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플라타너스
[좋은 시를 찾아서] 플라타너스
  • 승인 2023.02.07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분자 시인

비만의 허벅지가

물날린 청바짓단에 끼여

물구나무로 서 있다

훅훅 봄날 입김으로 보아

폐활량이 무척 센 사내인가 보다

팔에 현수막 걸고

엉덩짝 흔드는 이벤트의 간격

사람들 눈길에

땅에 꽂힌 머리는

쏠리는 피 참지 못한 것일까

드디어 온몸에 돋는 정맥

들릴 듯, 말 듯

신열의 틈새로 다가온 봄은

살비듬 떨어진 자리에

낮달을 밀어 넣는다

머지않아

가려움 가려줄 잎들

◇권분자= 월간문학 신인상 등단. 한국문인협회. 대구문인협회. 형상시학회 회원. ‘너는 시원하지만 나는 불쾌해’ ‘수다의 정석’ ‘엘피판 뒤집기’ 소설집 ‘출소를 꿈꾸다’가 있음.

<해설> 한 여름 그늘을 주던 플라터너스 가로수들이 겨울에 들어 잎을 다 내려놓았다. 쓸쓸한 도심 가로수 풍경이 시인의 심정과 어떤 일치를 이루고 있다. 건조한 날씨에 가려워지는 살갗이 어쩌면 훌훌 껍질 벗는, 또 다른 나무의 이름 ‘버즘나무’라 불리기도 하는 것처럼 플라타너스를 시인은 엉뚱하게도 거꾸로 빨아 널은 물 날린 청바지로 보다니! 그것도 큰 폐활량의 사내로 보다니, 시인에게 겨울은 물구나무의 시간이면서 봄다운 봄을 기다리는 또 다른 인내 시간인 것이다.

-박윤배(시인)-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