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이별, 새로운 시작
[달구벌아침] 이별, 새로운 시작
  • 승인 2023.02.0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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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10년간 정들고 미움이 들끓었던 곳을 떠나 홍희는 새로운 장소로 이동한다. 이름하여 ‘전보발령’이다. 10년 동안 나이가 먹었고, 아이들이 자랐다. 홍희는 큰 변화가 없이 숫자에 불과한 나이가 는 것밖에 없는 것 같은데 아이들은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에서 23세, 21세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었다. 세월이 참 많이 흐른 것이 맞다.

일도 오래 해서 이제는 농담과 과장을 곁들여서 눈감고도 할 수 있다. 몸이 피곤해도 사람이 오면 입과 손이 알아서 움직인다. 입은 알아서 상대방에게 말을 하고, 손은 알아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긴다. 한 해 마다 중점이 되는 목표가 정해지고 위에서 달성을 위한 회의를 하면 올인해서 성과를 내는 것도 재밌었다. 노력한 만큼 좋은 성과가 나면 뿌듯함을 느꼈다. 안 할 때는 편안하고 여유롭게 일을 하는 것도 좋았다. 오래된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다가 ‘배신’도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사이코패스,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고 실제 사례가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현실자각도 했다. 물론 그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말이다.

이런 사람들 덕분에 오히려 멘탈이 성장했다. 스스로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갖게 되었다. 일단 자신의 일을 크게 불평불만하지 않고 수행한다.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효율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알게 된 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자 한다.

조직의 목표가 설정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최대한 협조적인 자세로 일한다. 일하고 돈벌기 위해 직장에 왔다. 대충 일하고 월급받기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것도 즐겁다.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성과를 얻을 수 있는지 보고 싶어서라도 능력을 발휘하려고 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실적을 내서 상사에게 잘보이려고 한다는 눈총이 될 수도 있지만,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내는 것이 직장에서 잘못인가? 학생이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기 위해, 아니면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더 중요한 좋은 품성은 남이 곤경에 처하고, 힘들어하면 나서서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민원이 발생해서 누군가가 대신 맡아야 할 때 크게 주저하지 않고 맡아서 처리한다. 또 민원인이 빨리 시작하고 싶어할 때 시간을 조정해서 잡아주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의 민원인도 맡아서 해 준다. 이번에도 마지막 근무일날 시간 조율이 안 되어 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시간을 내어 맡아서 처리했다. 왜 그랬지 하고 후회를 했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문제가 생기지 않게 최대한 도와주고 싶다. 민원인이든 동료든 말이다.

10년간 일로도 인간관계에서도 멘탈에서도 성장이 있었다. 단순히 나이만 먹은 것은 아니다. 긍정적이고 좋은 변화가 있었고, 행복해졌다.

단지 아쉬운 것은 좋은 사람과 이별하는 것이다. 그들이 내게 준 선물은 값지다. 한 사람의 이별선물로 받은 책 제목은 ‘당신이 옳다’이다. 이 제목을 보면서 홍희가 생각났다고 했다. 고마운 말이다. 자신의 판단과 행동이 옳았음을 믿게 해주고, 용기를 주고 존중해주는 말이다. 고맙다. 다른 한 사람은 고급스런 포장을 한 와인을 선물해 주었다.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기면 드시라고 했다. 겨우 1년을 옆에 있었을 뿐인데 큰 선물이 감사하다.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렇다. 그녀도 홍희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이리라. 자존감을 갖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자존감을 가질 수 있게 존중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만났고, 그런 사람과 이별하는 것이 아쉽다. 그들은 홍희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고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월요일부터 새로운 장소로 출근한다. 옛 장소와 이별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지. 예전 같지 않은 새로운 자신으로 새로운 장소에서 새롭게 시작해보자. 이제 더 이상 아파하지는 않으리라. 홍희는 강해졌다. 좋은 사람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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