까 정상 체온에 연연해하지 말아라, 해열제는 몇 시간 간격은 지켜주라, 열이 너무 나면 이럴 수 있다,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으면 지켜보라, 아이가 미열이라도 쳐지면 다시 내원하라고 20분 정도에 걸쳐 설명해주고 불안해하는 보호자를 안심시켜야 한다.
2021년 의원 표시과목별 요양급여 비용이 제일 꼴찌이다. 그리고 진료비가 대만의 1/5 미국의 1/20 수준이고 동남아 아프리카보다도 더 낮다. 얼마 전 독감이 유행할 때 오픈런이라고 동네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보려면 새벽부터 줄서야 한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지금은 그때 환자숫자의 1/2도 안되고 아주 한가하다. 유행성 감염질환이 대부분이고 내과처럼 만성 질환군이 없어서 바쁠 때는 바쁘지만 아닐 때는 너무 없다. 기본 수입을 보존할 방법이 없다 보니 바빠 죽거나 심심해 죽거나이다. 그래서 지난 5년간 소아청소년과 개업이 617곳이고 폐업이 662곳으로 폐업이 더 많고 코로나19 본격 유행 시기인 2020, 2021년 78곳이 폐업을 하였다. 차라리 진료과목을 일반과로 바꾸는 것이 더 안정적이니까 폐업을 하고 일반의나 봉직의를 택하고 그나마 취직할 소아청소년과는 없어서 요양 병원에 취업을 하는 실정이다. 애써 배운 4년간의 전문적 지식은 어디에도 쓸 곳이 없어져 버린다. 게다가 소청과 전문의라서 취업 때 오히려 더 나쁘니 아예 일반의가 낫다고 생각한다.
진료실 내에서도 보호받지 못한다.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하면(사실 수유 횟수 조절 등 말 안해도 그만이지만 바르게 아이를 키우기 위한 조언이다) 맘카페에 엄청나 비난을 쏟아내고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아이 귀지를 파주다가 외이도에 피가 났는데 민사소송을 걸어 3천만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하기까지 이르렀다. 귀지는 우리도 빼기 어렵다. 하지만 중이염을 봐주려면 제거해야 하니까 빼주는 것이고 아이를 피나게 하고 싶은 의사는 아무도 없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꾸 나 자신이 쪼그라든다.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의대 정원을 늘리자고? 늘린다고 누가 보상도 없는 소아과의사를 할 것인가. 차라리 일반의가 나은데. 그리고 의사 수를 늘린다고 뚝딱 전문의 배출이 되지 않는다. 수련은 도제식 과정이라 윗년차 밑에서 보고 경험해야 하는데 올해 전공의 모집에서 16%만 인원이 차고 66개 수련병원 중 한 명이라도 전공의가 있는 병원은 11개에 불과하다. 전공의로 들어가도 배울 수 있는 윗년차가 없으니 제대로 된 수련이 이루어질 수 없다. 소아과학이라는 학문자체가 붕괴되고 있다.
제발 정부에서도 배부른 의사 소리로 치부하지 말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질병청,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등이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를 풀어 보려는 노력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감기야 어떻게 치료한다 해도 올바르게 아이를 키우기 위해 또 중환이 생겼을 때 이 병원 저 병원을 헤매다 귀한 아이의 목숨을 잃는 그런 날이 오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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