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사과 한 알 만큼의 행복
[달구벌아침] 사과 한 알 만큼의 행복
  • 승인 2023.02.0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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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행복의 바구니는 큰 바구니부터 아주 작은 바구니까지 다양하다. 크기는 다를지 모르지만, 행복의 모양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행복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고, 주관적인 것이라 서로 비교가 불가능하고, 행복 그 자체로 행복이기 때문이다.
이번 설은 참으로 날씨가 차가웠다. 한파(寒波)로 인해 땅도 얼고, 우리 마음도 얼고,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다. 그야말로 이불 밖은 위험했다. 그런 날씨가 한창일 때, 친구 녀석이 캠핑을 간다고 했다. 처음엔 그 이야기를 듣고는 명절이기도 하고, 또한 추운 날씨에 무슨 캠핑이냐 싶어 농담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가 내게 하는 말은 진지했다. "이번 설은 그냥 바닷가로 떠나 연휴 동안 혼자서 캠핑을 좀 할까 싶다."라고 말했다.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혼자서 캠핑이라? 그것도 이런 추운 날씨에? 분명 무슨 일이 있어 보였다. 친구가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고 더 묻지 않았다. 속으로만 분위기를 짐작할 뿐이었다.
말대로 친구는 진짜 혼자서 설 연휴 동안 캠핑을 떠났고, 이따금 사진을 내게 보내며 생존 신고를 해왔다. 바닷가에서 모닥불 피우는 사진도 보내왔고, 파도 소리가 담긴 영상도 보내왔다. 그리고 덩치에 걸맞게 음식 만들어 먹는 사진도 많이 보내왔다.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사진과 함께 전해온 메시지는 '참 좋다. 너무 좋다'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그런 친구의 메시지를 받으며, 그냥 자신의 힘듦을 어떻게 해서든 이겨보려고 하는 발버둥 정도로 이해했었다. 힘든 상황을 이겨내 보고자 '나는 행복하다'라며 자신에게 주문을 걸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휴 동안 계속 보내져 오는 사진에서 '이 친구 지금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친구는 거짓이 아니라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 진심이 고스란히 사진과 메시지에서 느껴졌다. 친구는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바다를 제대로 즐기고 있었고, 불을 피우고 구워 먹는 생선구이 사진에 친구의 행복한 소리가 담겨 있었다.
설 명절이 끝나고 친구가 여행에서 돌아왔다. 며칠간의 '혼자 캠핑'을 다녀온 친구는 내게 왜 혼자 여행을 왜 가게 되었는지, 그곳에서 어떤 기분이었고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들려주었다. 들어보니 나의 짐작이 맞았다. 친구에게 걱정거리가 생겼고, 머리 아플법한 속사정이 있었던 것이 맞았다. 그래서 머리 식힐 겸 혼자서 다녀왔다고 했다. 그런데 괴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행복했다'라고 말을 했다. 파도치는 바다를 보고 있자니 좋았고, 혼자서 음악 들으며 모닥불 피울 때도 좋았다고 했다. 특히 아무 구속받지 않고 혼자서 맛난 거 먹으며 놀며 쉬며 보낸 시간이 참 좋았다고 했다. 순간 친구의 말이 내게 신선한 바람으로 불어왔다.
친구가 보낸 며칠간의 행복한 연휴와는 반대로 나는 그렇게 즐겁지 않은 연휴를 보냈다. 연휴 동안 안 좋은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연휴 전에 있었던 복잡한 일로 내 마음은 '편치 않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시집간 누나 가족을 만나면서도, 처가 식구들과 시간을 보내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함께 가족이 나눠 먹으면서도 내 마음은 '편치 않음'의 먹구름이 머리 위를 뱅뱅 맴돌고 있었다. 그 먹구름은 연휴 동안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발생한 시점은 한 달여 전쯤이었지만 그 먹구름은 사라지지 않고 내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면 내가 먹구름을 붙들고 있었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바람 따라 흘려버리면 될 것을, 마치 어린아이가 헬륨 풍선이 날아갈까 봐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처럼, 나는 먹구름을 밧줄로 꽁꽁 묶어, 손에 꼭 쥔 채 가는 곳마다 끌고 다니고 있었다. 머리 위를 뱅뱅 돌고 있던 먹구름은 순전히 내가 끌고 다닌 것이었다. 친구를 통해 행복을 대하는 자세를 한 수 배웠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그만큼의 행복'이었다. 다짐했다. 순간의 행복을 과거의 눈물로 덮이게 하지는 않겠다고.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입에 넣을 땐, 아이스크림 한 스푼 만큼의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커피 한잔의 행복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지나간 슬픔이 지금의 행복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행복은 과거형도, 미래형도 아닌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그만큼의 행복'을 연습해 본다. 눈앞에 사과 한 알이 보인다. 맛있게 먹어본다. 순간 '사과 한 알 만큼의 행복'이 노크를 한다. 문을 열어주니 행복이 하는 말 "저는 지금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안개와 같답니다. 그러니 지금 바로 사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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