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미네 집에 정미는 없었다/ 수제비, 칼제비, 동동주, 미나리전, 감자전, 돼지불고기는 있어도/ 내 친구는 없었다
아홉 살 코딱지 같은 나이에 설거지하고 밥하고 물 길어 나르던 정미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읍내 약국집에 아기 봐주러 간다고 훌쩍 떠나버렸던 정미 내 어린 자취방에 뾰족구두 신고 얇은 입술에 붉은 베니 듬뿍 바르고 왔던 열여덟 살 비린,
소경인 엄마와 정미를 외갓댁에 버리고 간 아버지/ 왜관 어디서 새 각시 얻어 아들 낳고 산다는 소문이 맞느냐고 내게 묻던
정미는 없고
정미 아닌 사람들만 북적이는 정미식당에는/ 수제비가 맛있다 눈물 나게 맛있다
* 대구 가창 정대리에 소재한 식당
◇차회분= 경남 합천 출생. 시인시대 등단. 시집 <흐린날의 고흐>. 대구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 죽순문학회, 미래작가회동인.
<해설> 본래 혹은 본질을 두고 그 너머의 의문을 추적하다보면 시가 된다는 원리를 시인은 지금 동명의 친구를 과거로부터 불러오고 있다. 그 친구는 찢어지게 가난했을 친구이며 사는 일이 녹녹치 않았던 친구다. 자본주의의 그늘인 것이며 배반의 아이콘인 정미는 정미가 아닌 또 다른 현실임에 시인은 지금 손님이 북적대는,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에서 울컥 솟구치는 눈물을 삼키고 있다.
-박윤배(시인)-