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적 만난 장끼는 덤불에 머리 처박고
엉덩이를 하늘 쪽으로 높이 올려 숨는다지
숨어도 다 숨지 못하는 꿩처럼
외면이 먼저 인사를 하는 자리
훌훌 걷어낼 수 없는 저 외면을 여백이라 할 수 있을까?
이해관계로 얽힌 법정도 아닌데,
불편한 마음 둘 데가 없다
그래, 외등은 외로워서 환할까
운명 교향곡이 쾅쾅쾅콰아앙……
따뜻하구나
모든 게 변한다는 사실만 안 변하는 세상
뜨거운 외면의 한 끝을 물고
꿩 한 마리 푸드득 날아오른다
◇서하=경북 영천 출생. 1999년 계간『시안』신인상 수상, 대구문학상』 수상. 제1회 이윤수 문학상 수상. 시집 ‘외등은 외로워서 환할까. 2023’외
<해설> 시인은 지금 군데군데 잔설이 쌓인 산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산길은 시인이 있어서 생각을 쌓기도 하고 허물기도 하는 산길이다. 시인을 산길로 데려간 것은 아마도 과거의 시간이겠지만, 시 어느 곳에서도 과거를 반추하지 않는다. 아마도 다가올 미래의 시간과의 조우를 통해서 “모든 게 변한다는 사실만 안 변하는 세상”이란 아이러니한 직관을 얻음으로써, 외면이 먼저 인사하는 자리에 깨달음의 꿩 한 마리를 푸드덕 날아 올리고 있다.
-박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